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회로 나갈 자신감 생겼다”…대구역 노숙인 일자리, ‘자립 디딤돌’로 우뚝

  • 조윤화·동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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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05 07:57  |  발행일 2026-09-05
시·한국철도공사·노숙인지원센터 맞손
노숙인 대상 일자리 협력사업 6년째
참여 노숙인 42명 중 35명 탈노숙 성공

대구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지역 내 노숙인을 대상으로 대구역 일대 환경미화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이 자립을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노숙인에게 단기간의 근로 기회를 제공해 사회 적응력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안정적인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칙적인 근로를 통한 심리 불안 완화와 자립 의지 향상으로 노숙인의 사회 복귀를 돕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다시 사회 복귀할 수 있단 자신감 생겨"


31일 오전 대구역 인근에서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민재(가명·60·왼쪽)씨가 환경미화 활동을 하고 있다. 동경민 수습기자

31일 오전 대구역 인근에서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민재(가명·60·왼쪽)씨가 환경미화 활동을 하고 있다. 동경민 수습기자

31일 오전 10시쯤 대구역 광장. 지난 6월부터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민재(가명·60)씨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시민들이 오가는 역사 주변을 청소하는 일은 이제 김씨의 일상이 됐다. 그는 "대구역 광장을 돌면서 담배 부스와 화단 주변을 청소하고, 엘리베이터 앞은 밀대로 쓸고 물걸레질도 한다"며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광장을 계속 돌면서 하루에도 서너 바퀴씩 청소한다. 더러웠던 역 주변이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시민들이 깨끗해진 역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기분도 좋다"고 말했다.


이날 김씨는 취재진에게 자신의 인생 스토리와 거리노숙 당시 느꼈던 심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한때 대기업에 다녔던 김씨는 IMF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었다. 이후 수차례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이혼까지 겪었다. 2023년에는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사고가 나면서 일할 의욕마저 잃었다. 경제활동을 멈춘 뒤 모아둔 돈과 월세 보증금까지 소진한 그는 결국 지난해 1월 거리로 나왔다.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보다 더한 바닥이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31일 낮 12시 대구 북구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2026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에 참여한 김민재(가명)씨가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동경민 수습기자

31일 낮 12시 대구 북구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2026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에 참여한 김민재(가명)씨가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동경민 수습기자

그렇게 반월당역 일대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주변 노숙인들을 바라보며 허탈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거리노숙 생활이 길어질수록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질 거란 불안감에 휩싸인 것이다. 그는 "거리노숙을 오래 하다보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수중에 1천~2천원이 생기면 곧바로 술을 사 마시는 생활이 반복되기 쉽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순식간에 세월만 간다. 노숙 기간이 길어지기 전에 다시 생활 리듬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1년 넘게 거리노숙 생활을 하던 김씨는 지난 6월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꾸준히 출퇴근하면서 무너졌던 생활 리듬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김씨는 "무엇보다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꾸준히 출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몸과 마음도 건강해졌다. 일을 하는 동안 그동안 살아온 인생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김씨의 다음 목표는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 사업이 끝나면 청소업체나 경비업체 취업에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월 91만원


대구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2020년부터 매년 운영 중인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의 연도별 참여자 및 자립노숙인 현황. 대구시 자료를 토대로 Claude 생성

대구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2020년부터 매년 운영 중인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의 연도별 참여자 및 자립노숙인 현황. 대구시 자료를 토대로 Claude 생성

앞서, 김씨 사례가 노숙인들의 일상적 사회 복귀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면, 지난해 사업 참여자 박성호(가명·60대)씨 사례는 실제 탈노숙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2024년부터 약 1년간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했던 박씨는 지난해 센터를 통해 대구역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이후 조건부수급자(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받는 수급자)로 자활근로(근로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게 일자리 제공)를 이어 나갔다. 현재는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한 상태다. 박씨는 "거리에서 지낼 때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며 "다시 일을 시작하며 근로소득과 수급비를 바탕으로 월세방도 마련했다. 내 이름으로 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니 이제야 다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1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시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2020년부터 매년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노숙인들은 대구역 일대에서 6개월(주5일·하루 3시간)간 환경미화 업무를 맡는다. 월평균 급여는 91만원이다.


이 사업은 대구시가 총괄한다. 코레일 대구역은 사업비를 지원한다.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참여자 선발과 현장 관리, 사업 종료 이후 자립 지원 등을 맡는다. 올해는 노숙인 6명이 선발돼 지난 6월부터 근무하고 있다.


사업 성과는 뚜렷하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에 참여한 노숙인 42명 중 35명이 실제 탈노숙(일정한 소득과 주거를 확보해 거리노숙이나 노숙인 지원시설 생활에서 벗어난 경우)을 이뤄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대구지역 노숙인 수도 장기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거리노숙인과 일시보호시설·자활시설 이용자를 포함한 지역 노숙인(매년 말 기준)은 2020년 232명에서 지난해 161명으로 30%가량 줄었다. 올해(6월 기준) 파악된 노숙인 수는 모두 160명이다.


대구시는 코레일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노숙인의 일자리와 자립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대구시 한기봉 복지정책과장은 "노숙인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앞으로도 한국철도공사 등 유관기관과 협력을 강화해 탈노숙 사업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립 이끄는 '단계적 근로'의 힘


대구 동대구역 인근 한 거리에서 노숙인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 DB

대구 동대구역 인근 한 거리에서 노숙인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 DB

일선 현장을 책임지는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선 일반 노동시장에 진입하기에 앞서 단계적으로 생활 능력을 회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처음부터 일반 취업시장에 진입할 경우 의지 부족으로 근로를 지속하지 못한 채 다시 거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 권용현 사무국장은 "노숙인들이 처음부터 일반 취업시장에 진입해 주 40시간씩 일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취업을 연계하더라도 3개월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매일 출근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노숙인에게는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 노숙인들이 완전히 자립해 경제생활을 영위하기까지 '노숙인 일자리 창출 협력사업'이 그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센터는 사업 참여가 끝난 뒤에도 1년간 참여자의 자립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며 "통상 1년 정도 안정적으로 자립생활을 유지하면 다시 거리노숙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숙인에게 제공하는 단기간 일자리가 단순한 소득 지원을 넘어, 개인과 사회를 다시금 연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성대학교 류태경 교수(사회복지자율학부)는 "단시간 미화활동 중심의 사업이 지닌 영향을 간과하기 쉽지만, 노숙인에게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소득 지원을 넘어 심리적 불안을 낮추고 일상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며 "주거 지원과 민간·공공 일자리 진입은 물론 의료·복지·고용서비스까지 함께 연계되는 종합적인 지원체계가 더해진다면 노숙인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와 자립을 더욱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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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사회1팀 조윤화 입니다. 중구 동구 시민단체 복지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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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민

당신의 친절한 이웃, 동경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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