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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C'est Si Bon)은 샹송이다. 세시봉은 처음 작곡된 후 3년간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불린 다음, 이브 몽탕이 프랑스어로 불러 널리 알려졌다. 팔짱을 낀 채 행복에 겨워 도시를 거니는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담은 감미로운 노래다. 그 세시봉이 한국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군사정권의 암울했던 시절, 음악과 문화를 사랑했던 젊은이들의 공간이자 새로운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로 탄생했다.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통기타와 청바지, 포크음악이 이곳에서 생성됐다. 서울만 아니라 전국에 수많은 세시봉이 나타났다. 그 세시봉이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2011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가히 세시봉 열풍이다. 지난 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두차례의 '세시봉 콘서트'에 5천4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3명의 60대 음악인이 펼친 하모니와 우정이 세대를 넘어 감동을 전했다. 중장년층이 주로 찾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TV를 통해 소개된 까닭에 20, 30대의 젊은 층이 의외로 많았다.
하루가 다르게 유행을 좇는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40년도 더 된 구닥다리 음악과 음악인들이 주목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향수'와 '복고'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기계적으로 노래를 생산하듯 찍어내는 상업화된 요즘의 아이돌 음악과는 분명히 다른 매력을 세시봉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시봉은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1960~70년대 우리의 대안(代案)문화였다. 이들의 가창력과 연주는 나름의 아우라(Aura)가 있고, 스토리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위에는 단순히 공연(performance)만 하는 아이돌이 넘쳐난다. 듣기보다 본다는 표현이 딱 맞을 음악들이다. 스타 시스템 아래 상품성만 강조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세시봉을 유신(維新)과 억압의 기억에서 떼놓기는 힘들다. 세시봉 열풍이 1970년대 청년문화의 재발견인지, 우리가 열망해 온 음악 때문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음악과 우정이 어우러진 그들의 부활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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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세시봉](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03/20110308.01027071406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