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새벽은 태양보다 먼저 사람의 발걸음으로 온다. 새벽 네 시, 대구 달성공원 앞은 이미 하루를 열고 있었다.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는데 시장에는 가장 먼저 불이 켜지고, 밤새 밭에서 올라온 채소들이 트럭에서 하나둘 내려진다. 이슬을 머금은 상추와 깻잎이 좌판을 채우고, 생선을 손질하는 칼 소리와 국밥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골목을 깨운다. "어서 오이소." 정겨운 사투리 한마디가 적막했던 새벽에 온기를 더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반짝시장, 또는 번개시장이라 부른다. 어둠이 걷히기 전 잠시 열렸다가 아침과 함께 자취를 감추는 장터다. 그러나 내게 반짝인 것은 시장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맞이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삶이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시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먼 곳에서 위로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 나는 그럴 때면 새벽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채소가 아니라 좌판을 지키는 손길이다. 흙이 밴 손으로 채소를 다듬고, 저울을 맞추고, 손님을 맞는 모습에는 오래 살아온 시간이 켜켜이 배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그들은 채소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하루를 다듬고 있었다.
장터에는 묘한 질서가 흐른다. 누구도 서두르라고 재촉하지 않지만 모두 제 몫의 일을 쉼 없이 이어 간다. 좌판을 정리하는 손, 생선을 손질하는 손, 저울을 맞추는 손은 분주하게 움직여도 조급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 온 익숙함이 골목마다 잔잔히 스며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속도를 삶의 기준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가려 애쓴다. 그러나 이른 장터에서 만난 이들의 꾸준함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힘임을 말없이 일깨워 준다.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무도 "힘내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내 손에는 채소 몇 봉지가 들려 있었지만, 가슴에는 오늘도 제자리를 묵묵히 지켜 낸 이들의 온기가 오래 남아 있었다. 삶은 특별한 하루보다 평범한 오늘을 끝까지 살아내는 힘으로 이어진다.
삶이 시들할 때는 새벽시장으로 가보자. 그곳에는 오늘도 해보다 먼저 하루를 여는 이들이 있다. 투박한 손길이 장터를 열고, 활기찬 발걸음이 골목을 깨운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은 도시를 움직이고,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새벽은 태양이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묵묵히 삶을 이어 가는 이들이 매일 새롭게 밝혀 가는 희망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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