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스토리] 늦더위 깃든 두류산에서 ‘숲속의 정원사’ 청설모를 만나다

  •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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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1 20:29  |  발행일 2026-10-01
30일 대구 두류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가을철 청설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밤과 도토리 등 열매를 부지런히 모아 숲속 곳곳에 나눠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이맘때면 먹이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소나무 줄기를 거꾸로 타고 내리밟는 청설모 한 마리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됐다. 사진을 촬영한 지난 9월 30일, 대구 두류산 산책로에는 여전히 늦더위의 잔열이 맴돌았지만 숲속 청설모의 시계는 이미 겨울을 향해 바쁘게 흐르고 있었다. 흔히 '청솔모'로 잘못 불리기도 하는 이 동물의 표준명에는 흥미로운 어원이 숨어 있다. 본래 이름은 '푸른 쥐'라는 뜻의 청서(靑鼠, 학명 Sciurus vulgaris)로, 예부터 고급 서예용 붓을 만드는 데 쓰이던 꼬리털 '청서모(靑鼠毛)'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국립국어원). 이후 눈 쌓인 겨울 숲에서 자주 관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 설(雪) 자가 연상되었고, 이것이 세월을 거쳐 오늘날의 '청설모'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이다.


30일 대구 두류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가을철 청설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밤과 도토리 등 열매를 부지런히 모아 숲속 곳곳에 나눠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이맘때면 먹이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나무에서 내려온 청설모가 땅 위에 네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주변을 살핀다. 줄무늬가 깜찍한 다람쥐(Eutamias sibiricus)와 청설모는 같은 다람쥣과에 속하지만 생태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국립생물자원관 분류). 따뜻한 굴속에서 꿀맛 같은 겨울잠에 드는 다람쥐와 달리, 청설모는 혹한의 눈밭을 누벼야 하는 '비동면 생명체'다. 추운 계절에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는 만큼 식성 역시 대범한 잡식성을 띤다. 밤이나 도토리 같은 견과류는 물론, 계절에 따라 꽃, 새순, 나무껍질, 수액, 버섯, 심지어 곤충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는 식물성·동물성 먹이를 가리지 않고 섭취하며 겨울을 버틸 체력을 비축한다.


30일 대구 두류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떨어진 밤송이 속을 살피며 먹이를 찾고 있다. 가을철 청설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밤과 도토리 등 열매를 부지런히 모아 숲속 곳곳에 나눠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이맘때면 먹이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경계를 마친 청설모가 바닥에 떨어진 가시 밤송이 속으로 머리를 깊숙이 밀어 넣는다. 가을 숲의 밤은 청설모에게 한 끼 식사를 넘어 겨울철 생존을 담보하는 핵심 자원이다. 여기서 청설모만의 지혜로운 생존 전략이 빛을 발하는데, 바로 수확한 먹이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숲속 곳곳에 나누어 묻어두는 '분산 저장(Scatter hoarding)' 습성이다. 먹이를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포식자에게 통째로 빼앗기는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영리한 생존 지혜인 셈이다.


30일 대구 두류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밤을 입에 문 채 숲속을 이동하고 있다. 가을철 청설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밤과 도토리 등 열매를 부지런히 모아 숲속 곳곳에 나눠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이맘때면 먹이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알밤 한 알을 입에 야무지게 물어 고정한 청설모가 지면을 따라 빛의 속도로 내달린다. 하지만 정작 숲의 생태계를 바꾸는 진짜 반전은 청설모의 뜻밖의 습성에서 시작된다. 숲속 수십 곳에 숨겨둔 종자 중 상당수가 회수되지 못한 채 땅속에 잊히기 때문이다. 이 깜빡하는 건망증 덕분에 땅속에 묻힌 알밤은 이듬해 봄 새로운 장소에서 무사히 싹을 틔우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청설모를 나무의 종자를 멀리 퍼뜨려 숲의 확장을 돕는 중요한 '종자산포자(Seed Disperser)'로 설명한다. 두류산에서 포착된 청설모의 이 짧은 내달림은, 알밤 한 알을 옮겨 숲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숲속 정원사'의 위대한 여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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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에서 대구ㆍ경북의 그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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