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에 위치한 구상문학관. 마준영기자
왜관역을 나서 원도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상가와 주택이 이어지는 길 한편에 '구상길'이라는 도로명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구상문학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 시인 구상(具常·1919~2004)이 20여 년간 머물며 작품을 쓰고 사람을 만났던 곳이다.
구상문학관 입구의 표지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준영기자
문학관 앞에 서면 먼저 '이곳에서 한 사람의 문학 인생 가운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02년 문을 연 구상문학관은 2층 규모로, 구상의 육필 원고와 사진, 편지, 저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구상이 기증한 2만7천여 권의 장서도 보관돼 있다.
구상문학관 1층에는 구상의 작품 등이 보관돼 있는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마준영기자
전시실에서는 무엇보다 육필 원고에 눈길이 간다. 책이나 신문에서 활자로만 만났던 시인의 글씨를 직접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빼곡하게 적힌 원고와 오래된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구상의 삶에서 왜관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된다.
구상이 왜관에 정착한 것은 1953년이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성장한 그는 광복 이후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46년 문학동인지 '응향'과 관련한 필화 사건을 겪은 뒤 월남했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뒤 삶의 터전을 왜관에 마련했다. 1974년 서울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가족과 함께 왜관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언론인으로도 활동해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구상 시인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관수재. 마준영기자
문학관을 나와 몇 걸음 옮기자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구상이 왜관에서 살며 글을 쓰던 집을 복원한 '관수재(觀水齋)'다.
관수는 '물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구상은 '관수세심(觀水洗心)',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집을 관수재라고 불렀다.
그가 바라본 물은 낙동강이었다.
왜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낙동강은 일상의 풍경이면서 작품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연작시 '강'이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자신의 집에 같은 이름을 붙였을 만큼 '관수'와 물은 그의 삶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관수재를 둘러보면 구상의 흔적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한 사람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남아 있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구상과 이중섭의 인연은 왜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원산에서 만났다. 이중섭은 구상이 참여했던 문학 동인지 '응향'의 표지화를 그릴 만큼 일찍부터 교류했다.
전쟁은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삶의 자리로 밀어냈지만 인연까지 끊지는 않았다.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섭은 왜관에 있던 구상을 찾아왔다. 관수재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고 구상과 함께 왜관 거리를 걸었다고 전해진다.
구상의 가족을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은 두 사람의 인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중섭이 구상에게 직접 선물한 그림이다.
두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공통점도 있다. 세 살 차이지만 생일이 같다. 이중섭은 1916년 9월16일, 구상은 1919년 9월16일 태어났다.
관수재는 당시 문인과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공간이기도 했다. 구상을 찾아온 이들이 작은 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논했다. 지금은 복원된 한 채의 기와집이지만, 그 안에는 당시 왜관에서 이어졌던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올해 열린 제4회 트랜스미디어 축제의 주제 역시 '구상×이중섭'이었다. 왜관역에서 구상문학관으로 이어지는 원도심 곳곳을 무대로 전시와 공연 등이 펼쳐졌다.
문학관 안에 보관돼 있던 이야기를 거리로 꺼내온 셈이다. 구상과 이중섭이 실제 걸었던 길을 따라 두 사람의 인연을 되짚어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시인 구상의 생전 모습이 담긴 포스터. 마준영기자
다시 구상문학관 앞에 서서 주변을 바라본다. 문학관 옆에는 관수재가 있고, 골목길을 따라가면 구상이 살았던 왜관 원도심이 이어진다. 조금 더 나가면 낙동강을 만날 수 있다.
구상이 왜관을 떠난 것은 1974년.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그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육필 원고와 책, 사진 속 얼굴만 남은 것이 아니다. 그가 살았던 집과 걸었던 길, 바라봤던 낙동강, 그리고 이중섭과 나눴던 이야기가 지금도 왜관 곳곳에 남아 있다.
구상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은 단순히 한 문학관을 둘러보는 길이 아니다. 한 시인이 20여 년 동안 살아낸 왜관의 시간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오래된 문학의 흔적만이 아니다. 한때 시인과 화가가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눴던, 지금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왜관의 원도심이다.
마준영
경북의 다양한 이야기를 현장에서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상] 울릉공항, 드론으로 미리 보는 이착륙 현장](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609/news-m.v1.20260923.2c4cf16d7cf34b9ca82925ef313ec1d8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