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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토속한정식의 기초를 다져온 청마루 김옥주 대표(가운데 원내)는 누비옷처럼 만들기 힘든 정통 구절판을 일상적으로 내고 있다. |
그녀의 별명은 ‘미세스 결벽증’.
손길은 ‘토란잎의 물방울’ 같다. 그녀에겐 나름 음식철학이 있다.
“음식은 맛으로 먹지 말고 기운으로 먹어야 하고, 따라서 ‘쌩얼’ 같은 식재료를 맛보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근처 식자재백화점이나 마트의 식품코너를 절대 기웃거리지 않는다. 밥상에 올라가는 식재료는 모두 그녀의 검수를 받아야 올라갈 수 있다. 너무 ‘클린 버전’으로 살아서 주위 사람들이 항상 긴장한다.
룸과 주방의 청결도가 거의 같다고 했다. 확인하기 위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걱, 장판바닥이었다. 눅진거림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환풍구 근처 타일벽에서조차도 기름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매달 한번씩 대청소를 한다. 대형 냉장고에 쌓인 재고품도 다 밖으로 끄집어내고, 덕지덕지 붙은 성에도 깔끔하게 제거한다. 전남 신안군에서 갖고 온 천일염도 바로 사용하지 못한다. 대바구니에 수북하게 소금을 부어놓고 그 위에 수돗물을 끼얹어 세척한다. 그걸 말린 뒤 중금속 기운을 날려보내기 위해 프라이팬에서 볶는다. 물론 간수 빼는 건 기본. 도마 4개, 칼 7자루도 무조건 매일 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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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돔배기 |
‘청마루’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순환도로 먹거리타운 이면도로 주택가에 앉아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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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박한 느낌이 감도는 배춧국 |
을 통해 앞산 정상부 봉우리 3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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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채로 만든 도토리묵사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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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수육 |
오전 10시부터 전투 개시.
그녀는 찬모와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해야 될 메뉴에 대한 전체적인 얼개를 알려준다. 웃자란 손톱이 보이면 미소를 머금으면서 ‘벌초를 해주면 더욱 좋겠다’고 부탁한다. 음식 재활용은 엄금. 심지어 남은 음식을 임시로 받아두는 음식쓰레기통도 매일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주방에서는 반지도 끼지 못하고, 매니큐어도 노 생큐. 배출되는 허접 음식물도 극도로 줄여서 그런지 남구청 환경미화원들 사이에선 음식쓰레기 가장 적게 나오는 식당으로 불린단다.
한식을 더 깊게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1~2년 과정으로 모두 22회에 걸쳐 한식요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 한때 동성로 왕비다방도 운영
토속한정식 전문 ‘청마루’의 김옥주 대표(67).
눈매가 매섭다. 말투에 기름기가 없다. 공과 사를 딱 부러지게 핸들링하는 캐릭터. 한때 걸스카우트 운동까지 벌여서 그런지 절도가 몸에 배어 있다.
그녀는 대뜸 자기 음식은 ‘맛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깨끗한 것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억울해 할 거란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 사이에선 청마루 음식을 알아준다. 지금은 한식에 매진하지만 한때는 차와 커피 문화의 선도자였다. 김 대표는 29세 때 대구 동성로 옛 본영당 서점 근처에서 김춘수 시인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왕비다방을 운영했다. 거기 단골이었던 박일문이란 문학청년은 ‘왕비를 아십니까’란 단편소설을 갖고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왕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훗날 그녀는 대백에서 중앙파출소 가는 길 중간에서 예전다방을 꾸려나가다가 삼덕동에서 청마루란 찻집 겸 커피숍을 꾸려갔다. 나중엔 파동으로 옮겨 8년간 한정식 전문점 청마루 시대도 연다. 그 음식은 정체불명의 퓨전 한정식이 아니고 가장 한국스러움을 간직했다. 그래서 ‘토속한정식’이란 이름을 걸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직접 맷돌을 돌렸고, 메밀묵도 직접 쑤어 만들었다. 현재 자리로 옮긴 지 7년째다.
◆ 조각보처럼 아름다운 구절판
우리 한식의 백미로 불리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오방색 미학이 녹아들어간 ‘구절판’.
그런데 이 음식은 워낙 잔손질이 많이 들어가고, 요리 시간도 많이 소모돼 여느 한정식에서는 엄두도 못 낸다. 고집과 열정이 없으면 시도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일상적으로 이걸 낸다.
가장 중요한 건 밀전병. 처음에 밀가루에 물을 넣고 팬에 구워봤는데 재료를 넣고 쌈을 싸먹는 과정에 자주 찢어졌다. 구절판 전문가를 만나 한 수 배운다. 밀전병 할 때 계란 흰자가 들어가면 탄력이 붙어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음에는 모두 8가지 재료를 잘게 썰어야 하는데 그 길이와 굵기를 어느 정도 해야 되는지를 몰랐다. 궁중요리 전문가 김숙련씨한테서 귀한 정보를 얻는다. 구절판 재료는 너무 길고 굵으면 식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재료는 길이는 3㎝, 굵기는 1㎜가 딱이라고 했다. 손에 익지 않아 처음에는 2시간이 걸려 구절판을 완성했다. 밀전병이 잘 붙지 않게 한 장 놓을 때마다 잣가루를 살짝 뿌려준다.
구절판에 미리 장만한 재료를 놓는 법식이 있다. 일단 같은 색끼리 마주보게 한다. 북쪽에는 양파, 남쪽에는 오징어, 서쪽에는 당근, 동쪽에는 새우, 북서쪽에는 쇠고기, 북동쪽에는 달걀, 남동쪽에는 표고, 남서에는 오이를 놓는다. 소스는 겨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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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요리 비법
1만5천원짜리를 시켰다.
모두 20여 종류의 단품 요리가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그렇게 식감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단출하고 단정하게 나온다는 수준. 그런데 각 메뉴를 해부해 보니 너무 귀티가 난다. 절약정신이 빛난다. 먹을 만큼만 낸다. 모르긴 해도 대구에서 가장 정갈한 밥상이다. 그래서 푸짐한 밥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뭔가 허전해 한다. 그런 사람에겐 ‘푸짐한 집으로 가라’고 잘라 말한다.
“옛날 양반가 7첩·9첩 반상을 보면 찬 그릇이 작은 게 특징이다. 그리고 코스식으로 내지 않고 한상차림으로 내는 게 한식밥상의 본질인데 이제는 그릇도 너무 크고, 너무 푸짐하고, 토속미를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국적불명의 메뉴가 난립하고 있다. 너무 현란해 난 한정식 전문점에 안 간다. 양식은 알맞게 나온다. 그런데 왜 한식에서만은 버릴 정도로 수북해야 되는가를 모두 고민해봐야 할 때다.”
그녀는 주 단골 시장인 칠성시장에 가도 절대 에누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 좋은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녀만의 생활의 지혜. 고추도 빻아 놓은 걸 구입하지 않는다. 구입한 홍고추를 직접 닦은 뒤 파동에 있는 한 방앗간에서 빻아온다. 마늘도 미리 빻아놓은 걸 구입하지 않고 눈물이 나도 직접 집에서 빻아 사용한다.
요리 과정이 꼭 굿처럼 신령스럽다.
맹물을 내어서는 안된단다. “일본 본토에서는 보리차 내는 걸 원칙으로 한다. 맹물을 그냥 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우리도 보리차, 녹차 등을 낸다.”
이날 먹은 메뉴 중 기자에게 가장 오래 감동이 남은 건 돔배기.
여느 하품 돔배기는 찰기가 없어 꼭 비스킷 씹는 맛이다. 돔배기 조직이 바스라져 살점이 푸석하게 씹힌다. 식감이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느 한정식 돔배기가 그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집은 다르다. 15년째 영천 돔배기 시장 내 윤만상 가게에서 고급 돔배기를 구입한다. 짠 맛도 적당히 희석시켰고, 육질은 거의 안심 스테이크 수준. 식용유도 일반 것보다 2배 비싼 걸 사용한다.
장아찌에 대해 할 말이 많단다.
거창한 게 아니고, 디테일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갔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 연구원장한테 2년여 장아찌 담그는 비법을 배웠다. 그 한자락을 알려준다. 일단 간장을 4번 달인다. 오이와 고추의 경우 갱물이 스며나오니 그걸 증발시켜 동질의 염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첫날, 사흘째, 닷새째, 이레째 달여준다.
서울서 배워 온 깻잎김치도 깊은 맛이 있다. 젓갈은 30년간 거래하는 마산의 한 젓갈집에서 온 액젓, 새우젓은 충남 홍천군 광천 새우를 갖고 온다. 진간장, 액젓, 설탕, 멸치가루, 생강, 양파채, 마늘 편, 파를 넣고 20여분 끓여준다. 거기에 고춧가루, 마늘 등을 섞어 만든다.
후식용 국도 철마다 바뀐다.
겨울에는 시래기국, 하절기에는 콩나물국, 봄과 가을에는 배춧국.
국물도 아주 조밀조밀 빚는다. 멸치는 오사리만 고집하고, 여기에 다시마·무·마늘·파·양파·대관령 산 황태머리·건새우를 넣고 낸다. 하지만 다시마는 너무 오래두면 시큼한 맛을 내니 중간에 건져낸다. 삶은 우거지에 된장·콩가루·들깨가루·마늘·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국물에 넣고 한 소끔 더 끓여낸다.
특이하게 여기선 죽을 안 낸다. 그 대신 반찬이 많다. 전채가 너무 많은 것도 토속 한식의 기본이 아니란다. 그런데 몇 사람이나 이집 식재료의 진정성을 알까? 화학조미료 교묘하게 넣은 집 음식을 분명 청마루보다 더 맛있다고 할 것이니….
열정·미래파 셰프는 그녀에게 러브콜해 보시길. 맘에 들면 제2대 청마루 주인으로 키워보겠단다. 대구시 남구 대명6동 573-2 (053)621-4488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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