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브르노 구시가지. 브르노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어떤 도시는 사람으로 발견되고 기억된다. 브르노는 '야나체크(1854–1928)'라는 이름을 따라가다 만난 도시이다. 처음 접한 건 하루키의 소설 '1Q84'(2009)이다. 소설 서두에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는 장면이었다. 두 개의 달이 뜨는 평행 세계인 1Q84년만큼이나 낯선 이름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이 모라비아(Moravia) 시골이었고, 활동한 도시가 바로 브르노였다. 그렇게 브르노를 뒤지다 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 역시 브르노 출신이었고, 야나체크의 열렬한 팬이었다. 어쩌면 하루키도 쿤데라를 통해 야나체크를 알았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브르노는 사람으로 만난 도시였다.
근데 모라비아라니? '보헤미아(Bohemia)'는 익숙해도 모라비아는 낯설었다. 알고 보니 두 지역은 체코의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이었다. 동쪽과 서쪽의 이 두 지역을 합쳐야 완전한 얼굴이 된다. 동북부의 작고 길쭉한 실레시아(Silesia) 지역은 이마 위에 살짝 얹힌 두발 같아서 그렇다 해도, 모라비아를 뺀 체코는 반쪽짜리이다. 당연히 두 지역은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보헤미아가 필스너우르켈이라는 황금빛 맥주의 탄생지라면 모라비아는 꽃향기와 과일 향으로 이름난 팔라바 화이트와인의 주산지이다. 보헤미아의 중심이 수도 프라하라면 모라비아의 중심 도시는 브르노이다.
브르노는 인구 약 38만명의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프라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자 보헤미아 왕국의 중심지로 수백 년간 왕실과 국가 권력의 요충지였다. 반면 브르노는 모라비아 지역의 거점 도시로서, 오스트리아 빈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덕분에 슬라브 문화와 오스트리아 문화가 교차하는 문화 교융지였다. 브르노는 중세 도시의 역사성 위에 산업화, 전쟁, 사회주의 시대, 현대 혁신 도시의 흔적이 한곳에 겹쳐 있는 도시이다.
브르노 구시가지 거리. 도시는 중세시대에 형성돼 근대에 들어와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브르노의 도시 역사는 아주 오래됐지만, 현재의 뼈대는 중세시대에 형성됐다. 모라비아는 모라바 강 일대를 말한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 인근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을 지난 뒤 다뉴브(도나우)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9세기에서 10세기경 대모라바 왕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모라비아 지역의 교통로와 교역로가 만나는 지점에 건설된 도시가 브르노였다. 이곳은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방면을 잇는 길목이어서 사람이 모이고 시장이 생기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브르노가 사람과 물자, 권력이 오가는 접점에 형성된 도시라는 뜻이다.
브르노가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3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에 방어용 성곽을 구축해 왕권을 유지하는 거점 도시가 됐다. 당시에 건축된 여러 시설물이 오늘날 브르노 구시가지의 골격이다. 좁은 거리와 광장 중심 구조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브르노는 근대에 들어와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섬유 산업이 크게 발전하여 한때 '모라비아의 맨체스터'로 불렸다. 유럽 각지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철도와 교통망이 구축되면서 브르노는 중세의 압축 도시에서 근대의 팽창 도시로 변모했다. 특히 독일인과 유대인 공동체가 함께 사는 다문화 도시가 됐다.
오늘날에도 브르노는 체코의 교육과 연구, 기술과 산업의 중심지이다. 브르노에는 여러 대학과 연구 기관이 모여 있고, 젊은 인구 비중도 높다. 도시 분위기도 프라하와 달리 차분하고 실용적이며 학문적이다. 중세 교역과 요새 도시에서 근대 산업도시로, 다시 현대 교육과 기술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브르노는 중세의 뼈대 위에 근대 산업화와 현대 혁신이 겹쳐 있는 도시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 '신포니에타'를 만들었다. 위키백과 제공
브르노 여행도 토박이 야나체크의 음악 가이드가 유용하다. 야나체크의 음악은 보헤미아 출신의 스메타나나 드보르자크와 달리 모라비아의 지역적 정서와 브르노의 도시 생활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독일 음악의 영향 아래 있는 데 반해, 야나체크는 러시아 음악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보다 개성적이며 슬라브적이다.
특히 야나체크가 72세 때인 1926년에 만든 '신포니에타'는 다섯 악장의 부제에 브르노의 여러 상징들을 담았다. 그는 이 곡에 대해서 "이 시대의 자유민, 영적인 아름다움과 환희, 힘과 용기, 그리고 승리를 향한 투쟁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후 갓 독립한 조국을 위한 찬가로 읽히는 이 곡은 브르노라는 도시의 역사와 생활을 통해 그 감격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래서 1악장 '팡파르'에 이어 2악장부터 5악장까지 각각 '성' '여왕의 수도원' '거리' '시청사' 등 브르노의 대표 유적들을 부제로 달았다. 1악장 팡파르가 독립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축하한 것이라면 2악장 성은 권력과 방어, 3악장 여왕의 수도원은 신앙과 성찰, 4악장 거리는 시민의 일상생활, 5악장 시청사는 자치와 공공성을 상징한다. 이처럼 야나체크는 '신포니에타'를 통해 브르노의 역사와 문화, 도시 정신과 일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 곡을 '하나의 도시를 그린 교향적 스케치'라고 부르기도 하며, '음악이 건축처럼 쌓이고, 거리처럼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제 이어폰을 꽂고 '신포니에타'의 선율에 따라 도시를 돌아보자. 금관악기의 장엄한 1악장이 지나면 목관의 짧은 선율과 현악의 긴장된 떨림이 도시의 건물과 골목을 휘감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숨결처럼 귀를 간지럽힌다. 각 악장의 부제는 실제 브르노의 대표 볼거리들을 상징한다. '성'은 슈필베르크 성, 여왕의 수도원은 성 토마스 수도원과 대성당 등의 종교 건축물, 거리는 자유 광장과 야채 광장으로 대표되는 구시가지, 시청사는 시민 정신과 공동체 삶을 대변하는 공공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다.
페트로프 언덕 남쪽의 데니스 가든에서 바라본 슈필베르크 성. 이 성은 브르노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한다.
야나체크가 '팡파르'를 울린 뒤 곧장 '성'을 제시한 것은 브르노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슈필베르크 성'이기 때문이다. 어딘가 단호하고 절제된 움직임의 2악장 선율은 성벽의 견고함, 군사적 질서, 엄숙한 행진 등을 연상시킨다. 이 성은 13세기 중반 보헤미아 국왕 오타카르 2세에 의해 건립된 요새 겸 왕궁이다. 브르노 시내 슈필베르크 언덕 정상에 자리해 요새로서도 완벽한 위치였다. 화려한 왕궁의 외형과 함께 어둡고 깊은 지하 감옥과 고문실을 품고 있기도 하는 등 역사의 장면마다 다양하게 용도를 바꾸어왔다.
이 성은 17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30년 전쟁 시기에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1645년 5월 스웨덴 군대가 도시를 포위했지만 끝까지 항전하며 막아냈던 곳이다. 당시 적을 막기 위해 급하게 목수와 석공들을 동원해 요새처럼 장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왕궁에서 요새로 주 용도가 바뀐 것이다. 따라서 이 성은 시민의 의지와 불굴의 투쟁을 상징하는 역사적 공간이 됐고, 브르노는 모라비아의 전략적 핵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8~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 시절에는 유럽 전역의 정치범을 수용했던 악명 높은 감옥이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군의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2악장의 긴장, 음울함, 압박감 등의 음색은 이 성에 적층된 역사를 반추하는 선율 같았다.
현재는 주변 언덕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성은 박물관과 전시실, 공연장 등으로 개조하여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이 됐다. 구시가지에서 출발해 울창한 녹음과 성곽 주변의 완만한 돌길 산책로를 오르다 보면 브루노 시내는 물론,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담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브르노 전경도 멋지지만 특히 노을이 아름다워 일몰 명소로 이름 높다.
성 토마스 수도원과 교회. 14세기경 엘리슈카 레이츠카라는 왕비가 세워 '여왕의 수도원'으로도 불린다.
이제 3악장 '여왕의 수도원'으로 넘어간다. 여왕의 수도원은 슈필베르크 언덕 남쪽의 맨델 광장에 있는 성 토마스 수도원(St. Thomas's Abbey)을 말한다. 14세기경 '엘리슈카 레이츠카'라는 왕비가 세워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으로, 야나체크가 어린 시절 이 수도원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던 곳이기도 하다.
성 토마스 수도원의 맨델 석상. 이 수도원 정원에서 멘델은 완두콩 실험을 진행하며 '멘델의 법칙'을 발견했다.
성 토마스 수도원의 맨델 박물관. 성 토마스 수도원은 '유전학의 발상지'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은 '유전학의 발상지'로 더욱 유명하다. 수도사였던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1856년부터 1863년까지 이 수도원 정원에서 완두콩 실험을 진행하며 '멘델의 법칙'을 발견한 곳이기 때문이다. 멘델은 1868년부터 1884년까지 이 수도원의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 경내에는 마사리크 대학의 멘델 박물관(Mendel Museum)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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