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포항] 호미곶 태양의 제국을 찾아서 <상>

  • 입력 2012-11-14  |  수정 2025-10-14 10:58  |  발행일 2012-11-14 제13면
동해 한복판 낙원을 믿는 男

마고할미의 흔적을 쫓는 女

하늘·땅·바다 ‘대접처’로 향하다

◆ 시리즈를 시작하며

영남일보는 여헌 장현광과 입암 28경을 다룬 ‘죽장 선바위 여풍시대’(8월16일~9월6일 연재)에 이어 포항지역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시리즈 ‘호미곶, 태양의 제국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상·하편 2회에 걸쳐 연재되는 이번 시리즈는 포항의 대표적인 명소인 호미곶에 전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야기는 2명의 가상 인물을 통해 호미곶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한반도에서 호미곶이 가지는 의미를 재조명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원고 집필은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 초빙연구원인 이상국 작가가 맡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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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명소로 유명한 포항 남구 호미곶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상생의 손’. 바다에는 오른손(위), 육지에는 왼손이 각각 마주보고 있다. <영남일보 DB>

서울 종로4가에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태양으로 가는 길, 포항 호미곶’. 그 버스에 올라탄 마흔 살 사내 윤오랑과 서른 세살 여인 최오녀. 윤오랑은 IT사업으로 일찍부터 부자가 되었으나 돈과 명성이 반드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그러다가 어떤 책을 읽으면서 동해의 어부들이 풍랑 끝에 닿았다는 낙원의 섬 이야기를 알게 됐다. 그 전설에 이끌려 호미곶행 버스를 타게 됐다.

최오녀는 어느 현직 정치인의 딸이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언론사에 취직을 했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집안이 일제 때 부역한 자취를 발견하고, 뿌리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고할머니에 관한 책을 읽었다. 단군 이전에 그녀가 있었고, 이 땅의 완전한 평화시대를 이끈 최고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녀는, 마고가 포항 공개산(孔開山)에서 뜻을 펼쳤다고 믿고 있었다. 포항 일대에는 마고에 관한 전설이 많기도 하거니와, 물과 뭍, 해와 인간이 맨처음 만나는 그곳이야 말로 조화로운 신국(神國)을 건설하는 최적의 장소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동해 일출이 보고 싶어 그 버스에 올라탔던 빈섬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뒷자리를 잡았기에 우연히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서울서 호미곶까지 버스로 4시간 거리.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이야기를 지상중계한다.


-최오녀 “호미곶(虎尾串)이란 이름이 참 예쁘지 않나요? 호랑이 꼬리라는 뜻도 그렇지만, 꼬리가 영일만을 품고 쏘옥 올라온 것이 호미날과도 닮았으니 어감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윤오랑 “한때 이곳을 장기(長)곶이라고 했죠. 사람들은 말갈기같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했으나 사실 기()는 지느러미나 무지개라는 뜻이 있죠. 긴무지개곶이라고 해야겠죠. 조선의 풍수학자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동해산수비록’에서 한반도는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끝이며 이 지역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한 이래로, 사람들은 이곳을 호미곶이라 부르게 됐다 합니다.”

-최오녀 “부근에 구만리(九萬里)라는 바닷가마을도 있던데, 이 이름이 아마도 구만리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마고할머니의 자취가 아닌가 싶어요.”

-윤오랑 “호미곶이 영성(靈性)이 가득 찬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독도를 제외하면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뭍의 끝이자 처음이니까요.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하여 국토 최동단(最東端)임을 확인했다고 해요. 전국을 누빈 그가 이곳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태초의 인간이 느꼈던 근원적인 감정을 되새기지 않았을까요.”

-최오녀 “아, 고은의 시(詩), ‘부활’이 생각나는군요.”

-윤오랑 “어떤 시인가요? 한번 읊어주실 수 있겠는지….”

-최오녀 “‘동해 창망(滄茫)하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은 잠자라./ 우리 동해 기슭의 몇 군데에/ 서로 부서지면서 모인 게껍질들아/ 지난밤에는 흰 구름의 울음을 울더니/ 오늘 아침 해돋이 붉은 햇빛으로/ 저마다 뼈 속의 살과/ 두어 개의 눈을 얻어서,/ 모든 외로운 거품을 보내고/ 동해 기슭을 일제히 기어 나가라./ 게들아 게들아 기어 나가라./ 그리하여 동해 깊은 바다 밑바닥에 들어가서/ 가장 무서운 암초들을 물어뜯어라./ 또한 그리하여 아픈 바다는/ 빛나는 아픔의 물결, 진노하는 물결과/ 서로 조각조각 사랑하는 물결로 물결쳐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도 깨어나서/ 모든 뼈에 살이 쌓이고/ 떠난 넋들아 몸에 돌아오라. 가을에 어린 것들과 늙은 것이 돌아가듯이 돌아오라.’ 앞부분은 이랬어요.”

-윤오랑 “와! 장엄한 동해예찬이군요.”

-최오녀 “오랑님이 가고 싶다는 동해 한복판의 ‘자미도’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윤오랑 “예. 포항 호미곶 끝에서 서남쪽으로 살짝 내려오다보면 영일만 저쪽에 북부해수욕장이 있어요. 그곳이 두호동인데 일제 시대 이곳에 살던 어부 여섯 명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어떤 섬에 닿았다고 해요. 그 섬은 처음 보는 곳으로 뭍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보였지요. 숲에서는 과일향기가 감돌았고 구름이 내려와 안개처럼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부들은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뜻밖에 대숲으로 된 길이 나오더랍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농작물이 익어가는 논밭이 보이고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몇 채 모여 있었지요. 일행은 반가워 그 중 한 집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목이 말라서 그러니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사랑채 작은 문이 열리더니 백발에 하얀 수염을 지닌 할아버지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손짓을 하며 들어오라고 했지요. 일행이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노인이 넷 있었는데 장기 비슷한 것을 두고 있었다 합니다. 한 노인이 막걸리같은 술과 흰 접시에 담긴 흰 떡을 내왔다고 합니다. 일행에게 술과 떡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다지요. ‘이걸 마시면 열흘은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요, 이걸 먹으면 그 열흘 동안 시장기를 느끼지도 않으리다.’ 떡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노라니, 장기를 두던 노인이 돌아보지 않은 채로 이런 말을 하였다 합니다. ‘여긴 동해의 영지(靈地)로 자미도(子尾島)라고 하오. 뭍에 있는 꼬리인 호미(虎尾)는 대륙을 향한 대호(大虎)의 꼬리이고, 바다에 있는 꼬리는 동해용궁에서 뻗어나온 대룡(大龍)의 꼬리인지라 자미(子尾)라고 부른다오. 그대들은 뭍의 호랑이에서 뛰어내려 동해의 용을 탔으니 위험한 지경에 들어온 것이오. 풍랑으로 다친 몸들이 낫거든 속히 떠나도록 하오. 그리고 여기서 보고들은 것들은 일절 발설하지 않도록 하시오. 용은 귀가 밝아서 무슨 얘기든지 다 듣는다오.’ 엿새 뒤 한 노인이 배를 한 척 내주었는데, 어부들이 그 배를 타니 노도 없이 파도를 거슬러 순식간에 호미곶에 당도하였다 합니다.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니 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뱃머리를 돌려 동해로 쏜살같이 달려갔다는군요.”

-최오녀 “동해는 깊어서 섬이 있을 만한 곳이 많지 않은데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독도와 울릉도를 빼고 또다른 섬이 있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설레는데요? 그런데 그 어부들은 뭍으로 돌아와 자미도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던가요?”

-윤오랑 “그렇지 못했답니다. 도대체 동해의 험한 풍랑에서 어떻게 살아돌아왔느냐고 사람들이 묻는 통에 입이 근질거려 그만 한 사람이 자미도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한 어부는 몸에 비늘이 돋는 병에 걸려 결국 죽고 말았고요. 일제의 폭압에 끼니를 거르던 사람들은 열흘 동안 배고프지 않는 음식이 있는 낙원의 섬을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이 동해 한가운데서 파선(破船)으로 죽음을 당했다 합니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자미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라고 믿고 있다고 해요. 호미곶에 서서 해돋이를 바라보면 그 해를 낳는 지점에 용의 꼬리가 아주 멀리서 자그마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고 해요. 물론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허랑(虛浪)한 이야기지만요.”

-최오녀 “그럼, 오랑님은 내일 아침 호미곶 일출을 보면서 자미도를 찾을 거군요? 거기로 가는 배는 준비를 해놨나요?”

-윤오랑 “그곳 사람에게 부탁을 해놨는데…. 아마도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난색을 표하더군요. 하지만 영도(靈島)는 마음이 닿아야 찾아내는 섬입니다. 간절함이 있으면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이제, 오녀님의 마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최오녀 “예. 사람들은 마고할미가 중국 절강성의 천태산(天台山)에서 살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하늘의 태산(天泰山)에 산 것입니다. 하늘 상제(上帝)의 딸로 그곳에 살다가 천태산과 가장 닮은 한반도에 내려왔지요. 마고는 사이즈가 워낙 커서 한반도의 어디에 살았다기 보다, 반도 땅 전체에 걸쳐서 눕고 일어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한라산을 베고 누워 한 다리는 서해에 굽혀넣고 한 다리는 동해에 펼쳐 담근 채 동해 파도소리같은 코를 골면서 잠을 잤다고 하니 말입니다. 젖가슴은 지리산에 있었고 허리는 태백산, 둔부는 백두산에 있었지요. 말하자면 거대한 대지의 여신이었습니다. 사실 몸의 크기는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라 여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일 것입니다. 제주도에선 선문대할망, 경남 양산에선 노고할미, 서해안에선 개양할미, 삼척에선 서구할미라고 부르는 것이 모두 같은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해 부근의 지방에서는 안가닥 할미라고 부릅니다. 어떤 지역에선 선한 할머니이고 어떤 지역에선 마귀할멈(‘마고할미’와 이름도 비슷합니다)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는 것은, 아마도 지역에 따라 보여지는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포항 일대에도 마고할미의 전설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호미곶은 마고가 귀하게 여긴 땅일 가능성이 높지요. 하늘과 땅과 바다를 동시에 만나는 3원(三元)의 대접처(大接處)이니까요. 하늘의 태양, 땅의 바람, 바다의 물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 호미곶은 바로 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편에 계속>

글=빈섬 이상국<스토리텔러·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도움말=포항문화원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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