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반월당고로케’ 박종훈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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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30   |  발행일 2018-03-30 제41면   |  수정 2018-03-30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고로케…‘빵지순례’ 성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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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반월당역에 고로케점을 오픈, 현재 직영점만 12개를 내고 커피숍, 칼국수, 일본가정식 메뉴까지 론칭하며 식품회사 경영자로 변신하고 있는 ‘반월당고로케’ 박종훈 대표.

대구도시철도 1호선 반월당역. 그 광장 푸드코트에 엄지손가락만 한 빵집이 하나 있다. 꼭 ‘음지식물’처럼 구석진 곳에 자리한 ‘반월당고로케’. 박종훈 사장은 그 공간에 상륙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삶의 파고를 넘어왔다. 그는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결국 음식장수 팔자를 타고났다는 걸 훗날 절감하게 된다. 어느 날부터 대구는 빵지순례(전국구 유명 빵 시식여행)로 급부상한다. 현재 대구를 대표하는 3대빵은 고로케·마약빵·단팥방. 그가 만든 고로케 때문에 반월당은 졸지에 전국에 알려지게 된다. 물론 반월당역도 덩달아 유명해진다. 그는 고로케의 성공을 딛고 사업다각화에 나선다. ‘커피별수다’, 일본가정식밥집인 ‘훈쿡’, 대게칼국수 전문점 ‘강구마을’을 론칭시켰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최근 시내 갤러리존 근처에 치맥의 도시 대구에 걸맞은 신메뉴 ‘치즈치킨’까지 시작했다.

빵집 아들의 운명
직장인·채소장사·보험영업 두루거쳐
반월당역서 생애 첫 빵집가게와 조우
부모님의 도넛, 고로케로 이어갈 생각

대구 3대빵 전국구 명성
3차례 발효·빵가루 묻히는 방법 터득
성서공장 이전…자동화시스템 도입
소보로·부추잡채 등 16가지로 늘어
직영점 12곳·가맹점 20여개 성장세
커피·칼국수·치즈치킨 사업 다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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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칼국수 전문점인 ‘강구마을’에서 만든 ‘대게김밥’.

◆ 분식집 아들…분식에서 멀어지고

대구 북구 칠성2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서구 비산동, 북구 고성시장 등지에서 분식점을 꾸려갔다. 장사가 잘돼 나중엔 중구 화전동 송죽극장과 대구극장 사잇길에서 풀짜장을 파는 ‘서울분식’을 오픈했다. 올해 75세인 아버지는 그가 29세 때도 여전히 분식점 주인이었다. 서구 비산동 대영학원 근처에서 방 한 칸 있는 찐빵집을 품고 있었다. 부모는 6군데나 옮겨 다니며 장사를 했고 20여년 전에 겨우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었다.

영남이공대 전산과 졸업 후 상경한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던 재능교육 전산실 프로그래머로 사회인이 된다. 직장 생활이 깊어질수록 그는 자신이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블루칼라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인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회사를 나와 장사하는 게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무슨 용기였는지 사직서를 내고 난 다음 날 분당의 한 아파트 단지 횡단보도 근처에서 좌판을 깔고 채소장수로 변신하게 된다. 배짱을 키우는 나날이었다. 일단 배추, 무, 밤, 조기 등을 무작위로 갖다 깔아놓았다. 직장에서 잘 보이지 않던 장사의 비밀이 거리에서는 단번에 포착된다. 영광굴비랍시고 사 왔는데 한 마리도 팔리지 않았다. 장터 골라총각처럼 코믹한 몸짓을 던지면서 호객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가격이 좀 비싼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가격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0을 하나 더 붙였다. 고가전략이었다. 전략이 적중해 그날 굴비를 다 팔아치웠다.

밤 장사에 이어 감자도 팔았다. 그전에는 트럭이 없었는데 나름대로 목돈을 마련해 트럭을 하나 구입했다. 한 상자에 2만원짜리도 직접 가져가면 1만원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그의 마케팅이 잘 통해 오전에 다 팔았다.

◆ 점점 장사꾼 박종훈으로 변신

“거리에 앉아 팔다보면 보기와 달리 단단한 자본이 형성되는 걸 체득하게 됩니다.”

6개월 정도 하던 중 결혼을 한다. 아내는 영어교사였다. 6년 정도 연애한 사이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장사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하지만 나중엔 그걸 알고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생각도 못한 시점에서 전남 해안으로 가서 살게 된다. 큰동서가 해남에서 중기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내는 두고 혼자 내려가서 해남에서 가장 궁벽진 동네에 전을 깔았다. 직원 관리도 하고 덤프트럭도 몰았다. 1년 뒤 아내도 내려와 좌일속셈학원을 차린다. 학원은 참 잘됐다. 그렇게 8년이 흐른다. 뒤를 돌아보니 도처가 학원이었다. 학원사업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8세에 대구로 아내와 함께 온다. 1년은 관망한다. 그러다가 보험회사를 다닌다.

“저는 물건은 잘 못 만들어도 잘 팔 자신은 있다고 생각했죠.”

보험도 팔기 어려웠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했다. 신규 가입자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를 공략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대구 지역 내 산부인과 리스트를 다 확보한다. 그리고 한 곳씩 공략해야 하는데 예전 거리장사 때 용기는 어디 갔는지 생면부지의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질 못했다.

“저 문을 못 열면 아이 우윳값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났어요.”

자신감을 얻어 대구MBC 육아교실 관계자를 찾아갔다. 이미 거래처가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성과 진솔함을 무기로 새로운 거래를 연다. 1년도 안 돼 사내 최고 약정고 직원이 된다. 하지만 보험은 거기까지만이란 생각을 한다.

“어느 날 반월당역에서 생애 첫 빵집 가게를 만나게 됐습니다. 돈가스 가게였는데 비어 있었어요. 그게 제 가게란 생각이 들었어요. 운명의 순간이었죠. 그래, 난 빵집 아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빵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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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지고 있는 ‘반월당고로케’. 기존 방식과 다른 빵가루 묻히기 기법으로 만들어 더욱 촉촉하고 바삭해졌다.

◆ 시행착오 반월당고로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의 뇌리에 ‘고로케’가 자리를 잡는다.

“부모님은 도넛을 잘 만들었어요. 어릴 때 도넛 생각이 고로케로 건너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그날 바로 계약했다.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빵 숙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고로케의 경우 속재료와 튀긴 밀가루 사이에 식감이 충돌되지 않도록 하는 게 승부처였다. 속에 들어가는 소에 어울리는 재료가 뭔지를 알아야만 했다. 다른 게 들어가면 비린 맛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케의 경우 마늘 대신 카레나 월계수 잎 등을 이용하면 풋내가 많이 제거된다는 걸 알았다.

2010년 가게를 열었다. 모두 5가지 고로케(야채, 계란, 카레, 치즈, 김치)를 만들었다. ‘야채고로케’가 가장 많이 팔렸다. 갖은 채소가 들어가는데 특히 햄을 잘 활용해야 된다. 양파, 당근, 감자 등은 괜찮지만 무와 배추는 고로케 말고 만두에 더 적당하다는 것도 알았다. 몸에 버터 냄새가 났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는 여전히 그가 보험회사 직원인 줄 알고 있다. 그렇게 1년간 아무도 모르는 채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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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로케는 야채·치즈고로케 등 모두 16종류까지 진화됐다.

◆ 고로케 반죽철학

이 집 고로케를 먹으면 눅진거리지 않는다. 바게트처럼 겉은 파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여느 고로케와 다른 질감이다. 그는 그 식감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과학을 정면으로 파고들어갔다. 고로케는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해진다. 그걸 방지하는 방법은 뭘까. 딱딱한 성질과 부드러운 성질을 매칭시키자 싶어 강력·중력·박력분을 일정 비율로 섞었다. 그렇게 해서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오래되어도 항상 봉긋한 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반죽 레시피를 확보하게 된다.

도넛은 발효를 안 하는데 고로케는 반드시 발효를 3번 해야 된다. 초발효 30분 이후 절단해서 재발효, 30분 지나 속재료를 넣고 절단 삼발효에 들어가야 한다. 초발효만 하면 절대 부드러운 맛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긴 다른 곳과 달리 빵가루 묻히는 방법이 특이하다. 가루 더미에서 대충 묻히면 들쭉날쭉해진다. 그는 패턴을 연구했다. 그는 삼발효 된 반죽의 상하를 바꿔 가루를 묻혔다. 그럼 굵은 입자와 가는 입자가 식감 있게 배열된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 기술력을 눈치챈 일본 후쿠오카의 한 매장이 그의 고로케를 향해 러브콜을 날리기도 했다.

세상은 모를 일이다. 장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의외로 안됐다. 홍보를 해야겠다 싶어 명함처럼 생긴 전단을 갖고 보험회사 시절처럼 주위를 다 다녔다. 그가 명함을 들고 나가면 직원이 반죽을 치기 시작한다. 반죽 1㎏에 고로케 50개가 나온다. 참 독한 그였다. 그때까지도 부모에게 이 사실을 쉬쉬했다. 나갈 땐 정장, 가게 와선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남구 이천동 공장에서 1년 만에 성서로 이 이전된다.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렇게 해서 5가지였던 고로케는 튀김소보로, 부추잡채, 땡초고로케 등 16개로 늘어난다. 상인에서 그는 점차 경영자로 성장한다. 성서에 식품사업장을 낸다. 그리고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부사장도 영입한다. 빵과 커피가 한 몸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고 커피숍도 차렸다. 분식점에서 카페형 고로케점으로 질적 변화를 모색한다. 지금 본점은 ‘반월당고로케카페’로 불린다. 대구 사람은 반월당카페로 알지만 서울 등지에서 온 관광객은 반월당이 지명인지 모르고 금은방이나 오래된 빵집 정도로 알고 있다.

커피숍에 이어 칼국수에도 손을 댄다. 범어네거리 강구마을은 대게칼국수 전문점. 김밥 등 모든 메뉴에 대게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훈쿡’이란 돈가스·김치나베 전문점을 연다. 혼밥·혼술문화를 역이용한 것이다. 훈쿡은 남구 봉덕동의 아주 후진 골목 안 지하에 있다. 간판도 엄청 작다. 그는 ‘맛만 괜찮으면 입지불문’이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2개월마다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으로 시장조사를 다녀온다. 반월당고로케는 현재 직영점 12개, 가맹점은 20여개. 중구 덕산동 88. (053)252-712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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