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災, 악몽이 된 코리안 드림] <상>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 실태

  • 석현철,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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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6 07:26  |  수정 2016-07-06 07:27  |  발행일 2016-07-06 제6면
한국어 소통 힘들고 고강도 근로…대구·경북 年 320명 이상‘재해’
20160706
그래픽=최은지기자jji1224@yeongnam.com

지난 2월29일 군위군 수서리 소화기 제작 공장에서 소화기 충전용 분말을 저장해 둔 탱크가 폭발, 작업 중이던 인도네시아인 근로자 디딕씨(34)가 머리를 다쳐 숨지고 하리씨(34) 등 2명이 부상을 입었다. 디딕씨는 약재탱크에 생긴 구멍을 때우기 위해 용접작업을 하다가 소화용 약재가 팽창하면서 사고를 당했다.

지난 1일 고령군 개진면에서는 제지공장 체스트기(원료배합탱크) 안에서 슬러지 청소를 하던 네팔인 타파씨(24)가 황화수소에 중독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타파씨는 원료배합탱크 안에 들어가기 전 공기측정은커녕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20대 청년의 꿈은 2년 만에 허망하게 깨졌다.

디딕씨나 타파씨처럼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는 외국인 노동자가 매년 속출하고 있다. 같은 조건에서도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기본적인 안전 매뉴얼도 지키지 않은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그릇된 인식이 그들을 주검으로 몰아가고 있다.

◆ 산업재해 98%가 업무상 사고

통계청에서 실시한 2015년 외국인고용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5월 현재 대구·경북에는 5만9천명의 외국인이 취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경북도내 외국인 근로자 수는 2만9천530명이며 중국인 5천714명(19.3%), 베트남인 5천64명(17.1%), 인도네시아인 4천558명(15.4%)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산업단지가 있는 도시 인근(경주 5천930명, 구미 4천90명, 경산 3천289명 등)에 거주하면서 자동차부품, 전기전자, 주방용품, 부직포 제조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50인 미만 영세한 제조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재해발생률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 외국인근로자 총 5만9천명
환경 열악한 3D업종 취업 많아
끼이고…베이고…“사고 증가세”
사망자도 해마다 4∼7명 발생

사업주의 잘못된 인식도 원인
위험하고 강도 높은 업무 불구
충분한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
안전수칙 안지키고 폭언 예사

안전불감증 해소가 가장 시급
체계적인 교육과 관리 나서야



외국인정책본부에서 발표한 ‘2015년 제조업 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 종사 재해자 수는 2만7천11명(외국인 3천554명)이며 재해 사망자는 428명(외국인 41명)이다. 대구·경북 재해자 수는 내외국인 합쳐 2천925명으로 국내 전체의 10.8%로 조사됐고, 사망자는 47명이다. 이 중 외국인 근로자 재해자 수는 321명이며 4명이 재해로 숨졌다. 특히 최근 3년간 대구·경북의 경우 매년 320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가 재해를 당하고 있으며, 사망자도 매년 4~7명씩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대구·경북 외국인 근로자의 재해 형태를 분석해 보면 98%에 해당하는 314명이 끼임(182명), 절단·베임·찔림(32명) 등의 업무상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재해로 사망한 4명도 모두 업무상 사고였다.

◆ 업주의 태도와 산재 처리

2008년 이후 국내 전체 산업재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외국인 산업재해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고유형을 살펴보면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산업재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한국어 소통의 어려움,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의 열악한 작업환경, 미숙한 기술력,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한 산업안전 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외국인 산재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이다.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이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고용주의 폭언, 폭행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태국·베트남·방글라데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임금을 많이 준다는 생각에 내국인보다 더 높은 강도로 일을 시킨다. 특히 위험하고 강도 높은 업무에 대한 충분한 교육도 없이 현장에 바로 투입시키고 있다.

어저역 코마르 네팔교회 전도사는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사업주의 강요 탓에 손이 다치거나 부러지고 심지어 뜨거운 철에 녹는 등 비슷한 형태의 사고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얼마 전 경주 감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보다 적극적으로 감시·감독을 해야 한다”며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는 이주노동자 고용업체에 대한 전수 관리감독과 실질적인 안전조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재 보상이다. 병원에 옮기고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산재 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물론 이후 지급되는 보상액도 너무나 적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가 치료 시기를 놓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거나 숨지기까지 한다. 코리안드림이 코리안악몽으로 끝나 버리고 있는 것이다. 체류기간이 끝나 불법 체류자가 된 A씨는 “이전 공장에서 다쳤지만 불법 체류자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현재 한쪽 손이 불편한 상태”라며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고 말했다.

◆ 체계적 교육·관리 필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사업주의 안일한 태도와 안전불감증이 산업재해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일반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경북도는 최근 군위지역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교육은 외국어로 번역된 교재를 배포하고 작업 전후 안전수칙, 산업보건, 생활안전,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 요령 등에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경북도 허동찬 도민안전실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제조업체 인력난 해소에 기여한 점이 있다. 그들이 안전사고 없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며 “앞으로 특별교육 확대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경북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재해 원인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날 교육도 제조·건설업 종사자에 한정됐고 원론적인 교육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농·어업 종사자에 대한 산재 예방 교육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며 당분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성주=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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