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수’들의 도전기 “중앙의 문턱은 너무 높다”

  • 이춘호
  • |
  • 입력 2013-07-12   |  발행일 2013-07-12 제35면   |  수정 2013-07-12
■ 주부가요제 출신 윤정아
라이브카페 순례하다 신곡 받아 정식데뷔
“케이블방송·라디오 등에 공격적 홍보 필요
맨 목소리로 감동시킬 수 있어야 진짜가수”
20130712


윤정아씨<사진>는 주부가요스타 출신 향토 가수다.

한때 ‘TV주부가요제’가 잠자고 있던 중년 여심(女心)을 마구 자극했다. ‘나도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전국의 주부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 덕분에 지역 곳곳에 주부가요제 출전자를 위한 가요교실까지 생겨났다. 밤무대 여가수에게 주부가수는 새로운 ‘복병’이었다.

지역의 첫 스타급 주부가수는 미모가 상당한 안춘옥씨였다. 88년 MBC주부가요열창 연말 결선에서 금상을 받아 돌풍을 일으킨다. 안씨는 대구를 떠나 서울과 부산에서 클럽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춘천에서 노래를 하며 살고 있다.

현재 평리동에서 노래방을 꾸려가는 박경숙씨도 그 뒤를 잇는다. 박씨는 한때 실버악단이었던 예그린 악단 팀싱어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통파 가수들은 주부가수를 한 급 낮춰보려는 성향이 있다. 자신들처럼 밤무대에서 잔뼈가 굵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주부가수도 나름 자존심을 갖고 있다. 자식 키우느라 늦게 가수의 꿈을 꾼 것이 뭐가 잘못이냐는 푸념이다. 자기들도 음습한 밤무대는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대다수 밤무대보다 축제 무대 등을 누비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중앙 무대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윤정아씨가 주부가요제 출신으로는 현재 지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96년 대구가요제에서 대상, 98년 도전주부가요스타 상반기 대상, 연말에 동상을 받는다. 지역의 작곡가들도 성량이 풍부한 그녀의 목소리를 주시한다. 르네상스, 까치둥지,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등 라이브카페를 많이 순례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순 없다고 믿었다. 새로운 곡을 받아 정식 가수로 발돋움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작곡가 방기남의 ‘화살촉사랑’과 ‘여자의 정’, 김진용 작곡 ‘사랑하는데 왜’를 불러 지역 방송가에선 나름 입지를 확보한다. 특히 자기 폰 컬러링으로까지 올려놓은 ‘사랑하는데 왜’는 중앙권에서도 인기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무대의 문턱은 너무나 높다. 주부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메이크업과 패션스타일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덕분에 수만명이 모인 축제무대에 여러번 설 수 있었다.

“트로트 세계는 정말 가수 수도 많고 실력도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아서 출세하려고 하면 정말 부지런하게 뛰어다녀야 합니다. 지역 케이블방송은 물론, 라디오 음악코너, 영향력있는 연출가에게 자기 음반을 공격적으로 홍보를 해야 침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식 공연무대가 붕괴되다보니 자기 입지를 위해 또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주부가요제 프로도 주부한테 허영심을 준다는 이유 때문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주부가수의 기반이 붕괴된 것이다.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그녀는 급기야 99년 대구향교 근처에 윤정아 노래교실을 연다. 지금은 가수를 하겠다는 주부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도움말을 준다.

“2000년 들면서 주부가수가 붐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주부가 노래방에서 노래 좀 잘 부른다고 가수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주부가요제 출신 가수와 노래 잘 부르는 주부는 차이가 많죠. 그런데 요즘 노래 좀 부른다는 일반 주부가 정체불명의 노래봉사단에서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맘이 아픕니다. 출연료 한푼 안 주어도 무대에만 세워주면 감지덕지라는 여가수가 많아져서 속상합니다. 진짜 가수와 그냥 여흥삼아 취미삼아 노래부르는 아마추어가수하고는 구별돼야 된다고 봅니다. 요즘은 음반도 참 쉽게 낼 수 있습니다. 예전엔 음반내야 가수지만 지금은 음반 갖고는 판별을 못합니다. 기계가 다 알아서 해줍니다. 노래솜씨가 좀 부족해도 얼마든지 사운드성형까지 해줘요. 진짜 가수라면 맨 목소리로 객석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20130712
15년간 살림 살다 음반 낸 김민서
고3때 밴드마스터에 발탁…지방 유랑공연
“녹음때 실력부족 절감…8개월간 연습 연습
지방푸대접 심해 무대활성화 지원책 필요”

 

김민서<사진>.

그녀만큼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절감하는 이도 드물다. 한때 밤무대를 오르내렸지만 역시 결혼은 여가수에겐 상당한 치명타였다. 자신은 실력과 나름 외모까지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가요계는 ‘철옹벽’. 복도, 운도, 백도, 연줄도 있어야 대성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가수가 된다.

 

가족끼리 달서구 송현동의 한 회관에 놀러갔다. 오빠가 돈을 주고 여동생이 노래를 하게 했다. 고3 때였다. 밴드마스터가 눈독을 들인다. 밴드마스터한테 지도를 받으며 그 바닥으로 들어간다. 주로 주현미 노래를 많이 익혔다. 이미 9세 때부터 자기 동네에선 ‘신동가수’로 소문이 났다.

그땐 유랑밴드와 비슷해서 계약이 끝나면 다른 지방으로 갔다. 그녀도 따라서 경북 상주, 봉화, 청송 등지로 갔다. 그때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 김연자의 ‘수은등’,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 등을 즐겨 불렀다.

 

밤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관계자의 여성폄훼적인 행동에 염증이 생겼다. 계속 있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아 1년반 만에 그만뒀다. 그리곤 결혼을 한다. 15년간 살림만 살았다. 남매를 키웠다.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세상을 둘러보니 음정이 안맞는 대충가

수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저 정도로 부르면 난 장윤정’이라고 믿었어요.”

 

일단 노래봉사단부터 들어갔다. 당시 봉사단 출신 가수가 15명 정도 소속돼 있었다. 그런데 죄다 나름대로 한 가락씩 했다. 행사, 축제, 무료야외음악회, 양로원, 교도소 등도 다녔다. 모두 여가수뿐이었다.

 

“열정뿐이고 돈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봉사를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가수로 정식 데뷔를 하면 나름 더 대우받는 가수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일단 가수가 자기 음반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1년5개월간 음반 준비를 한다. 그 전에 2년 정도 라이브카페에서 일했다.

음반을 내는 건 참 지루하고 챙겨야 할 게 많았다. 수성못 근처 S2 기획에서 음반을 준비했다. 곡은 지역의 작곡가 김상수(S2 대표)·김병걸씨, 편곡은 이춘재씨가 맡았다.

 

“음반 만드는 게 그렇게 복잡하고 힘든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입원환자처럼 8개월을 곡 연습만 반복했습니다.”

대구에서는 본 녹음을 위한 연습을 하고 상경해서는 진짜 녹음을 했다.

 

“녹음작업 중에 제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공부하게 됐어요. 자꾸 슬럼프도 오고 순간 내가 정말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어려워 하니 지인이 ‘산 넘어 산이다. 이제부터 아기가 걸음마 연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라’고 조언한 게 큰 힘이 됐습니다.”

2011년 3월 앨범을 출산한다.

 

“순간 저도 서울의 유명 가수 반열에 들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어요.”

 

음반을 위해서 수천만원을 투자했고 2년 세월을 올인했다. 그런데 어떤 지인은 비닐 커버도 안 뜯고 승용차 트렁크 안에 처박아뒀다. 속으로 ‘저게 장윤정 CD라면 저랬겠냐’고 탄식했다.

 

어금니를 물었다. 그런데 매니저도 없다. 마구잡이로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MBC라디오 싱글벙글 문도 노크해봤다. 타이틀곡인 ‘굿바이’를 밀었는데 노래 제목이 맘에 안든다면서 반대를 위한 꼬투리만 잡았다. 중앙무대는 아직 그녀에겐 ‘난공불락’이다.

그녀도 이젠 지역 밤무대를 위해 뭔가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아직 실력이 아니라 인지도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서울 가수와 지방 가수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지방에서 낸 음반은 서울에서 푸대접을 받습니다. 정말 대구에 기라성 같은 밤무대 선배님들이 많지만 다들 무대가 없어 한숨을 내쉬는데 후배들이 더 헌신해야 될 것 같습니다. 향토가수가 우선 좋은 공연을 위해 합심하고 지역 언론과 방송에서 도와주면 새로운 여가수 시대가 도래할 것 같습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