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마당 이영희대표의 구미 소재 대형 유리온실에서 야생화가 생산되어 전국으로 납품되고 있다. <아영희 대표 제공>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경북 구미·김천·칠곡·성주 산업권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산업단지 노후화와 청년층 유출, 정주여건 악화라는 복합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단지와 도심, 산림과 하천을 하나의 녹색 생태축으로 연결하는 '새마을 산업정원' 프로젝트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새마을 산업정원은 단순히 산업단지에 나무를 심는 조경사업이 아니다. 산업 생산 공간에 녹색 생태환경을 접목해 근로자에게는 휴식과 치유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주민에게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산업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나아가 산업 경쟁력과 지역 정주 여건을 동시에 높이는 새로운 도시 발전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 제공.
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 유상오 원장은 "새마을 산업정원은 공단에 꽃을 심는 사업이 아니라 산업과 환경, 문화와 복지가 융합된 지역 혁신 프로젝트"라며 "구미·김천·칠곡·성주를 시작으로 경북 전역에 산업정원 모델이 확산된다면 대한민국 산업도시 재생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독일 루르(Ruhr) 공업지역의 'IBA 엠셔 파크' 프로젝트
산업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독일 루르(Ruhr) 공업지역이다. 1980년대 석탄과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루르 지역은 경제 침체와 환경오염, 인구 감소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주정부는 기존 산업시설을 철거하는 대신 산업유산을 보존하면서 정원과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IBA 엠셔 파크(IBA Emscher Park)'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폐철강소와 폐탄광은 역사성을 살린 환경공원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중금속으로 오염됐던 엠셔강은 친환경 생태하천으로 복원됐다. 여기에 공장과 주거지, 산림을 연결하는 광역 녹색 네트워크인 '그린 코리더'와 수생태계를 복원한 '블루 코리더'를 구축하면서 루르는 세계적인 산업유산 관광지이자 생태도시로 재탄생했다.
루르 사례는 산업시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산업유산과 녹색공간을 결합해 새로운 도시 경쟁력을 만들어낸 대표 사례다. 이는 구미를 중심으로 한 새마을 산업권역이 지향해야 할 '산업 유산의 생태적 재생'과 '그린·블루 코리더 구축'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 경북형 해법은 '기업 후원 정원'
독일 사례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경북 산업권의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 전략도 필요하다. 그 차별화 전략은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기업 후원 정원(Corporate Sponsored Gardens)' 모델이다.
기존 지자체 중심 정원사업이 예산 부족과 사후관리 한계에 직면했다면, 기업 후원 정원은 지역 입주기업이 ESG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공단 유휴부지와 하천변, 사업장 주변에 브랜드 정원을 조성하고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탄소중립 실천과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근로자는 출퇴근길과 점심시간에 녹색 정원을 이용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근무환경 개선은 근로 의욕을 높이고 우수 인재 확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행정안전부 손현규 마을기업팀장은 "기업이 정원을 가꾸고 마을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재정적인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며 "50여 년 전 구미에서 시작된 공장새마을운동 역시 공장 청소와 미화에서 출발했던 만큼 기업 참여형 정원이 지역과 기업의 새로운 미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역 특성 살린 4개 시·군 역할 분담 필요
기업 참여형 산업정원이 성공하려면 지역마다 다른 산업 기반과 자연환경을 고려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구미·김천·칠곡·성주가 각각의 특성을 살린 거점 정원을 조성하고 이를 하나의 광역 생태축으로 연결해야 한다.
구미시의 경우 국가산업단지와 낙동강을 연결하는 대규모 그린 코리더를 구축하고, 노후 공장 담장과 유휴부지를 활용한 기업 후원 정원을 확대해 '친환경 정원 공단'으로 전환한다.
김천시는 혁신도시와 율곡천, 공공기관 부지를 연계한 스마트 치유정원을 조성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가족 중심의 휴식공간을 확충하고, 칠곡군은 낙동강과 왜관공단을 중심으로 출퇴근 정원길과 근교 힐링정원을 구축해 대구·구미 배후도시의 장점을 살린 녹색 휴양공간을 만든다. 성주군은 참외 산업과 농촌경관을 활용한 주민 참여형 치유정원을 조성해 농촌체험과 치유농업을 연계한 6차 산업 활성화를 추진한다.
◆ 4개 시·군을 하나로 잇는 '그린·블루 코리더'
핵심은 구미·김천·칠곡·성주를 하나의 생태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그린·블루 코리더' 구축이다. 낙동강 수계를 따라 블루 코리더를 조성하고, 광역 도로망과 철도, 산림,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그린 코리더를 구축하면 새마을 산업권역은 대한민국 최초의 광역 산업정원 벨트로 성장할 수 있다.
유 원장은 "새마을 정신에 정원문화를 접목한 산업정원은 기업과 지역사회, 행정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산업복지 모델이 될 수 있다"며 "산업단지와 하천, 주거지, 산림을 하나의 녹색 생태축으로 연결하는 그린·블루 코리더 구축은 지방소멸 시대 경북 산업도시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성장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지역에 조성된 민간 정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구미의 대형 유리온실(5만4천㎡) 등에서 자생화초를 재배해 보급하고 있는 초록마당 이영희 대표는 "경북이 정원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기후에 잘 적응하는 다년생 야생화를 중심으로 정원 생태계를 조성해야 유지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다년생 야생화는 고령화가 진행되는 농촌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 산업 경쟁력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지역 대개조 프로젝트
이같은 새마을 산업정원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 미관 개선 사업이 아니다.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지역 대개조 프로젝트다. 산업 측면에서는 기업의 ESG 경영 강화와 우수 인재 유치, 정원산업과 6차 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환경 측면에서는 미세먼지 저감과 도심 열섬현상 완화, 탄소흡수원 확충 효과가 기대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근로자의 스트레스 감소와 주민 삶의 질 향상,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한 인구 유입 기반 마련이라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북도와 4개 시·군이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기업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세제 지원과 공모사업, 정원 전문가 양성 및 유지관리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강대희 교수는 "4개 시·군의 명확한 역할 분담과 그린·블루 정원 코리더 연결 구상은 경북의 새로운 광역 정원도시 모델이 될 수 있으며 삶의 질 향상이라는 예방의학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향후 산림청과 지방시대위원회 공모사업, 국비 확보 사업으로도 충분히 확장 가능한 프레임"이라고 평가했다.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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