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냄에듀의 한국사2 교과서에 수록된 10월항쟁 관련 내용. "10월에는 대구에서 식량 부족 및 경찰에 대한 반감 등이 폭발해 항쟁이 벌어졌고 주변 지역으로 확산됐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냄에듀 제공
1946년 대구에서 시작된 '10월항쟁'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가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교육부 검정 한국사 교과서(한국사1·2) 8종을 전수 조사한 결과, 10월항쟁을 다룬 교과서는 2종(해냄에듀·씨마스)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단편적인 서술에 그쳤다.
◆수록돼도 내용 한정적…사건 이해 어려워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한 출판사는 △동아출판 △비상교육 △지학사 △리베르스쿨 △해냄에듀 △천재교과서 △씨마스 △미래엔 등이다. 이 중 해냄에듀와 씨마스만이 10월항쟁을 서술했다. 10월항쟁을 서술한 교과서를 살펴보면 항쟁의 원인을 다루는 내용이 다였다. 항쟁의 도화선이 된 9월 총파업 역시 다뤄지지 않거나 간략하게 쓰였다. 해냄에듀는 항쟁 발생 배경을 비교적 상세히 담았지만 전개 과정과 피해 실태까지는 짚지 않았다. 해냄에듀 교과서에 담긴 10월항쟁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군은 1945년 9월 초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주한 미군 사령관은 조선총독부를 접수하고, 총독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관료와 경찰을 그대로 근무하게 했다. (중략) 미군정은 식량 및 생활필수품의 확보와 원조를 통한 물자 수급의 균형을 꾀했다. 그러나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해 물가가 올랐고, 쌀값 폭등을 막기 위해 식량을 수집하고 배급을 통제했다. 이에 노동자와 농민은 가난에 허덕였다. 1946년 9월 철도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다. 10월에는 대구에서 식량 부족 및 경찰에 대한 반감 등이 폭발해 항쟁이 벌어졌고 주변 지역으로 확산됐다."(한국사2, 63쪽)
씨마스의 한국사2 교과서는 10월항쟁과 관련해 "미군정은 미곡수집령을 시행해 다시 식량을 통제했으나, 농민들의 식량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 정책의 실패로 미군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고 있다. 씨마스 제공
씨마스는 항쟁의 원인을 미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에 국한해 써냈다. 또 '대구 10월 사건'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명칭을 사용해 사건의 성격을 규정했다. "광복 이후 남한의 공장 대부분은 자본과 기술을 보유했던 일본인들의 귀국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경제가 어려웠다. 게다가 미군정의 무리한 화폐 발행 등으로 인해 물가가 폭등했다. (중략) 미군정은 미곡수집령을 시행해 다시 식량을 통제했으나, 농민들의 식량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 정책의 실패로 미군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났다."(한국사2, 78쪽)
10월항쟁을 연구해온 김일수 경운대 교수(교양교육학과)는 "쌀이 필요한 문제만으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해당 사건이 오늘날 '항쟁'으로 불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10월항쟁은 9월 총파업과 자주국가 건설에 대한 민중의 열망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 식량 문제는 그 일부"라고 설명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한 교과서 검정기준 중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별 학습 요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유사한 사건은 담겨…"관련 연구자료 충분치 않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한 교과서 검정기준 중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별 학습 요소'를 보면 8·15 광복,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좌우 합작 운동, 제주 4·3사건, 6·25 전쟁 등 주요 현대사 사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10월항쟁이나 이와 관련한 사건은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과서 검정기준에 따라 비슷한 시기 일어난 유사한 사건은 대부분의 교과서에 담겼다. 제주 4·3사건은 현행 모든 교과서에 내용이 수록됐다.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뿐 아니라 사진과 탐구자료 등이 더해져 비교적 자세히 쓰였다. 여순사건은 교과서 검정기준에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전 교과서에 실렸다. 리베르스쿨과 해냄에듀는 최근 관련 이슈인 2021년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사실을 반영했다. 두 사건 모두 10월항쟁처럼 군경 및 서북청년단에 의한 민간인 희생, 계엄령 등이 이뤄진 사건이다.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역사 교과서에서 10월항쟁을 공식적으로 다루는 게 힘들다면 지역에서 작은 교과서를 만들어 싣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지역 이해 교육자료인 '내 고장 대구·경북 다시보기'를 2021년 발간한 바 있다. 해당 교재는 중·고등학교 지역사 학습교재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기에도 10월항쟁 관련 내용은 없었다.
김일수 교수는 "역사 교과서에 실으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을 마련하려면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관련 행정 기록물은 물론 연구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꼬집었다.
대구시교육청이 발간한 지역 이해 교육자료 '내 고장 대구·경북 다시보기'. 대구시교육청 제공
◆학교 현장서 교육 어려움…민원·논란 우려
교사들은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 적은 탓에 10월항쟁을 교육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차경호 역사교사(대구 포산중)는 "5·18 민주화운동이나 6월 민주항쟁은 그 자체가 소주제로 다뤄지지만 10월항쟁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선 다루지 않고, 다루는 고등학교 일부 교과서도 내용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4·3사건을 가르치면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는데,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하면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10월항쟁이 교과서에 어떻게, 얼마나 서술되는지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대구지역 고교 역사교사 A씨도 "한 반당 1주일에 3시간씩 한국사 과목 수업이 이뤄진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얘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언급이 잘 안 돼 있으면 다루기 힘들다"며 "교사가 별도의 학습지를 만들어 교육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상 한계로 자세히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도 해당 사건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영남일보가 실시한 '대구 10월항쟁에 관한 대구시민 인식조사' 결과, 10월항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10대의 비중은 14.9%에 그쳤다(영남일보 10월1일자 1면 보도).
영남일보가 실시한 '대구 10월항쟁에 관한 대구시민 인식조사' 결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10대의 비중은 14.9%에 그쳤다. 영남일보 DB
10월항쟁을 둘러싼 정치·이념적 논란 가능성도 수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사건을 일컫는 명칭 역시 조심스러운 문제다. 최근 연구에선 10월항쟁을 '민중의 자발적 봉기' '민족 대 반민족 구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구시도 2016년 제정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서 '10월항쟁'을 공식 명칭으로 표기했다. 이후 시민사회에서도 해당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학교 현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태원 전직 역사교사는 "오랫동안 '좌우 대립' '폭동'으로 사건이 규정돼온 만큼 논란을 우려해 교사들이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별도로 이를 교육해도 학부모가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왜 가르쳤냐'고 항의할 경우 현재로선 대응할 수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강태원 교사는 "특정 사건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논란에 휘말리면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단순한 사실이나 시험에 나오는 내용만 언급할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희
현실적 낭만주의자. 용기와 진실을 추구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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