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거짓을 믿는 일

  • 신보라 소설가
  • |
  • 입력 2026-08-04 16:48  |  발행일 2026-08-05
신보라 소설가

신보라 소설가

누군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믿음을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다시는 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우리는 돈을 내고 거짓말을 산다는 것.


소설이 그렇다. 표지에 적힌 제목도 첫 문장부터 등장하는 인물도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 속의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꺼이 그 거짓말을 읽는다. 심지어 좋은 소설일수록 그 거짓말에 감탄하면서.


왜일까.


아마 우리는 소설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은 늘 사실을 주장한다. 뉴스는 사실을 말하려 하고 기록은 사실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언제든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은 비가 왔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비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날 머리를 망친 날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우산을 두고 나온 수요일일 뿐이다.


사실은 하나지만, 삶은 언제나 여러 개다.


소설이 바로 그 여러 개의 삶을 보여주는 장르이지 않은가.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이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묻지 않는다. 대신 나라면 어땠을까, 를 묻는다. 현실을 확인하는 대신 타인의 가능성을 살아본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삶을 잠시 빌려 살아본다는 것.


어쩌면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안전한 실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 사람을 죽여 보기도 하고, 사랑해 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잃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 다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온다. 다치지 않은 채, 그러나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그래서 소설은 현실을 대신하지 않는다.


현실을 연습하게 만든다.


좋은 소설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내가 조금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이해되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설은 결국 진실에 도착하기 위해 가장 멀리 돌아가는 장르인지도 모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