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3,085안타의 국적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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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21 14:19  |  수정 2026-09-21 17:14  |  발행일 2026-09-22
박지형 문화평론가

박지형 문화평론가

유명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류학자는 자신의 사회에서 유배된 자이자, 다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존재다." 재일교포도 그렇다. 그들은 한 번도 온전한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동시에 일본에서도 '자이니치'라 불리며 오래도록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늑대 소녀'는 인간보다는 늑대에 가깝다. 현대인이 키운 크로마뇽인 아기는 완벽한 현대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이걸 알게 된 것은 최근 신장한 뇌과학의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학자들은 20세기부터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문화는 우리 뇌 속에 완벽하게 다른 구조의 시냅스를 창조해낸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에서 나고 자란 교포들을 볼 때,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분명 한국 사람의 외피인데 행동거지는 외국인인 것이다.


문화로 세팅된 뇌는 슬쩍 외피까지 바꾸는 것 같기도 하다. 재일교포 스포츠 선수들이 가장 좋은 예다. 이들은 아무리 봐도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에 가깝게 생겼다. 거기까진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의 차이라 쳐도, 이들의 사소한 제스처나 어투,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까지 보면 더더욱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든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거의 일본인인 것이다. 과거 재일교포 정대세가 북한 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해 피치에서 엉엉 울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조선인의 정체성으로 월드컵에 섰는데, 정작 행동으로는 무슨 일본의 소년 만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버렸던 것이다. 옆에 멀뚱멀뚱 서 있던 북한 선수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야는 지금 수령님도 안 나왔는데 와 쳐 울고 있니?'


그렇다면 일본에서 나고 자라 외모나 행동거지까지 일본인처럼 되어버렸는데, 왜 재일교포들은 그 혹독한 차별과 멸시를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국적을 지켜 나갔을까? 귀화만 하면 더 많은 돈과 더 큰 출세를 보장받는데, 왜 그들은 끝까지 그것을 거부하고 못내 불이익을 감당해 왔을까?


얼마 전 타계한 장훈 선생의 다큐멘터리에서 난 그 단초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이 가진 이미지였다. 사진에는 한 중년 여성이 한복저고리를 입고 서 있었는데, 그 자태에는 '박순분 여사'라는 자막 없이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그 시절 한국 여성 특유의 꼿꼿함이 서려 있었다. 어린 장훈은 그 어머니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내가 야구선수 돼서 돈 많이 벌어 비단저고리 많이 많이 사줄게." 그러나 몇 년 뒤, 그가 프로팀에 입단하기 위해 귀화를 택하려 했을 때, 박순분 여사는 이렇게 호통쳤다고 한다. "너는 지금 야구를 하려는 것이냐? 일본 놈이 되려는 것이냐?" 장훈이 구단주에게 돌아가 그 사정을 그대로 전달하니 구단주는 '역시 한국 여성'이라고 감탄하며, 규정을 바꾸어 그를 입단시켜 주었다고 한다. 다큐는 장훈이 재일교포 시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한 한복집에 걸려 있는 고운 비단 한복들을 쳐다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시아 유일의 3,000안타, 500홈런, 300도루를 해낸 이 위대한 영걸이, 그 순간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의 명언으로 시작했으니, 같은 것으로 끝을 내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자아낸 의미의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동물이다." 재일교포들이 매달렸던, 그러나 실재가 불확실했던 그들의 조국, 그것은 그들의 한 맺힌 어머니,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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