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8] 가얏고, 강물처럼 출렁이며 먼 미래로 흐르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11/20111128.010070730440001i1.jpg) |
강정고령보의 관광용 전망대인 ‘탄주대’. 탄주대는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의미로, 바닥을 지탱하는 쇠줄 12개는 가야금의 12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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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8] 가얏고, 강물처럼 출렁이며 먼 미래로 흐르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11/20111128.010070730440001i2.jpg) |
사진=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1
우륵은 진흥왕의 의도를 간파한다. 가얏고 수용은 신라 음악의 폭을 넓힐 뿐만 아니라, 왕이 시급하게 추진하는 개혁의 한 축으로서 음률을 통한 통합의 정서를 충분히 이뤄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에 가얏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새롭게 신라사회로 편입된 가야인들을 위무하고, 그 정서를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가얏고가 감당해 주리라 기대한 것이다.
우륵은 우리 강토에 맞는 소리를 담을 가얏고를 만들고, 가얏고의 노래를 작곡하여 이를 개혁의 중심에 놓으려고 했던 가실왕을 새삼 떠올린다. 가야사회의 통합을 꿈꾸어 대제국을 구상했던 가실왕의 꿈은 진흥왕의 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 진흥왕의 개혁 역시 가야사회의 온전한 수용을 통해 통합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거대한 통합, 곧 삼한을 통일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왕은 특별하게 대가야 가실왕의 개혁정책 추진과 과정에 크게 관심을 갖고 살폈으리라.
우륵은 자신의 음악이 진흥왕이 펴는 정책의 중심에 세워지는 걸 느낀다. 가얏고를 안고 버텨온 자신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걸 예감한다. 어쩌면 이게 그가 늘 품어왔던 가얏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8] 가얏고, 강물처럼 출렁이며 먼 미래로 흐르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11/20111128.010070730440001i3.jpg) |
탄주대 전경. 마루처럼 달아낸 반원형 데크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
우륵은 가얏고의 전수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진흥왕이 보낸 세 사람은 악기를 다루는 한편, 노래와 춤에도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이들이다. 이들에게 가얏고의 12곡을 전수하면서 차츰 가얏고는 계고에게, 노래는 주지에게, 춤은 만덕에게 주로 가르친다. 각각의 재능에 따른 게다. 그러나 새로운 악기인 가얏고를 이해하고, 우륵이 작곡한 12곡을 완벽하게 재현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흐른다. 그 사이에 신라는 대가야가 신라와의 약속을 깼으며, 반란을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침공해 멸망시킨다. 그런 상황에서 우륵은 나라 없는 신세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가얏고의 전수에 더욱 공을 들인다. 가얏고의 전수야말로 대가야의 꿈과 정신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마침내 우륵의 음악을 전수한다. 서라벌로 돌아가 왕 앞에서 가얏고를 연주한다. 진흥왕은 흡족해 한다.
“너희에게 우륵의 가얏고를 전수하게 한 의도를 알겠는가?” 왕이 묻는다.
“예, 새로운 정치의 기반이 예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가얏고를 신라의 대악에 포함하려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 우륵의 노래는 과거 대가야 개혁의 중심에서 조율됐던 것인 만큼, 그걸 우리가 수용하려는 게다. 너희는 전수한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고, 지금에 맞게 정리하여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라 조정의 반대가 의외로 심각하다.
“폐하, 가야의 음악을 대악의 중심에 놓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망국의 음률을 끌어들이다니요.”
“그 음악은 너무 정에 치우쳐 있어서 가야를 망국으로 이끈 원인이 됐습니다. 취하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왕은 그들의 말에 반박한다.
“가야가 망한 것은 왕의 실정 탓이지, 음악 탓이 아니다. 음악을 제정함은 인정에 연유하여 법도를 따르도록 한 것일 뿐이다. 어찌 나라의 어지러움을 음악의 곡조 탓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가야의 음악을 수용한 것은 진흥왕의 화합정책의 일환임을 누누이 설명한다. 가야 제국을 병합하면서 그들을 위무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대가야 음악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대가야인의 마음을 달래는 데는 이러한 상징적 조치가 아주 주효함을 반대가 심한 조정의 신하들에게 귀띔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주지와 계고, 만덕은 우륵의 음악을 새롭게 편성해 12곡을 5곡으로 요약한다. 이에 따라 진흥왕은 우륵을 서라벌로 부른다. 세 사람이 편성한 5곡에 대한 감수를 받기 위해서다.
우륵은 도성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도성 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변방으로 내쳐지던 참담함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임금의 부름을 받은 것이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세 제자를 만나 12곡이 5곡으로 축소됐다는 말을 듣고 우륵은 크게 노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왕은 그를 달랜다.
“선생의 곡을 살리면서도 신라에 맞는 음률을 가미한 것일 뿐이오. 12곡이 다소 번잡하고, 정에 치우쳐 있어서 이를 궁중의 음악답게 아정(雅正)하게 재해석한 것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오.”
우륵은 새롭게 편성된 가얏고의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습니다.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에 빠지지 않아 균형을 취했으니 가히 정악(正樂)이라 할 만하군요.”
“그렇지요. 알아주니 고맙소. 이제 가얏고는 신라의 중요한 악기가 됐소.”
왕은 가얏고의 5곡이 신라의 새로운 대악(大樂)에 포함됐음을 선포한다.
우륵은 감격한다.
“아아. 대가야는 망했어도, 가얏고는 살아남았다. 가얏고 소리는 새롭게 이어졌다. 이 소리는 천년을 넘어 이어지리라. 이는 대가야 정신의 영원한 이어짐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
우륵은 비로소 비교적 자유롭게 가얏고를 만들고 연주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한다. 국원의 큰 강가에서는 자주 연주회가 열린다. 가야인들은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오곤 한다. 가얏고 소리를 통해 고국을 떠올리고, 대가야인의 꿈을 되씹으려는 게다. 그래서 우륵의 연주회는 자주 성황을 이루고, 고향을 떠난 가야국 유민들에게 큰 위안의 자리가 되어 간다.
때로 가얏고 하나만을 들고 멀고 가까운 산천을 유람하노라면 망국의 정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곳곳에는 가야인들이 살고 있어서 그가 나타나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로 연주가 성황리에 열리곤 한다.
한때 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산 기슭을 떠돌아다닐 때도 그러하다. 연주회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싼다. 그 중 한 젊은 사내가 인사를 한다. 시종인 듯한 이가 그를 소개한다.
“월광태자님이시오.”
“태자님!”
우륵이 머리를 조아린다.
“우륵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국원으로 가서 선생의 가얏고 연주를 들어야겠다고 늘 생각했지요. 선생이 오셨다기에 만사 제쳐놓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어서 우리 가얏고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였으나, 일찍 신라로 들어온 그였다. 신라에서 벼슬살이도 했으나, 대가야가 망한 뒤에는 가야산 기슭에 몸을 의탁한 채 불도에만 정진하고 있다. 가야산은 대가야의 발상지가 되는 성스러운 산이다. 아득한 옛날 대가야의 조상은 이 산의 신과 소통하여 태어났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신성한 성지인 가야산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셈이다. 망국의 뼈저린 통한의 삶이 아닐 수 없다. 가얏고를 만지는 손길이 떨린다.
“그렇습니다. 대가야는 사라졌지만, 가얏고만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가야인들의 마음을 울리는군요. 이는 오직 선생의 크나큰 공입니다. 선생이 가얏고를 확실하게 이었듯이 나 역시 우리의 성산인 가야산을 영원한 안식처로 후대에 물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못하면 자손들이라도 가야산의 중심에 대가람을 세워, 망한 대가야의 혼을 위로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한 기원의 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월광태자는 우륵의 가얏고 연주에 빠져든다. 나라를 잃고 떠도는 그에게 가얏고 소리는 너무나 간절한 울림으로 소용돌이친다. 우륵이 연주를 마치자, 월광은 우륵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나중에 월광태자의 후손 순응과 이정 스님이 가야산에 해인사를 창건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월광태자뿐만 아니라, 가야의 모든 이들은 이제 가얏고를 통해 위로와 안식의 마음을 갖게 된다. 우륵은 다시 국원으로 돌아오지만, 월광태자가 한 말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그리하여 대가야의 확실한 명맥인 가얏고의 전승과 확산에 주력한다. 큰 강 언덕에서 고향인 대가야의 산천을 그리며 연주되는 가얏고 노래는 강물처럼 세차게 출렁이며 먼 미래로 흘러감을 느낀다. (*주보돈의 논문 ‘우륵의 삶과 가야금’ 참조)
글=이하석
<시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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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고령보 전경. 보에는 탄주대를 비롯해 대가야를 주제로 한 시설물이 많다. 보의 기둥 위에 설치된 조형물은 가야의 기마인물형토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말을 탄 무사의 어깨 부분 갑옷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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