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정년퇴직 뒤에도 도로 위 지키는 김상필씨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건강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해야죠”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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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3 00:20  |  발행일 2026-09-13
32년 공직생활 마치고도 교통현장 지켜
뙤약볕·한파에도 행사장·5일시장 누벼
김상필씨(우측 끝)가 지난 4일 영덕 전통 5일장을 찾은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주며 시내버스 승차를 돕고 있다. 김씨는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드리고 버스 시간을 안내했을 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두백 기자

김상필씨(우측 끝)가 지난 4일 영덕 전통 5일장을 찾은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주며 시내버스 승차를 돕고 있다. 김씨는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드리고 버스 시간을 안내했을 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두백 기자

한눈에 봐도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도로 위를 지켜왔는지 말해준다.


한여름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고 머리 위로 뙤약볕이 내리꽂혀도 김상필(68)씨의 수신호는 멈추지 않는다.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려도 차량의 흐름을 살피고 길을 건너는 주민과 어르신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 먼저다.


주말이라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덕지역에서 축제나 각종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현장으로 향한다. 전통 5일장이 서는 날에는 혼잡한 도로에서 차량을 안내하고 버스를 타고 장에 나온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운행시간을 알려준다.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주민들이 '수고한다'고 인사를 해주거나 커피 한 잔을 건네줄 때가 있어요. 장날 어르신들의 짐을 들어드렸을 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면 힘들었던 것도 금방 잊습니다."


정년퇴직은 많은 이들에게 일손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출발점이다. 하지만 김씨에게 정년은 '쉼'이 아니라 또 다른 봉사의 시작이었다.


◆32년 공직 떠나 다시 도로 위로


영덕읍에서 태어난 김씨와 자동차의 인연은 젊은 시절부터 시작됐다. 유명 제품 대리점의 배달·수송차량을 오랫동안 운전했던 그는 1986년 6월 영덕군에 임용됐다.


이후 2018년 6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32년간 기능직(운전)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공직생활 동안 영덕군수와 경북도지사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


퇴직 당시 그가 그렸던 노후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공직생활을 오래 했으니 이제 건강도 챙기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조금 편하게 지내려고 했죠. 시간 나는 대로 지역사회 교통봉사 정도는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현장 체질은 그를 다시 도로로 불러냈다.


퇴직과 함께 영덕군 모범운전자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총무를 맡고 있다.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과 학교 주변 교통혼잡지역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과 청소년 선도 등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활동에도 나섰다.


2018년 10월부터는 영덕군 교통지도 업무를 맡으면서 사실상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주 5일 하루 4시간 근무조건이었지만 김씨는 교통지도차량을 타고 지역 곳곳을 돌며 교통질서 유지와 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이어왔다. 경북지방경찰청장과 영덕경찰서장, 청소년육성재단이사장 표창도 받았다.


32년 동안 공직자로 운전대를 잡았다면 퇴직 후에는 도로 위에 직접 서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에게 교통정리는 익숙한 일이지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면 교통경찰을 도와 도로 중앙이나 사거리에 서서 차량을 안내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큰 도로에서 대형 차량이 몸 가까이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면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그도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낀다.


"큰 차가 바로 옆을 지나갈 때는 본능적으로 움찔할 정도로 아찔합니다. 사고 현장에서는 운전자들도 당황해 있기 때문에 더 긴장해야 합니다."


◆5일장 어르신 짐 들어주고…"고맙다는 말이 가장 큰 보람"


김씨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곳 가운데 하나가 영덕의 전통시장이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평소보다 차량과 사람이 한꺼번에 몰린다. 농어촌에서 버스를 타고 나온 고령의 주민들도 많다. 김씨는 교통정리를 하면서도 어르신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짐을 버스까지 옮겨주고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몇 시에 출발하는지를 알려준다.


"어르신들은 장을 보고 나면 짐이 많아요.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갑니다. 짐을 들어드리고 버스 시간을 알려드리면 몇 번씩 고맙다고 하시는데 그럴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영덕 전통 5일장이 열린 지난 4일 김상필씨가 시장을 찾은 주민의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을 돕고 있다. 김씨는 장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교통정리에 나서는 것은 물론 고령의 주민들이 무거운 장바구니와 짐을 옮길 때도 기꺼이 손을 보탠다. 남두백  기자

영덕 전통 5일장이 열린 지난 4일 김상필씨가 시장을 찾은 주민의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을 돕고 있다. 김씨는 장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교통정리에 나서는 것은 물론 고령의 주민들이 무거운 장바구니와 짐을 옮길 때도 기꺼이 손을 보탠다. 남두백 기자

지난 4일 강구에서 버스를 타고 영덕시장을 찾은 이수환(91) 어르신은 "저분(김상필씨)이 없으면 장을 보러 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버스를 타고 내릴 때 꼭 도와주고 있어 너무 고마운 사람"이라며 연신 고마워했다.


함께 온 또 다른 어르신(여.82)은 "짐을 들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헷갈리지 않도록 버스 시간까지 알려주고 있다"라며 그를 칭찬했다.


축제와 행사장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나 휴일에 행사가 열리면 남들이 쉬는 시간에 오히려 더 바빠진다. 차량이 몰리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 교통 흐름을 살피고 행사가 끝나 차량이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에게는 특별한 대가보다 현장을 지나던 주민과 관광객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라는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된다.


오랜 경험만큼 지역 교통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좁은 시가지 도로나 전통시장 장날, 각종 행사장 주변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주·정차 문제다.


"잠깐인데 어떠냐는 생각으로 차를 세우는 분들이 아직 많습니다. 좁은 도로에서는 차량 한 대만 잘못 세워도 전체 교통 흐름이 막히고 사고 위험도 커집니다."


고령 운전자가 늘어난 것도 교통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다. 운전이 서툴거나 차량 흐름에 맞추기 어려운 어르신 운전자를 만날 때면 재촉하기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안내하려 한다.


남송현 영덕군 교통정책팀장은 "어느 때 어떤 곳이 지정체가 심한지 훤히 알고 미리 도착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주말 휴일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기에 우리로선 너무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김상필씨가 영덕군민체육관에서 열린 2026 경북장애인한궁연맹 어울림대회 행사장 입구의 도로 위에서 차량 흐름을 살피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김상필씨가 영덕군민체육관에서 열린 '2026 경북장애인한궁연맹 어울림대회' 행사장 입구의 도로 위에서 차량 흐름을 살피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김씨의 봉사는 도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8년에는 영덕군 소방명예119요원으로 활동하는 등 생활안전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결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궁·궁도에 푹 빠진 '생활체육 전도사'


교통봉사복을 벗은 김씨가 즐겨 찾는 또 하나의 현장은 궁도장이다.


약 10년 전부터 한궁을 시작한 그는 2019년 한궁 심판과 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한궁 심판 1급과 궁도 심판 2급 자격도 갖고 있다.


특히 한궁은 어르신들이 비교적 쉽게 참여하면서 신체활동과 친목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씨가 애정을 갖고 있는 생활체육이다.


자신만 운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와 지도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르신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우며 생활체육의 즐거움을 주변에 알리고 있다.


교통안전과 생활안전, 한궁과 궁도. 언뜻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김씨에게는 하나로 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다.


오랜 세월 밖에서 생활하다 보니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크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퇴직 후에도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데다 도로 위에서 교통정리를 하다 혹시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고 한다.


"공직생활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집안 대소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많고요. 이제는 좀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봉사복을 벗을 생각은 없다.


앞으로 영덕군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활동하면서 군민과 지역 어르신들의 교통사고 예방에 힘쓰고, 영덕을 찾는 관광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역을 오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교통안전 활동을 나서기 위해 김상필씨가 영덕군 교통지도 차량 앞에 서 있다. 32년간 영덕군 운전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김씨는 2018년 정년퇴직 후에도 모범운전자회 활동과 교통지도를 이어가며 지역의 교통안전을 지키고 있다. <남두백 기자>

교통안전 활동을 나서기 위해 김상필씨가 영덕군 교통지도 차량 앞에 서 있다. 32년간 영덕군 운전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김씨는 2018년 정년퇴직 후에도 모범운전자회 활동과 교통지도를 이어가며 지역의 교통안전을 지키고 있다. <남두백 기자>

"거창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평생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하는 겁니다. 군민과 어르신들이 사고 없이 다니고 관광객들도 영덕에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가 자신의 봉사활동에 정해놓은 정년은 따로 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해야죠. 몸이 움직이고 제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계속 현장에 나갈 생각입니다."


32년간 공직자로 영덕의 도로를 달렸고, 정년퇴직 후에는 직접 도로 위에 서서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김상필씨.


햇볕에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그렇게 두 번째 정년을 미룬 채 고향의 길을 지켜온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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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두백

영덕을 대게 잘 아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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