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는 지구촌의 화두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극우 약진, 우리나라의 12·3 내란과 보수당의 극우화 등이 직접적인 계기일 것이다. 당연히 그 원인을 분석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정글 자본주의와 양극화, 취업난과 이주민 유입,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등은 넓게 받아들여지는 대표적인 요인들이다. 우리의 경우는 여전한 냉전 구조와 숱한 국가폭력의 상흔 등 비극의 정치사도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구조적 요인들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 하나에 주목하고자 한다. '겸손의 실종'이다. 예컨대, 우리의 공론장에서는 토론과 숙의보다 비난과 낙인이 넘쳐나고 극단적 음모론이 활개를 친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만이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도 다르지 않다. 정치권은 더하다. 진영 결집과 적대적 동원이 정치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같은 당 안에서도 증오와 저주의 말들을 주고받는다. 공당의 거리 현수막에도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그러는 사이 전문가들은 공론장을 떠나고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
# 겸손과 민주주의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로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일깨웠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정', 즉 성찰과 겸손이야말로 참지식의 시작점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누구라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설계된 제도임을 고려할 때, '무지의 자각'은 민주적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인식론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 식으로 번역하면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즉 '오류 가능성' 명제를 열린 사회와 민주주의의 철학적 전제로 중시했다. '나는 틀릴 수 있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진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라는 격언을 통해 지적 교만과 그 결과로서의 전체주의화 가능성을 경계하고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호소한 것이다.
정치철학자 로버트 탈리스의 현대 민주주의 위기 진단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특히 '신념의 양극화'와 '정치 과잉' 현상을 우려했다. 정치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개인이 속한 정치적 진영이 자기 정체성의 전부가 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처방은 자신의 최근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시민적 고독'이다. 상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부족주의로부터 한걸음 물러섬으로써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회복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 역시 자신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오늘날 경쟁에서 승리한 인사들의 '지적∙도덕적 오만'에 경종을 울렸다. 자신의 성취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착각'은 오만을 낳고 공동체적 연대를 파괴한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가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 '겸손의 미덕'을 호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지위나 지식이 실은 우연과 행운, 그리고 공동체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겸손과 공공선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겸손에 대한 호소가 구미 사상가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적 겸손과 균형 감각은 오히려 동양 고전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핵심 덕목이다. 예컨대 유교 경전인 '중용(中庸)'은 치우치거나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 여기서 '중(中)'은 단순한 산술적 중간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고 올바른 이치를 찾아내는 능동적인 균형 감각을 의미한다. 공자가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가르쳤듯이 극단적인 언행과 자기 확신에 차 상대를 배제하는 태도는 중용의 덕에서 크게 멀어진 상태다.
공자는 또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며 지적 겸손이 학문과 인격 도야의 시작임을 분명히 했다. 노자 사상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며 스스로를 낮추는 절제와 겸손의 미덕을 으뜸으로 꼽았다. '자벌(自伐, 자신의 공로를 내세움)'과 '자시(自是, 자신이 옳다고 주장함)'를 경계하라고 한 '도덕경'의 가르침 역시, '인격적∙지적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었다.
# 다시 '겸손이 미덕인 사회'로
하지만 오늘날 겸손과 절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음모론과 극단적 혐오가 팬덤과 클릭 수와 결합해 정치적 자산이 되고 경제적 이득이 되는 사회적 조건과 미디어 환경이 워낙 강력해서다. 그렇더라도 특히 공공과 민주주의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유력 인사들은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치인은 팬덤과 인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와 결별해야 한다. 증오와 선동으로 팬덤에 어필하며 진영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횡행하는 오늘날, 절제와 숙의의 태도는 민주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필수 덕목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식인과 언론인, 유튜버의 책임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다는 확신과 거기서 비롯된 오만과 독선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대신 냉철한 균형 감각과 지적 겸손으로 이성과 토론이 살아 작동하는 민주적 공론장을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정치 고관여층 역시 자신의 판단이 절대 선이나 절대 진리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열린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상대를 타도할 적이 아닌 동반자 혹은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의 첫째 덕목임을 명심해야 한다.
겸손은 결코 유약함이나 무소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깊은 성찰이자 타인의 의견을 인정하는 용기이며 진실에 다가가려는 성숙한 지적 태도다. 뿐만 아니라 겸손은, 칼 포퍼와 탈리스, 샌델 등이 힘주어 말하듯이 민주주의의 존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민윤리 덕목이기도 하다. 공론장이 혐오와 음모론으로 오염되고 정치권이 극단주의와 막말로 휘청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주장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며, 더 거친 확신이 아니라 더 단단한 겸손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적이 아닌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는, 다시 '겸손이 미덕인 사회'로 돌아가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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