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KBS 전속 전설의 김차란도 노래교실을 운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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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구 여가수 중 좌장격인 김차란씨가 갖고 있는 1960년대 초 발급된 대구 KBS 방송 전속가수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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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한 클럽의 쇼무대에 선 김수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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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김학송 작곡의 ‘생각이 나요’가 들어 있는 음반을 낸 박영옥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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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념 수성못 수상무대에 선 강소연씨. |
그 많던 ‘나비’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비는 ‘여가수’를 뜻한다. 1960년대는 방송국에도 전속 여가수가 있었다. 70년대 호텔 나이트클럽 여가수는 지역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숱한 여성 밴드맨이 있었고, 한창 때는 300명 이상의 여가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공연 무대를 떠났다. 공연이 없고 행사뿐이라서 다들 행사무대만 서성거린다. 참으로 안타깝다. 먹고 살기 위해 노래교실을 열거나 라이브클럽으로 연명하고 있다. 김차란, 황금희, 문희진, 김수야, 박영옥, 강소연, 손혜진…. 아직 불멸의 향토 여가수는 우리 주변에서 제2전성기를 엿보고 있다. 이번 주는 그들을 찾았다.
향토 여가수 1호로 지금까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대선배격 여가수는 누굴까. 수소문해 본 결과 1962년 2월 대구KBS 전속가수로 공채로 선발된 김차란(본명은 김영자)씨(74)였다. 그녀는 현재 남구 봉덕동에서 노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호시절을 떠올리면서 장탄식을 이어간다.
“60년대만 해도 가수는 아무나 엿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땐 마이크와 스피커가 열악해서 타고난 음성과 성량, 감정이 없으면 이 바닥에선 살아남을 수 없었어요. 지금은 반주기(ELF) 등 좋은 음향장비 때문인지 ‘아무나 가수’ 시대로 저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지갑에서 귀중한 흑백사진을 끄집어낸다. 빛바랜 KBS전속가수 자격증이다. 지금은 서울로 올라간 전성기 자신의 단짝이었던 황정자씨(74)와 결성했던 개나리시스터즈 시절의 사진도 보여준다. 둘은 ‘대구의 펄시스터즈’로 불렸다.
공개홀이 없었던 대구KBS는 주말에 대구공회당을 빌려 각종 공연을 했다. 당시 ‘KG(대구KBS 호출부호인 HLKG의 준말)배지’를 달기 위해선 매년 실시되는 가수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다. 58년부터 매년 기수별로 뽑았다. 대구가수1호 고화성을 비롯해 대구KBS 아나운서 김충진씨의 아버지인 김상규, 60년대 중엽 ‘사랑의 백서’를 불러 히트를 쳤던 나운, 원남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던 전 대구상공회의소 모 회장, 이혜만 전 동아일보 대구주재기자 등이 있었다. 여가수는 김씨는 비롯 이영숙, 윤금란, 이혜주, 서영순, 이명희, 이혜정 등이 거쳐갔다. 모두 떠나고 대구에 남은 이라곤 김씨뿐이다.
“한번 출연하면 30원 정도 받았어요. 1주일에 몇 차례 고정프로에 출연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웬만한 밤무대는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KG홀 2층은 모두 588석이 있었어요. 인기 프로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유필기 아나운서 사회로 시작되던 ‘노래의 향연’이었죠. 전속악단은 예천 출신의 김상열이 이끌던 7인조 악단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땐 전자기타도 없었어요. 남가수는 반드시 양복에 넥타이, 민요파트는 한복, 가요파트 여가수는 원피스형 이브닝드레스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참 행동에 제약이 많았죠. PD들은 현란한 춤까지 금지시켰습니다. 그냥 한쪽 팔만 가볍게 흔들도록 했는데 어기면 경고조치를 받죠. 백댄서도 없었습니다. 프로그램당 전속가수 6~7명이 나와 1~2곡을 부르고, 2부에선 도민노래자랑이 이어졌습니다.”
김씨는 대구의 첫 여성 듀엣인 ‘개나리시스터즈’를 63년 결성한다. 그 어름에 현미가 ‘밤안개’, 한명숙이 ‘노란 샤스의 사나이’를 발표한다. 멋있게 보이려고 당시 유행하던 올림머리를 하고 시내 최고급 양화점인 오스카, 스마트, 스마일 등에서 맞춤신발을 구입한다. 64년 겨울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갓 발표한 ‘동백아가씨’ 음반 홍보를 겸한 쇼를 신암동 신도극장에서 열었는데 그때 둘도 초대받는다. 결혼식 축가 주문도 많이 받았다.
그녀는 6·25전쟁 시절 국내 유일 레코드사인 오리엔트를 운영했던 작곡가 이병주 밑에 잠시 머무른다. 추월성 음악학원 강사로도 활동했다. 지역 여가수론 드물게 통기타까지 익혔다. 69년 결혼한 그녀는 잠시 가요계를 떠난다. 혼자남은 황씨는 만경관 옆 극장식 비어홀 금잔디, 뉴동제, 88회관 등 지역 밤무대를 거쳤다가 현재는 서울에서 활동중이란다.
김씨는 암투병을 하면서 84년 지역 첫 노래교실 격인 수성관광호텔 레이디스 클럽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했다. 정식 김차란 노래교실은 98년 동대구역 뒤편의 한 노래방을 빌려 시작했다. 2006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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