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얼마 전, 고우석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샌디에이고와 계약하고 도미한 뒤, 무려 2년 반이나 인고하여 이룬 값진 성과였다. 팬들조차 이제는 그만하고 돌아와야 하지 않나 하던 와중에 갑자기 이루어진 승격이라 더 감동적인 일면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동화는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미네소타의 26인 로스터에 등록된 지 딱 11일 만에 그는 성적부진으로 다시 트리플A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30년 전쯤에는 미국 팀과 계약만 하면 저절로 메이저리거가 되는 줄 알던 순진했던 시절도 있었다. 1호 K-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 선수는 마이너를 스킵하고 메이저 무대를 살짝 경험했고, 2호, 3호인 조진호, 김병현도 고작 3개월 만에 빅리그의 마운드에 콜업되다 보니, 당시 잘 모르던 한국인들은 그렇게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메이저 무대를 단 한 번만이라도 밟아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 한때 역대급 재능이라 불렸던 선수들조차 그것에 실패하고 쓸쓸하게 한국으로 돌아온 케이스가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가장 먼저 박철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밀워키 소속으로 2년간 마이너 생활을 했었는데, 온갖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와중에도 꽤 괜찮은 성적을 내어 트리플A로 승격을 앞두고 있었다. 그대로 계속 두었으면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꽤 일찍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그런 박철순을 귀국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한국프로야구의 출범이었으니 이 케이스는 그나마 훈훈하다 하겠다.
최향남은 마이너에서 3년을 보내며 두 시즌을 2점대의 준수한 방어율로 보냈지만, 결국 꿈에 그리던 메이저 콜업은 받지 못했다. 너무 많은 나이 탓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00억이 넘는 계약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향했던 윤석민 역시 끝내 메이저 무대를 밟지 못하고 돌아왔다. 캠프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널 선발로 쓰고 싶으니, 마이너에 가서 몸을 만들어 오라"는 통보와 함께 내려간 뒤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학주 역시 너무나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그는 언젠가 골드 글러브를 받을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2013년에는 콜업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현지 보도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필 십자인대 부상이 찾아왔고, 그는 그 뒤 다시는 그 시절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다.
가장 불운한 것은 아마도 송승준이 아닐까 한다. 그는 한때 보스턴 레드삭스 유망주 1위에 꼽힐 만큼의 기대주였는데, 메이저 콜업이 확정된 뒤 치러진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승격이 좌절된 일화는 유명하다. 그 뒤에도 소속팀 몬트리올이 재정난에 빠지는 등 여러 가지 불운이 겹치며 매번 물을 먹었던 송승준. 7년간의 길고 긴 마이너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그는 당시 소속이었던 캔자스시티에게 마지막으로 하소연해봤다고 한다. "월급을 반납할 테니, 날 메이저리그 경기에 딱 1번만 뛰게 해 달라." 그간 얼마나 속이 썩어 들어갔으면 이런 부탁을 했을까 싶었던지, 구단의 사장이 직접 그를 찾아와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고.
그러니 고우석 선수, 어깨를 펴시오. 유명한 시인 테니슨은 "사랑하고 잃은 게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보단 낫다"고 노래하지 않았소. 그대는 끝내 그 무대를 밟아보고 잃었으니, 그래도 절반은 이룬 사람이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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