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봉산동 ‘행복빵’이야기

  • 이춘호
  • |
  • 입력 2018-08-24   |  발행일 2018-08-24 제41면   |  수정 2018-08-24
밀가루·우유 넣지 않은 ‘한방 자연발효 빵’ 건강재료로 승부수
20180824
밀가루·우유·계란·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하지 않는 한방 천연발효 쌀빵을 개발한 예병일 행복빵 대표.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과 손잡고 국내 식빵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80824
잡곡빵·찰빵·계피빵 등과 잘 어울리는 행복커피 TN.

빵장수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바로 계란·우유다. 이게 없으면 빵이 푸석해지고 딱딱해지고 질겨진다. 다시말해 상품성이 거의 사라진다는 의미다. 업자들이 그런 빵으로 승부수를 띄울 리가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빵은 너무 달콤하고 부드럽다. 식품의학자들은 그게 ‘함정’이라고 경고한다. 국내 유통되는 대다수 밀가루의 90%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입된다. 장기간 유통에도 문제가 없으려면 방부제·살충제 등에 의존할 수밖에. 고강력 정제를 통한 분말이다 보니 체내에 급격하게 당수치를 올리는 것으로 보고 됐다. 당뇨병 환자에겐 그런 시중 빵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빵의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제빵사들이 각종 향신료·감미료·유화제 등으로 맛을 조작해 놓았기 때문이다.

예전 빵은 착했던 것 같다. 꾸미지 않았다. 그래서 못생겼고 무뚝뚝했다. 예전 고향 노모가 채반을 이용해 대충 만들어 주던 술떡·개떡 같은 게 대충 그런 맛이다. 그냥 허기를 면하기 위해 먹던 간식이었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고향빵’. 그건 경쟁의 산물이 아니다. 그냥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손맛이었다. 그때 빵이 무채색이라면 지금은 너무 유채색. 복잡다단한 현대식 제빵기술이 가미돼 빵의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연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들 수 있을까.

대구한의대 변정환 명예총장·교수 투합
밀가루 대신 쌀가루·한약 천연발효빵
행복빵 50가지…상시판매 25종 내놔

변총장과 인연, 개발·책임 예병일 대표
베이킹파우더 쓰지않는 빵 상상 못해
고운 쌀가루에 율무·현미·미강 혼합
한약재 감초·계피·맥문동·치자 추가
숙성 온도 낮춘 ‘가냉숙성법’최적화
건강 챙기는 친환경빵 “나름 입소문”


다행히 그런 빵집을 도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중구 봉산문화거리 초입에 있는 ‘행복빵’이다. 가게 입구 창문에 ‘우유·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빵 파는 곳’이란 문구를 부착해 놓았다. 가족끼리 오는 단골도 있다. 당뇨병 등 성인병에 노출된 손님들은 김밥처럼 식빵·잡곡빵·찰빵을 사 갖고 간다. 하지만 손님들은 자신이 먹고 있는 그 빵이 국내에선 불가능한 빵이고 그걸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뇌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직 수익은 별로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대구가 수백 년간 약령시가 있었던 약재의 고장인 만큼 행복빵 하나 정도는 성공시켜야 된다는 일념이다. 그 일념의 문화를 만든 힐링푸드 리더가 바로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87)이다.

◆행복빵 탄생 스토리

행복빵은 변 명예총장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세계 최초로 한방종합병원, 그리고 한의사로선 처음으로 한의과대학을 설립한 그는 2010년 총장에서 물러난 뒤 기념비적인 빵을 개발하려고 한다. 바로 밀가루빵을 대체할 수 있는 빵, 행복빵이다.

하지만 행복빵 개발과정은 지독히 어려웠다. 제과제빵의 원칙을 거부한 빵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대구한의대에서 건강한 빵에 대한 문제 인식이 처음 형성된다. 쌀소비가 급감하고 대신 커피문화에 편승된, 맛만으로 무장한 빵한테 우리의 식탁이 점령당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나머지 관련 교수에게 건강한 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총장의 지시였지만 관계자들은 다들 ‘그게 가능할까’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014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세계청년대자연사랑축제가 분기점이 됐다. 2015년 제빵전문가인 예병일과 대구한의대 약선식품브랜드화사업단 김수민 단장·김미림 의과학대학장·배만종 교수가 의기투합한다.

그들이 꿈꾸는 행복빵은 이런 것이었다. 건강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밀가루, 우유, 흰설탕,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한약재를 사용해 천연 발효시켜 만든 ‘한방 자연 발효 빵’이었다.

◆ 예병일의 빵 개발기

행복빵 대표인 예병일(42). 상주 출신인 그는 15년 경력의 제빵 전문가. 상인동 ‘아미앙’, 효목동 ‘레이몬드’ 등 시내 여러 빵집을 돌다가 결국 변 총장을 만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행복빵 개발 책임자가 된다.

“이런 빵을 개발하는 줄 알았다면 면접을 보지 않았을 겁니다. 밀가루도 사용하지 않고 우유와 계란, 심지어 부풀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베이킹파우더까지 사용하지 않는 빵은 존재할 수도 없죠. 뭐랄까 제겐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이 빵을 만들어 팔고 있다니….”

그가 공을 들인 시간은 거의 1년이다. 먹음직스럽게 빵빵하게 부풀린, 기존 빵집의 식빵 같은 모양을 잡아내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쌀가루라서 잘 부풀지 않았다. 쭈글거리고 푹 꺼지기 일쑤였다. 모양도 맛도 모두 아니었다. 한마디로 빵이 아니라 떡 같았다. 팔 수도 없었다. 우유는 부드러움과 식감을 주고, 계란은 모양을 잡아주는 구실을 한다. 그걸 안 넣으니 그럴 수밖에. 그럴 때마다 나타난 변 총장이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건강해야 모두 행복해지는 법. 그런 빵을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쉽겠냐”면서 수억원에 달하는 적잖은 개발비용을 사비로 지원했다. 변 총장에겐 개발과정이 대한민국을 힐링푸드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식품독립운동’이었다.

예씨는 ‘반죽 온도’에 대해 궁리했다. 승부처는 온도라는 직감이 들었다. 기본 밀가루 반죽은 보통 25~27℃에서 숙성이 이뤄지는데 그는 좀 낮춰 숙성을 했다. ‘가냉(加冷) 숙성법’을 발견해낸 것이다. 얼음을 집어넣어 반죽을 차게 했다.

빵의 재료 선정도 문제였다. 밀가루 대신 무슨 가루를 사용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쌀가루에 율무·현미·미강을 혼합하기로 했다. 율무를 왜 넣느냐고 질문하는 이가 많다. 율무는 행복빵의 감초 같은 재료다. 율무는 소화력을 올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실 행복빵 앞에 한약이란 수식어가 들어가는 이유는 대구를 대표한다는 약령시에서 이렇다할 만한 빵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로컬 한약재를 적극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곡물 가루에 이어 부드러운 맛을 내주기 위해 두유·황설탕을 넣었다. 그리고 발효도 천연발효종을 고집했다. 베이킹파우더도 버렸다. 숙성은 1~2일, 발효는 실온에서 3시간 남짓, 그리고 오븐에서 굽는다. 쌀가루도 최대한 곱게 갈았다. 입자가 굵으면 모양을 잘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븐 온도를 기존 밀가루빵보다 조금 더 높게 설정했다. 추가적으로 행복빵에 맞는 한약재군을 넣었다. 감초·계피·맥문동·치자 등이다. 그렇게 해서 한방 천연 발효 쌀빵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대로 볼 만한 빵 모양이 나왔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상황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의 입맛이 변하기 때문에 항상 그 흐름을 빵에 반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케이크 등에 사용되는 크림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업소용 생크림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식물성 크림만 사용했다. 우유·계란에 의존한 카스텔라 대신 파운드빵을 만들었다. 이밖에 호박·고구마·팥소를 넣은 빵도 있다. 머핀·상투과자·러스크 등 간식빵도 있다. 식사 대용의 모닝빵도 개발했다.

이젠 나름 입소문이 났다. 맛만 있는 빵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 그리고 몸에 좋은 빵을 찾는 이가 점차 늘고 있다. 채식주의자도 행복빵을 조금씩 전파시키고 있다. 쌀밥 대신 쌀빵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대량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마진을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국민의 건강이 날로 위협을 받고 있으니 이 빵은 점차 대중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가장 인기가 높은 건 시골빵 같은 ‘잡곡빵’, 찰떡만큼 찰기가 있는 ‘찰빵’, 그리고 계피향이 감도는 ‘계피빵’. 행복빵 종류는 얼추 50가지. 파는 건 25종이다. 오전 8시30분 첫 빵이 나오면 식혀 진열한다. 이후 오후 2시에 한 번 더 나온다. 밤 9시30분에 문을 닫는다.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식빵 가격은 5천500원. 일반빵은 2천~5천원. 케이크류는 2만~5만원대.

행복빵한테 궁합이 맞는 커피도 판다. 여기 커피 브랜드는 TN(The natural coffee). 일요일은 휴무. 중구 봉산동 144-2. (053)423-001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