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다, 경주의 동해②] 천년 전 바다를 오늘 만나는 방법

  • 이지용·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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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06 17:58  |  수정 2026-08-06 23:09  |  발행일 2026-08-07
문무왕이 선택한 그 바다…실감 영상에 취해 두 시간째 ‘물멍’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옛 대본초등 부지에 들어선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경주시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준비와 추진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지상 2층, 연면적 1천793㎡ 규모의 역사관을 개관했다.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이견대 등 동해안 역사 유적을 하나의 해양문화 관광축으로 연결하는 경주시 동경주 관광 전략의 거점이다.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옛 대본초등 부지에 들어선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경주시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준비와 추진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지상 2층, 연면적 1천793㎡ 규모의 역사관을 개관했다.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이견대 등 동해안 역사 유적을 하나의 해양문화 관광축으로 연결하는 경주시 동경주 관광 전략의 거점이다.

감포 대본초 자리에 문 연 해양역사관

문무정신 다듬는 배움의 집 역할 지속

2층 오르면 신라와 본격적인 해양 여정

세계를 향한 '두려움 없는 도전'과 마주

역사관 나와 대본항으로 걸음 옮기다

신라 동해구 등 여러 비석과도 만나

삶의 바다로 나아갈 용기 북돋우는듯

바닷물결이 나를 에워싼다. 사방에서 밀려왔다가 발끝에서 부서진다. 물결은 몇 번이나 발등을 덮었지만 발은 여전히 뽀송하다. 바닷바람의 소금기도, 특유의 비릿한 내음도 없다.


나는 이곳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의 실감영상실에서 두 시간째 '물멍' 중이다.


체감온도 40℃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로 휴가에도 선뜻 길을 나서기 두려운 날, 경주에서 뜻밖에 가장 쾌적한 동해를 만났다. 역사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문을 닫는 오후 6시까지, 누구도 이제 그만 나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실내의 동해다. 게다가 개관한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아직은 호젓하게 누릴 수 있다.


벽과 바닥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조금 중독성이 있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 앞에서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 느슨해진다. 그 틈으로 문무왕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바다, 신라가 세상으로 나아간 바다, 그리고 천년 뒤 우리가 다시 발견한 바다가 차례로 펼쳐진다.


잠시 더위를 피할까 싶어 들어왔는데, 어느새 천년 전 바다 한가운데 와 있다.


◆초등학교 자리에 선 해양역사관


"태백산 힘찬 줄기 뻗어내려/동해를 뚫고 솟은 아침 햇빛/어둠 속 찬란한 꿈 활짝 피고/그 터에 화랑 후예 기쁨의 꽃/문무정신 다듬는 배움의 집/마을의 빛이 되자 우리 대본(경주 대본초등 교가. 김요섭 작사)"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에 들어서면 오래된 교가 한 곡을 마주하게 된다. 악보 곁에는 운동회 날 줄을 맞춰 선 아이들과 교정에서 뛰어놀던 학생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곳은 한때 대본초등학교였다. 1940년 문을 열어 61차례의 졸업식을 치르며 1천255명의 학생을 길러냈다. 아이들은 날마다 동해를 바라보며 '문무정신'을 노래했다. 학생이 줄면서 2010년 마지막 졸업생 한 명을 떠나보낸 뒤 문을 닫았지만, '문무정신 다듬는 배움의 집' 역할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올해 5월, 이 자리에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문을 열면서 아이들이 노래로 익혔던 문무왕과 동해의 이야기를 이제는 영상과 체험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경주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로비 상징조형물.

경주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로비 상징조형물.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문무대왕릉을 형상화한 상징조형물이 제일 먼저 반긴다. 문무대왕 체험미디어존에서 왕의 이야기를 가볍게 익히고, 카페테리아와 기념품 가게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문무왕과의 첫인사를 나누듯 천천히 몸을 푸는 공간이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닿으면 천년 전 바다를 향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문무대왕 역사전시실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의 생애에서 출발해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마지막 뜻으로 향한다.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이견대에 나뉘어 있던 역사가 전시실 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운 파도가 밀려오고 천년 전 신라의 배가 물길을 가른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으면 역사 공부를 하러 왔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그저 '물멍'하기 딱 좋은 바다다.


다리처럼 연결된 야외 복도를 지나 옆 전시실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공을 던져 적의 함대를 격파하고, 배를 직접 만들고 그려보는 아이들로 신라 해양 실크로드 전시실은 왁자하다. 아이들은 화면 앞으로 달려가 차례를 기다리고, 성공할 때마다 환호한다. 그렇게 한바탕 놀다보면 신라인이 어떤 배를 타고 어느 항로를 오갔는지, 바다 건너 무엇을 주고받았는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아이들은 알까. 신라인에게 동해는 나라의 끝이 아니라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문무왕의 바다가 나라를 지키는 바다였다면, 신라인의 바다는 동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열린 교류의 바다였다. 그리고 그 항해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관 앞 넓은 잔디밭에 높이 6.76m의 문무대왕 유조비가 우뚝 서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한 676년을 상징하는 높이다. 비 뒤로 문무대왕 수중릉이 보인다.

역사관 앞 넓은 잔디밭에 높이 6.76m의 문무대왕 유조비가 우뚝 서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한 676년을 상징하는 높이다. 비 뒤로 문무대왕 수중릉이 보인다.

◆삶의 바다에 다시 돛을 올린 사람


"405일간 지중해, 대서양, 태평양을 포함한 17개국을 항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됐다. 이 도전은 내 삶의 전환점이자 스스로의 한계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정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이가 들수록 시작은 점점 두려워지고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으로 인해, 나는 더욱 이 항해 프로젝트를 꼭 완수하고 싶었다(김영애 선장, '하늘과 바다 사이 돛을 올리고')"


천년 전 신라인의 바닷길을 따라가던 발걸음이 한 장의 세계지도 앞에서 멈춘다. 1층 기획전시실에는 김영애 선장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한 사람이다. 60대에 돛을 올린 그는 크로아티아를 떠나 스페인과 모로코, 카리브해와 파나마 운하를 지나 태평양의 섬들을 거쳐 오키나와에 닿은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항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무려 3만3천㎞의 바다를 건너며 보낸 시간들이 사진으로 펼쳐진다. 태풍 속에서 위기를 넘긴 날도 있었고, 돌고래와 나란히 달리거나 무인도에서 생일을 맞은 순간도 있었다. 지도에서는 선 하나로 보이지만 그 길을 완성하려면 날마다 달라지는 바람을 읽고, 파도를 견디며, 수없이 다음 방향을 결정해야 했을 것이다. 익숙한 삶의 경계를 넘어 바다로 나아가는 그 사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항해와 천년 전 신라인들의 항해가 겹쳐졌다. 시대도, 배의 모양도 달라졌지만 바다 앞에서 두려움을 넘어 다음 길을 선택했다는 것만큼은 천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천년 전 신라인의 항해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도전으로 건너온 셈이다.


전시를 둘러본 뒤 조용하고 시원한 1층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문무대왕릉이 있는 바다가 펼쳐졌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왕의 바다, 세계를 향해 배를 띄웠던 신라인의 바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다시 돛을 올린 한 사람의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역사관 건너편 대본리 어촌마을로 들어가는 나지막한 언덕에 신라 동해구 표석이 우뚝 서 있다. 신라 동해구라는 명칭은 글자 그대로 신라가 동해로 나아가는 어귀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무대왕릉이 바라보이는 이 바다의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압축해 보여주는 이름이다.

역사관 건너편 대본리 어촌마을로 들어가는 나지막한 언덕에 신라 동해구 표석이 우뚝 서 있다. 신라 동해구라는 명칭은 글자 그대로 '신라가 동해로 나아가는 어귀'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무대왕릉이 바라보이는 이 바다의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압축해 보여주는 이름이다.

◆바다의 수업은 계속된다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길어보아라. 경주에 가거들랑 모름지기 이 문무왕의 유적을 찾으라(고유섭, '경주기행의 일절')"


역사관을 나와 대본항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여러 기의 비석 앞에 멈춰 섰다.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대왕암', 그리고 '신라동해구'. 한여름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선 돌마다 오래전 이 바다를 바라본 사람들의 글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심에 유난히 경주 동해를 아꼈던 한 학자가 있다.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우현 고유섭이다.


1905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 미술을 우리 시선으로 읽고 기록하기 위해 전국의 절과 탑, 불상과 옛터를 찾아다녔다. 그가 유난히 오래 마음에 품었던 곳이 대종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이곳,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경주의 바다였다. 문무왕이 죽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나라와 그 뜻을 품은 바다. 고유섭은 이 바다를 두고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고 불렀다. 그가 마흔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제자 황수영과 진홍섭 등은 스승의 학문을 이어받았고, 황수영 등이 참여한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은 1967년 대왕암을 직접 조사했다. 이후 제자와 후학들은 스승 고유섭의 글과 뜻을 돌에 새겨 그가 잊지 못했던 바다 곁에 세웠다. 한 사람이 바라본 바다가 다음 사람의 연구가 되고, 다시 다음 세대가 찾아오는 길이 된 것이다.


비석 앞에서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저만치 있다. 문무왕이 바다에 남긴 뜻을 고유섭이 다시 읽었고, 제자들은 스승의 시선을 따라 대왕암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문무정신'을 노래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이제 교실도,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도 사라졌지만, 그 학교의 자리에서는 또 다른 배움이 계속되고 있다. 천년 전 왕이 남긴 뜻을 배우고, 신라인이 건넜던 바다를 만나고, 다시 자기 삶의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곳. 대본초등의 수업은 끝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바다의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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