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 얼음골 약수터에 관광객들이 찾아 약수를 떠마시며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한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고 있다. <정운홍 기자>
구름이 잔뜩 낀 여름날,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는 높은 습도로 공기가 눅눅했다. 체감온도는 30℃를 웃돌았다. 에어컨을 켠 차량에서 내리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햇볕은 강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땀이 배어 나왔다.
얼음골에는 가족과 연인, 지인들과 함께 온 여행객들이 곳곳에 보였다. 약수터로 이어지는 돌다리를 건너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개울을 지나 바위가 겹겹이 쌓인 약수터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기온이 한층 낮아진 듯했다.
약수터 안쪽에는 관광객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찬 공기를 쐬던 이들은 "정말 시원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일부는 바위틈 가까이 손을 내밀어 냉기를 확인했고, 다른 관광객들은 차가운 약수를 마시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청송군 얼음골 약수터 내부 바위틈에 온도계를 두자 10분 만에 18.4℃를 기록했다. <정운홍 기자>
실제 온도 차도 뚜렷했다. 준비해 간 온도계를 약수터 안쪽 바위틈에 올려놓고 10여 분을 기다리자 수치는 18.4℃까지 내려갔다. 약수터 밖의 눅눅한 여름 공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차량에서 에어컨을 틀었을 때보다도 바위틈에서 나오는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한곳에서 강한 바람이 쏟아지는 인공 냉방과도 달랐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에서 새어 나온 냉기가 약수터 안쪽을 서늘하게 채웠다. 몸을 숙여 바위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찬 기운은 더욱 선명해졌다.
대구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얼음골을 찾은 황정민(38)씨도 예상보다 강한 냉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씨는 "어릴 때 청송에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 여자친구와 찾아왔다"며 "약수터 안으로 들어오니 에어컨을 켜놓은 곳보다 훨씬 시원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돼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며 "국내에도 이렇게 독특하고 신비로운 장소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영덕에서 친구들과 여행 온 노년 관광객들도 약수터 주변에서 차가운 약수를 번갈아 마셨다. 이들은 "물을 마시니 더위가 달아나는 것 같다", "정말 시원하다"며 감탄했다. 물병에 약수를 담거나 바위틈에서 나오는 냉기를 직접 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청송 얼음골 인공폭포가 설치된 탕건봉 암벽의 모습. <정운홍 기자>
약수터 옆에는 인공폭포가 설치된 탕건봉 암벽이 높이 솟아 있었다. 이날 폭포는 가동되지 않았지만, 계곡을 덮은 짙은 나무 그늘과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만으로도 약수터 주변은 바깥과 확연히 다른 자연 냉방공간처럼 느껴졌다.
청송 얼음골의 냉기는 독특한 지질구조에서 비롯된다. 이곳에는 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응회암이 무너져 내리면서 크고 작은 돌이 산비탈 아래 두껍게 쌓인 '애추' 지형이 발달해 있다. 애추는 흔히 너덜지대로 불리는 돌무더기 지형이다.
바위틈으로 들어간 공기는 지하의 낮은 온도와 높은 습도의 영향을 받은 뒤 아래쪽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고 습한 공기가 애추 하단으로 빠져나오면서 주변 온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사면이 북쪽을 향해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지형도 찬 기운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준다.
청송군 얼음골 약수터로 이어지는 돌다리를 관광객들이 건너고 있다. <정운홍 기자>
기온과 습도, 강수량 등의 조건이 맞으면 한여름에도 바위 사이에 얼음이 생긴다. 다만 얼음이 항상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얼음이 보이지 않더라도 약수터 안쪽에서는 바깥보다 현저히 낮은 온도와 바위틈의 냉기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청송군도 얼음골을 주왕산국립공원과 청송백자, 달기·신촌약수탕 등과 연계한 여름철 '청정 힐링 여행지'로 소개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울창한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청송의 대표 관광명소라는 설명이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청송은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관광 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름 휴가지"라며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청송에서 무더위를 잊고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눅눅한 여름 공기를 견디며 돌다리를 건넌 뒤 만난 18.4℃의 바위틈. 청송 얼음골은 단순히 얼음을 구경하는 곳을 넘어 자연이 만들어낸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여행지였다. 한여름에도 잠시 계절을 거꾸로 돌려놓는 듯한 이색 피서지로 손색이 없었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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