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어느 날 저녁, 아파트 통로를 걷다가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손을 하나씩 붙잡고 그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올려다보자 부모도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세 사람 사이에서 잠깐 웃음소리가 났다. 몇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두고 골목으로 나가면 동무들이 모여 있었다. 숨바꼭질할 때면 술래는 늘 담벼락 곁 감나무에 얼굴을 묻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다 무릎이 까지는 날도 있었지만, 집에 들어갈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해가 지면 집집이 아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네 어머니가 가장 큰 소리로 부르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못 들은 척하며 조금만 더 놀았다. 웃는 소리와 소리치는 소리, 다투다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저녁 골목을 가득 채웠다.
얼마 전, 예전에 살던 동네를 지나갈 일이 있었다. 골목은 예전보다 말끔해졌고 담장도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었다. 걸음을 늦추며 감나무가 있던 자리와 아이들이 모여 놀던 곳을 눈으로 더듬었다. 어디선가 아이 하나쯤 뛰어나올 것 같았지만 골목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대문 앞에는 자동차가 서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빈터 한쪽에는 화분과 재활용 봉투가 놓여 있었다.
무엇을 더 찾아보려는 것도 아닌데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골목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친구를 부르던 목소리나 아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래전에는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오던 소리였다. 친구를 찾던 목소리, 술래가 수를 세던 소리,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때는 너무 흔해서 마음에 담아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라지고 나서야 들리는 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눈앞의 골목은 고요했지만, 기억 속의 골목은 아직도 아이들의 목소리로 환했다.
생각에서 깨어나 보니, 앞서가던 젊은 부부와 아이는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의 손을 잡아당기며 깡충깡충 뛰었다. 그때마다 부모는 걸음을 늦추어 아이와 보폭을 맞추었다. 이따금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도 특별히 귀를 기울이지 않을 만큼 아이들의 웃음과 재잘거림이 다시 골목마다 흔하게 들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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