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2시쯤 대구 북구 '칼잽이 대장간'에서 박철호 대표가 1천500℃가 넘는 화로 앞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리고 있다. 구경모기자
한여름 연일 35℃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대구지역 현장 노동자들의 여름나기는 더 힘겨워졌다. 이들의 업무 환경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온도'의 경계선과 사투를 벌이는 가장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으로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도심 한복판에서 뜨거운 '불길'을 지키는 대장장이와 차가운 '얼음'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냉동창고 노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1천500℃ 화로 앞 대장장이
지난 13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북구의 한 대장간. 1천500℃가 넘는 작업장 화로에선 시뻘건 불길이 연신 솟아올랐다. 달궈진 쇠가 모루 위에 올라가자 망치질 소리와 함께 불티가 여기저기 튀었다. 폭염 속 불길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15년차 대장장이 박철호(45) 대표는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취재진이 작업장에 들어선 지 5분만에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실내는 '가마솥' 그 자체였지만, 박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듯 쇠를 달구고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작업장엔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다. 쇠는 온도에 민감해 바람 방향에 따라 물건 상태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연기와 쇳가루가 날리는 작업장 특성상 문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하기도 쉽지 않다. 더위가 심해도 옷차림을 가볍게 할 수 없다. 불티와 달궈진 쇠를 다루는 작업인 탓에 두꺼운 앞치마와 장갑은 필수다. 박 대표는 "안전 때문에 통상 긴 옷을 입고 작업해야 하지만, 여름철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반 팔 차림으로 조심스레 작업을 한다"며 "덥다고 옷을 얇게 입기도 그렇고, 긴 팔을 입으면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거의 탈진 직전까지 이르게 돼 항상 고민이다"고 했다.
13일 오후 2시쯤 대구 북구 '칼잽이 대장간'에서 박철호 대표가 1천500℃가 넘는 화로에 칼날을 넣고 있다. 구경모기자
그가 달궈진 쇠를 물에 식힐 때도 더운 열기는 멈추지 않았다. 순간 수증기와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올라 그의 얼굴을 덮쳤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쇠가 식기 전에 정확한 모양을 잡아내야 '100점'짜리 완성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화덕 열기가 워낙 강해 안경 렌즈가 변형될 정도다. 오래 쓰면 렌즈가 녹아내리듯 상해 석 달에 한 번꼴로 안경을 바꾼다"며 "쇠가 식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해서 땀이 눈으로 흘러내려도 손을 멈추기 어렵다. 잠깐만 쉬어도 작업 흐름이 끊긴다"고 했다.
박 대표가 잠시 뒤 작업장 밖으로 나왔다. 이날 바깥 기온은 38℃ 안팎. 보통 사람이라면 숨이 턱 막힐 더위다. 그러나 박 대표는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화로 앞 열기에 비하면, 오히려 '폭염'이 청량하게 느껴질 정도"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영하 10℃ 얼음공장 냉동창고
지난 13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한 얼음공장에서 작업자가 냉동창고와 출하장을 오가며 얼음을 옮기고 있다. 구경모기자
같은 날 오후 3시쯤 대구 서구에 있는 한 얼음공장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제빙실과 창고 문을 열자 공기가 곧장 확 바뀌었다. 냉동창고 안 온도는 영하 10℃. 이날 바깥 기온(38℃)과는 무려 50℃ 가까이 차이가 났다. 취재진이 냉동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입김이 날 정도로 냉기가 먼저 밀려왔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손끝이 얼얼할 정도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23년차 직원 김성기(48)씨는 몸에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얼음을 옮긴 뒤 포장을 했다. 135㎏에 달하는 큰 얼음을 분쇄기까지 옮겨 잘게 부수는 작업도 그의 몫이다. 얼음은 무겁고 미끄러웠다. 더운 날씨 탓에 표면이 쉽게 녹아 작업 속도를 늦추기도 어려웠다.
김씨가 취재진에게 밝힌 가장 큰 고충은 '업무량' 보다는 급격한 '온도 차'였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제빙실과 냉동창고, 출하장을 오가다 보니 짧은 동선 안에서 한여름과 한겨울을 쉴새없이 오간다. 작업 때마다 '긴 팔'과 '반 팔'로 옷을 갈아 입을 수도 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이에 체온이 급격히 변하면서 피로도 또한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한 얼음공장에서 작업자가 냉동창고와 출하장을 오가며 얼음을 옮기고 있다. 구경모기자
그는 "얼음을 만질 때면 더위가 안 느껴지는데, 밖에만 나가면 다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될 정도로 땀방울이 맺힌다"며 "여름철 하루 평균 출하량이 다른 계절보다 2~3배가량 많아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여기가 '남극'인지 '아프리카'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했다.
이어 "작업 환경에 따라 옷을 달리 입어야 하는데 바쁜 나머지 도통 엄두가 나지 않는다. 냉동창고 안은 춥지만 바깥 작업도 계속해야 해 두꺼운 옷만 입고 있을 수는 없다"며 "여름이 될수록 몸은 더 빨리 지친다. 온도 차가 크다 보니 어지러울 때도 있고, 여름감기도 연례행사처럼 달고 산다"고 덧붙였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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