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새출발 .5] '불운의 야구스타'서 식당주인된 성낙수씨

  • 입력 2005-02-02   |  발행일 2005-02-02 제5면   |  수정 2005-02-02
"내 인생 아직 '6회초'도 끝나지 않았다"
프로야구 삼성 원년멤버 팀 주력투수, 1년만에 내리막…아마 지도자의 길
감독맡은 성광중 야구부 해체 충격, 구이집 개업 '죽을 각오'로 거듭나기
[인생 새출발 .5]
비운의 스포츠 스타에서 요식업계 사장으로 인생 새 출발을 시작한 성낙수씨가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1일 저녁, 이런 엄동설한엔 왠지 친구와 함께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간절하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의 한 구이집에는 이런 손님들의 주문을 받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낯익은 사람이 있다.

한때 잘나가던 프로야구 선수에서 비운의 스타로, 대학야구 코치와 중학교 야구감독을 거쳐 이제는 요식업계의 성공한 사업가를 꿈꾸며 '제2의 인생'을 알차게 일궈가는 성낙수씨(49).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어요. 손님들의 주문을 받다보면 어느새 새벽 2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와 쓰러지듯 잠을 청하면 또 점심시간 …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벌써 식당을 한 지도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40년 넘게 야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식당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처음 구이집을 할 때는 앞이 깜깜해서 투수가 공을 던지듯 하나하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성씨.

프로야구 선수 성낙수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다.

그는 고교시절만 해도 잘나가는 투수였다. 고교 1학년 때인 1974년 자신의 모교인 경북고가 전국대회 4관왕에 오를 때 팀의 주력투수로 활동했고, 그 이듬해에도 경북고는 3관왕에 올랐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포항제철에서 야구를 계속하게 된 그는 82년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 이만수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프로야구 원년멤버로 삼성에 입단해 화려한 야구인생을 만들어갔다.

칼날 같은 제구력과 현란한 변화구로 프로야구 원년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삼성의 첫승, 원년 전반기 8승무패·방어율 1.48로 원년에만 9승을 올리는 등 배짱있는 투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첫해가 너무나 화려해서일까, 아니면 자만심에 빠져서일까. 기교파 투수로 촉망받던 그였지만 프로야구 첫해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86년 삼성을 떠나 빙그레 이글스로, 87년 청보 핀토스를 마지막으로 현역선수로서의 야구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잘나가던 투수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뭐, 노력하지 않으면 별수 있겠냐"며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라운드를 떠난 그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87년부터 5년간 영남대 야구부 코치로 생활하며 양준혁, 전병호, 이태일 등 현재 프로야구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을 배출했다.

93년 무명의 성광중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은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프로선수의 아마지도자 자격시비로 97년까지 3년여 동안 경기에 참가해도 감독 벤치에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작전 지시를 내리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선수들과 함께 뒹굴며 단 한 차례의 우승도 하지 못한 무명의 성광중 야구부를 96년 청룡기 4강, 2000년 대통령배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20여차례 우승컵을 안게 하는 천금 같은 성적을 일궈냈다.

성광중 야구부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모교인 경북고 야구감독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2002년 성광중 야구부는 학교측이 학업성적 향상을 위해 해체하면서 40년간의 야구인생도 쓸쓸히 마감해야 했다.

성씨는 그 당시 무엇을 해야 할지, 그토록 좋아하고 사랑하는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심한 좌절감에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1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는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는 생각에 2003년 7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수성구 범어동에 '너구리'라는 구이집을 개업했다.

무일푼에 은행의 빚으로만 출발한 식당이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당을 청소하고 어떻게 하면 손님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는 운동이든 장사든 피나는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죽을 각오로 식당을 꾸려갔다.

권영호, 이선희, 황규봉, 장태수 등 선수시절 주위 선후배들의 도움과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 덕분에 차츰 단골도 많이 생겨 수입도 짭짤하게(?) 잘 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법 장사가 됐지만 요즘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경기침체로 손님이 절반 이상 줄어 영업시간을 연장해도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내가 어려울 때 주위 선후배들과 생각지도 않던 많은 지인들이 도움을 주어 항상 감사하다"며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불운의 야구스타가 아닌 성공한 요식업계 사장으로 일어설 것"이라며 인생 새 출발의 의지를 불태운다.

요즘도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과 야구 이야기만 하면 열변을 토하는 성씨는 야구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꿈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원래 야구는 9회말 만루 투아웃부터 잖아요. 그런데 전 아직도 6회초도 끝나지 않은걸요."

[인생 새출발 .5]
구이집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성낙수씨. 그에게서는 어둠이나 좌절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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