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의 하나인 울진망양정 정자 모습.원형래기자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푸른 동해와 왕피천이 만나는 해안 언덕 위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이 자리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이곳은 오늘날에도 전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울진의 대표 문화유산이다.
기자는 망양정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직접 걸으며 가을의 정취와 문화유산의 숨결을 느껴봤다.
망양정 정자까지 가는 포장도로로 걸어서 200m거리가 바람소리길 모습.원형래기자
입구에서 시작되는 나무 데크 계단은 다소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오르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았다. 곧게 뻗은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에는 가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닥에는 떨어진 솔잎이 쌓여 있었고, 숲속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은 조금 가빠졌지만 시원한 숲 공기와 솔향기가 피로를 덜어줬다.
첫 번째 데크 계단을 지나 약 15m의 평탄한 길을 걸은 뒤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약 200m로 보이는 산책 구간은 경사가 있는 편이지만 소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 솔향기 가득한 숲길, 관동팔경의 역사를 걷다
관동팔경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안내비.원형래기자
산책로 주변에는 관동팔경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비석과 안내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 세워진 '관동팔경(關東八景)' 비석에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명승 여덟 곳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관동팔경은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울진에는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이 포함돼 있어 동해안 역사문화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비석 옆에는 관동팔경의 옛 모습과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는 안내 조형물도 설치돼 있다.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 아래 비석을 살펴보니 망양정으로 오르는 길 자체가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역사문화 탐방로처럼 느껴졌다.
망양정 정자 옆에 동서트레일 안내비가 세워져 있다.원형래기자
산책로 주변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동서트레일' 안내 조형물이다. 경북 울진에서 충남 태안까지 이어지는 총 849㎞의 장거리 숲길을 소개하는 시설이다.
2022년 9월 설치된 안내 조형물에는 '아름다운 우리의 숲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동해에서 서해까지 이어지는 숲길의 주요 구간이 표시돼 있다. 울진의 금강소나무와 태안의 안면소나무를 연결하는 숲길의 의미도 담겨 있다.
망양정 일대의 소나무 숲은 이러한 동서트레일의 취지와도 어우러진다. 숲과 바다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양정은 걷기 관광의 매력을 갖춘 곳이다.
망양정 정자에서 가을현장체험 마치고 후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단체사진모습.원형래기자
산책로를 걷던 중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을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후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어린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망양정을 찾은 것이다.
방문 목적을 묻자 한 교사는 "가을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왔다"고 답했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숲길을 걸었고, 자연 속에서 가을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방문한 학생들과 교사들도 망양정 주변을 거닐며 동해를 감상하고 있었다. 망양정이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임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 숙종이 극찬한 관동제일루, 동해의 절경을 품다
망양정 정자에서 바라본 왕피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 모습.원형래기자
숲길을 따라 더 오르자 마침내 망양정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전통 기와지붕과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정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계단을 올라 정자에 서자 사방으로 시야가 열렸다. 발아래에는 왕피천 하구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바다와 모래톱,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켰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 하구의 경관은 망양정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었다.
정자 내부에 설치된 역사 안내판에는 망양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망양정은 원래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었으나 조선 철종 11년인 1860년 현재의 근남면 산포리로 이전했다. 이후 1958년 중건했으며, 다시 낡아 2005년 완전히 해체한 뒤 새롭게 건립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가운데 망양정의 경치를 최고로 평가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망양정의 아름다움은 문학과 그림으로도 전해진다.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이 대표적이며,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에 수록된 망양정도 역시 유명하다.
다만 정철과 정선이 만났던 옛 망양정은 현재와 위치가 다르다. 정자의 위치와 건물은 세월에 따라 달라졌지만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옛사람들의 정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망양정에서 만난 경기도 평택의 한 관광객은 동해안 여행 중 울진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동해안은 자주 여행하지만 울진과 포항 일대는 자주 오지 못했다"며 "지난번 산불 이후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울진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망양정까지 둘러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망양정에서 바라본 풍경에 대해서는 "한쪽에는 산이 있고 다른 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 마음이 탁 트인다"며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시가 나올 것 같다. 참 좋은 고장"이라고 감탄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현판,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곳 망양정.원형래기자
■ 관광객 발길 이어지는 망양정, 편의 개선은 과제
망양정 주변 상인들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사계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도 제기됐다.
망양정 인근에서 강변민박·오리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왕피천케이블카를 검색하고 찾아오는 외지 차량들이 길을 잘못 안내받아 가게 앞에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반나절만 지켜봐도 차량 10대 정도가 길을 잘못 찾아와 유턴하거나 같은 장소를 두 바퀴씩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그때마다 관광객들에게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길을 직접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주민은 "케이블카 관계자에게도 문제를 전달했지만 아직 개선됐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외지 관광객들이 작은 불편 없이 울진을 여행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목적지와 진입로 안내를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민의 목소리는 망양정과 왕피천케이블카 등 주변 관광자원을 연결하는 안내체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망양정의 매력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만 있지 않다. 입구에서 정자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과 관동팔경 비석, 동서트레일 안내 조형물, 정상에서 만나는 동해의 절경이 하나의 문화탐방 코스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망양정이 단순히 정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역사와 문학, 자연을 함께 체험하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책로와 문화해설 콘텐츠를 더욱 체계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관동팔경의 역사, 망양정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왕피천공원과 왕피천케이블카, 성류굴 등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망양정은 단순한 옛 정자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시인과 화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후세에 전해 온 울진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솔향기 가득한 숲길을 따라 올라 마주한 푸른 동해. 옛 선비들이 노래했던 망양정의 절경은 오늘도 변함없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가을 햇살 아래 망양정은 그렇게 자연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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