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포항시 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홍 포항상공회의소 부회장. 김기태기자
포항 경제가 철강산업의 장기 침체와 2차전지 산업의 불확실성이 맞물린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고환율·고물가에 따른 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대기업의 경영 악화가 협력업체와 건설·서비스업, 소상공인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함께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회복할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건설·제조업 현장에서 기업 경영을 이어온 주지홍 포항상공회의소 부회장(남광건설㈜·㈜명제산업 대표)을 만나 포항 경제의 위기 진단과 지역 기업의 생존 전략, 산업정책의 개선 방향을 들어봤다.
◆빈 건물과 끊긴 밤거리…철강 불황이 소상공인까지 번졌다
주 부회장은 포항 경제의 현주소를 "도시 전체가 위축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활하면서도 건물 임대나 매매로 나온 빈 공간이 눈에 띄게 늘었고, 저녁에는 사람의 이동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업종과 관계없이 매출은 성장이 아닌 하락세인데, 중동 사태 이후 전쟁과 불안이 이어지며 물가 부담은 더 커졌다고 했다. 그는 "들어오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가는 돈만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충격의 출발점으로는 철강산업을 꼽았다. 주 부회장은 "포항은 포스코, 곧 철강 경기를 가장 크게 탄다"며 "대기업이 적자가 발생한다고 하면 원가를 줄이려고 지출부터 줄이고, 그러면 직원들이 위축되고 협력회사와 고용된 사람들 가운데 지역을 떠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남은 사람들도 씀씀이를 줄이면서 소상공인의 자금 회전이 막히는 연쇄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회복 신호를 체감하느냐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그는 "TV에서 광주에 반도체가 간다, 화성·평택이 어떻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구 경북은 소외감이 더욱 커진다"며 "내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그것만으로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때리면 맞을 수밖에"…국제 정세 앞에 선 중소기업
중국발 공급과잉과 미국의 관세정책 등 대외 악재에 대해 주 부회장은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보와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 대기업이나 가능하고, 중소기업은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규모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주 작은 업체는 국제 정세와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영향을 받고 있고, 중간 규모와 큰 업체 역시 포스코와 얽혀 있어 '고구마 줄기'처럼 타격을 입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입장과 애로사항이 다 달라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안 좋다는 것만은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자금과 인력이 있는 기업은 변화를 따라가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는 망설이다 도태되고, 그 결과 포항 경제 전체가 휘청이게 된다는 우려다.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중국 자본이 동남아로 대거 내려가고 미국은 이를 견제하는데, 그 사이에 한국이 끼인 형국"이라며 "결국 손해를 보고 힘들어하는 건 힘없는 서민"이라고 말했다.
정부에는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 지원을 주문했다. 주 부회장은 "기술을 확보하고 그 기술로 사업을 넓힐 수 있게 지원하고, 투자가 이뤄지면 그 성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가만히 앉아 나눠 먹는 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예전에는 배정받은 물량만 생산해도 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2차전지, 기대만큼 파급력 클까
포항이 미래 전략산업으로 키우는 2차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주 부회장은 "초기에는 성장과 발전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과연 계속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그는 "사는 사람은 싸게 사려고 하지, 비싸게 사 주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지역 중소기업에 돌아올 기회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1970년대 포스코가 들어섰을 때처럼 파생 업체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2차전지는 사슬의 맨 아래 단계라 떨어져 나올 물량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장이 들어서면 건설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고, 매출 증가에 따라 지방세가 늘고, 직원 유입으로 인구가 늘어 소상공인까지 돈이 도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파급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며 2차전지 외에 다른 배터리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방안도 제시했다.
더 큰 과제로는 환경 문제를 꼽았다. 철강과 2차전지 모두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된 산업인 만큼, 이를 어떻게 보완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지 시민과 기업이 합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 부회장은 "환경 전문가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기업은 먹고살아야 한다고 하고, 정치는 표가 어디 있는지를 따진다"며 "어느 쪽이 손해를 보면 그 손해를 어떻게 보전하며 같이 끌고 갈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힘들어도 희망이 보이면 견디지만, 희망이 안 보이면 사람들은 떠난다"고 덧붙였다.
주 부회장은 포항시 산업정책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주체들이 마주 앉을 소통의 틀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김기태기자
◆지원 문턱은 높고, 과당경쟁은 사회적 비용으로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해 산업 다변화와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원 체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 부회장은 "작은 기업은 지원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어 놓치는 경우가 많고, 우리처럼 열심히 찾아도 신용등급 등 따져볼 것이 많아 문턱이 높다"고 말했다. 지원 기관이 부실 대출에 따른 문책을 우려해 무리수를 두지 않다 보니 "정작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로 자금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투자에 대해서도 "미래가 불투명한데 지금 투자해서 되겠느냐는 고민이 크다"고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기업은 아스콘을 생산한다. 주 부회장은 기술 개발이 생존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차량이 늘고 중량이 커지는데 옛날 방식을 그대로 쓰면 도로가 버티겠느냐"며 "더 오래 버티는 제품, 원가를 낮추는 방법, 환경을 고려한 방식을 계속 연구하고 투자하고 실험한다"고 말했다.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다른 물질을 활용할 방법도 찾아보고 있고, 장기적으로 드론 등 교통 환경이 바뀔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부단히 노력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지역 업체 사이의 구조적 문제도 짚었다. 주 부회장은 "대기업이 원가 절감을 이유로 단가를 자꾸 낮추면 중소기업은 투자할 여력이 없어진다"고 했다. 지역 업체의 납품 역시 가격 문제로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은 물류비가 들어도 원가 절감을 따지고, 지역 업체는 지역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달라는 시각이어서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부분도 서로 소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당경쟁이 만드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주 부회장은 "포항에 레미콘 업체가 22곳인데, 아파트 건설이 끝나면 일감이 줄어 저가 출혈 경쟁으로 간다"며 "예전 성장기에는 내 돈 걸고 망해도 내가 책임진다는 논리가 통했지만 지금은 폐업과 실직이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식당과 카페, 미용실 등 자영업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철거 등 환경 비용까지 발생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자유 경쟁 원칙은 지키되, 지나친 쏠림을 서로 점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통의 틀 만들 주체는 행정"…기업·시민도 함께 변해야
주 부회장은 포항시 산업정책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주체들이 마주 앉을 소통의 틀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환경은 환경대로, 기업은 이윤을, 정치는 정치적 셈법을, 시민은 안락함을 주장하니 생각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며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중심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서로 아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생선을 파는 상인은 어획량이 줄면 환경을 탓하고, 기업은 환경 탓에 일을 못 한다고 하며, 기업은 자신들이 벌어 월급을 주니 직원들이 시장에서 생선을 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라는 비유를 들며 "관점이 다 다르니 이를 계속 맞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주는 식으로, 처음의 마음에서 새롭게 다시 생각해 보는 소통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소통의 틀을 만들 주체로는 행정을 지목했다. 주 부회장은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의견을 모아 프로젝트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행정기관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변화의 책임이 관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시민도 기업도 함께 변해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므로 계속 소통하며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행정에 대해서는 "생색에 그친 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하 지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 온 것이고, 지역 구매 우선 정책 역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기업 유치 과정에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주 부회장은 기업 유치가 표로 이어지는지, 환경 문제로 표가 줄지 않을지를 따지게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이 과거처럼 강한 통제력을 행사하던 시절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참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최근 포항시가 기업 유치와 포스코와의 협력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방향은 맞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기업 유치와 관련해 포항은 경주에 비해 정제된 방식으로 개발이 이뤄져 속도가 느리고, 그러다 보니 변화의 시기를 놓친 업체가 부도나거나 공장이 문을 닫는 일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그는 행정에도 지켜야 할 규정이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 득이 되는 방안을 찾도록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입지의 변수로는 정주 여건 문제를 꼽았다. 주 부회장은 "직원들이 '포항에는 문화도, 좋은 학교도 없다'며 수도권으로 옮겨 달라고 하면 기업은 직원 위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이전을 막으려 해 봐야 오히려 포항의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했다. 다만 정주 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바다와 산, 골프장 같은 자연환경과 기본적인 분위기는 갖춰져 있는데 왜 서울을 선호하는지는 서울에서 살아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 같다"며 서울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울을 선호하는 이유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내비쳤다. 주 부회장은 "아이를 포항에서 키웠지만, 서울로 보낸 친구들 자녀와 비교하면 그 선택이 맞았는지 아직은 반반"이라고 했다. 다만 지역 학교가 특색을 살려 활성화되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면 지역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10년 전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고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며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부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변화에 대한 사전 대비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징어가 안 잡힐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계속 조업하면 잡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10년, 20년이 지나자 어획량이 줄었다"며 "정치도 기업도 이러한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중 양강 구도와 북한 변수 등 국제 정세 역시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설명이다. 이어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은 대비할 수 있지만 소기업은 여력이 없다"며 "대기업이 원가 절감을 이유로 단가를 낮추면 협력업체는 투자할 여유도 없이 흔들리고, 이는 부도와 실직, 나아가 지역 상권의 연쇄 침체로 이어져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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