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남의 차마고도 기행 .19] 윈난성 하관다창은 하관타차의 원산지, 변소긴압차 생산의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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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5-03-20  |  발행일 2015-03-20 제면
[김현남의 차마고도 기행 .19] 윈난성 하관다창은 하관타차의 원산지, 변소긴압차 생산의 거점
하관다창에서 타차를 만드는 모습.
[김현남의 차마고도 기행 .19] 윈난성 하관다창은 하관타차의 원산지, 변소긴압차 생산의 거점
조기람인철병의 뒷면.

윈난성의 하관다창(下關茶廠)은 1941년에 설립되었는데, 윈난성 서남지구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설립된 대규모의 찻잎 가공기업이라 할 수 있다. 하관다창은 윈난하관타차의 원산지로, 또 변소긴압차(邊銷緊壓茶)생산의 중요 거점지역으로 전 세계의 보이차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관다창이 설립되기 이전인 1920년대 하관은 윈난의 차교역 집산지와 가공 무역의 중심지가 된 후, 대리(大理)지역의 상인들이 차를 주요한 영업 품목으로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찻잎의 가공공장들이 차례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1년 봄에 윈난중국다엽무역유한공사와 몽장위원회는 공동으로 출자하여 ‘윈난중국다엽고빈유한공사강장다창’을 설립하고, 1948년 4월에는 ‘윈난중국다엽무역고빈유한공사신강장다창’으로 개명을 하였다. 이후 중국 인민 정부는 1950년 4월에는 신강장다창을 접수하고, 이름을 ‘중국다엽공사윈난성공사하관신강장다창’으로 개명하였다가 다시 ‘윈난성하관다창(雲南省下關茶廠)’으로 변경하였다.

하관다창에서는 주로 긴다(緊茶)와 타차를 중심으로 생산을 하다가, 1950년대 처음으로 병차(餠茶)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만든 대표적인 병차가 ‘조기람인철병원차’였다. 또한 50년대 초기에 중차공사(윈난의 차 수출권을 가지고 있던 국영기업)는 러시아나 홍국을 비롯하여 자본주의국가로 차의 수출을 넓혀가고 있었다. 산업자원이 부족했던 시대에 차는 외화를 버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였다. 특히 러시아가 하관다창에 자금을 제공하면서 공장시설이 확대대고, 양산기술에 철(鐵)의 압형이 도입되면서 철병(鐵餠)이 탄생하였다.

당시까지 고형의 보이차를 성형할 때는 천과 석형(石型)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이 철의 압형에는 천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병차의 뒷면에 천이 뭉쳐진 자국인 凹의 모양이 없는 편편한 모양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 맹해다창에서는 보이병차의 주문량이 폭주하자, 하관다창에 보이병차의 생산을 위탁하기도 했다. 맹해다창의 제다방법에 따라 70년대부터 80년대 말기에는 천(布)을 사용한 보이병차가 많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방법 때문에 보이차의 뒷면에는 천에 의해 凹가 형성되어 있다. 철병의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하관다창과 맹해다창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제일 처음에 만들어진 ‘조기람인철병’과는 찻잎이나 가공방법이 다르고, 맛도 다르다. 이 조기람인철병은 생산된 뒤에 습도가 높은 홍콩의 창고에서 보존된 것이 가장 많으며, 습도가 낮은 건조한 상태로 보존되어 숙성의 상태가 좋은 것은 시장에 3~4할밖에 없다고 한다. 그 3~4할의 물건은 숙성 상태가 좋고, 차를 만들 때 최고의 찻잎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보이차 애호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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