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28] 청도 운문구곡(下)...“구곡 거슬러 오르며 신령한 山水 찬미…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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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6 08:05  |  수정 2021-07-06 14:41  |  발행일 2018-09-06 제23면
20180906
운문구곡 중 1곡인 선암(仙巖)의 주변 풍경. 물가에 서 있는 바위가 선암으로,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선암서원 앞 동창천에 있다.

박하담의 ‘운문구곡가’ 서시다.

‘하늘이 운문을 열고 땅이 신령을 기르니/ 그 가운데 산수가 자연스레 맑아라/ 지팡이 짚고 나막신으로 소요하며 진경을 찾으니/ 무이(武夷)의 굽이굽이에 노래하여 화답하네’.

박하담은 서시에서 신령한 운문의 산수를 찬미하고, 운문구곡을 거슬러 소요하며 주자의 ‘무이도가’에 화답하는 구곡가를 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운문구곡가를 따라가 본다.

박하담, 1곡 지점 언급하지 않아
선암서원 앞 하천변 바위로 추정

운문사·사리암 중간쯤 6곡 석만
온통 돌로 이루어져 이름붙인듯

8곡 도인봉 봉우리 부분 큰 바위
도인이 앉아 수련하는 모습 연상


◆박하담의 운문구곡가

‘일곡이라 맑은 물에 일엽선 띄우니(一曲淸流一葉船)/ 원두에 약야천이 있는 줄을 알겠네(源頭知有若耶川)/ 옛 나루 거슬러 올라서 망연히 서니(遡古渡茫然立)/ 바위는 구름 끝에 솟고 새는 안개 속에 우네(巖出雲端鳥叫烟)’.

1곡 시다. 박하담은 1곡의 지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암(仙巖)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암은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선암서원 앞 하천변에 서 있는 바위다.

후학들이 박하담을 기려 건립한 선암서원은 박하담과 삼족당(三足堂) 김대유(1479~1551)를 기리고 있다. 약야천은 운문사 옆을 흐르는 하천이다. 운문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약야천으로 모여 흐르고 이 물은 다시 선암 앞으로 흘러간다. 원두는 하천의 근원으로, 도의 근원을 의미한다.

박하담은 구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도의 경지에 나아가고자 한다.

‘이곡이라 가운데 석고봉을 여니(二曲中開石鼓峯)/ 완연히 사랑하고 즐기는 모습이네(宛如雲樂舞昭容)/ 이곳에 이르러 기생 생각 없으니(吾人到此心無妓)/ 꿈밖의 양대로 가는 길 몇 겹인가(夢外陽臺路幾重)’.

2곡은 석고봉이다. 1곡과 2곡 사이가 많이 떨어져 있다. 운문댐 입구 대천삼거리에서 운문사 가는 길을 따라 1.5㎞ 정도 가서 운문호를 바라보면 호수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이것이 석고봉이다. 석고봉 주위의 물길 모습은 수몰되어 버렸다.

석고봉에서 당시에는 남녀가 사랑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양대(陽臺)는 고사에서 유래된 용어로, 남녀가 정을 나누는 장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2곡에서 여색의 유혹을 극복하고 구곡을 향해 나아감을 노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하담은 ‘운문부(雲門賦)’에서 유람하는 사람들이 운문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 얼굴을 한 옥녀산을 만나면 더 이상 유람하지 않고 머물며 마음을 그르친다고 지적하며 경계하고 있다.

‘삼곡이라 빗긴 언덕 우선 모양이고(三曲橫坡等藕船)/ 신선이 속세 밖에 노니니 하루가 일년이네(仙遊物外晝如年)/ 간장 창자 사이 다섯 근심 지금 다 씻으니(腸間五累今消盡)/ 밝고 밝은 마음 내 가장 사랑하네(寶鑑明明我最憐)’.

3곡 횡파는 석고봉 맞은편에서 6㎞ 정도 위에 위치한다. 박하담의 표현대로 우선(藕船), 즉 연 모양의 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연 모양의 배가 운문천을 따라 내려가는 듯한 이 언덕에서 박하담은 신선처럼 물외(物外)에 노닐었다. 여기서 근심을 다 씻고 밝은 마음을 회복해 그 마음으로 살고자 했다.

‘사곡이라 시내를 둘러서 사면이 바위이니(四曲環溪四面巖)/ 아름다운 꽃과 기이한 풀 드리웠네(瑤花異草影)/ 천문동 골짜기에 기절처가 많이 있어(天門洞壑多奇絶)/ 돌기운 구름에 닿고 달은 못에 비치네(石氣摩雲月印潭)’.

4곡 천문동을 읊고 있다. 천문동은 횡파 입구에서 운문사 방향으로 3㎞ 정도 올라가면 신원교가 나오는데, 신원교 근처의 물굽이가 이곳이다. 4곡 아래에서 이 운문천과 신원천이 만나 운문댐으로 흘러든다.

◆내원암 입구에 5곡

‘오곡이라 산이 높고 땅은 더욱 깊으니(五曲山高地愈深)/ 연하가 곳곳에 평평한 숲을 덮고 있네(煙霞多處靄平林)/ 분향하고 묵묵히 앉아서 주역 읽으니(焚香默坐看周易)/ 내원암이 맑고 서늘해 심성을 기르네(內院淸凉養性心)’.

5곡 내원암 입구다. 사곡에서 운문사 쪽으로 2.5㎞ 올라가면 운문사 가는 길과 내원암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을 만난다. 이곳에서 운문천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한 굽이가 나온다. 이 굽이가 5곡이다. 고요하고 청정한 곳에서 주역을 읽으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심성을 기른다는 것이다.

‘육곡이라 숲의 문이 돌 물굽이 마주하니(六曲林對石灣)/ 잔나비 울고 꽃 피어도 상관하지 않네(猿啼花笑不相關)/ 생생하는 사물 이치 천지에 보노라니(生生物理觀天地)/ 유인으로 하여금 노에 의지해 한가롭게 만드네(能使遊人倚櫂閑)’.

6곡 석만이다. 석만은 운문사와 사리암 중간쯤 되는 지점이다. 시내가 온통 돌로 이루어져 있어 그렇게 명명한 모양이다. 여기서 그는 잔나비가 울고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며, 한가로운 마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칠곡이라 백탄으로 내려가니(七曲登臨下白灘)/ 우뚝 솟은 사찰 수풀 건너에 보이네(嶢梵宇隔林間)/ 구름 헤친 큰 손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披雲巨手今安在)/ 가을 달의 맑은 정신 수면 위에 차갑네(秋月精神水面寒)’.

7곡은 백탄이다. 6곡 석만에서 길을 따라 1㎞ 정도 올라가면 사리암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 근처의 시내가 백탄이다. 이곳의 운문천은 하얀 모래와 돌이 바닥에 깔려 백탄, 즉 흰 여울을 이루고 있다. 7곡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면 사리암이 나온다.

7곡에서는 가을 달과 같은 맑은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팔곡이라 운림이 합했다 다시 열리니(八曲雲林合復開)/ 도인봉 아래 작은 시내 돌아 흐르네(道人峯下小溪)/ 이 한가한 가경 아는 사람 드물어(此閑佳境人知少)/ ○○○늙은이 읊조리며 돌아오네(○○○翁伴詠來)’.

8곡 도인봉은 7곡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다. 봉우리 부분에 큰 바위가 비스듬히 드리워 있는데, 멀리서 보면 도인이 앉아 수련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신라 때 한 스님이 이곳에서 수련했다는 전설도 전한다. 박하담은 8곡에서 절경을 찾는 일반인은 모르나 자신은 이곳에서 한가한 가경, 즉 도의 극처에 가까움을 알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의 세 글자가 누락돼 있다.

‘구곡이라 산이 다하고 물 맑아서(九曲山窮水瑩然)/ 물고기 발발하게 평천에서 뛰노네(遊鱗潑潑躍平川)/ 고깃배는 이날도 도원을 찾지만(漁舟此日桃源覓)/ 달리 운문에 한 동천 있다네(別有雲門一洞天)’.

9곡은 평천이다. 8곡에서 산길 따라 1.5㎞ 정도 가면 운문산이 끝자락에 이른다. 이 굽이에 이르면 계곡이 환하게 열리면서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멀리 가지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운문산 끝자락이 보인다. 주자의 무이구곡의 9곡을 떠올리게 한다.

박하담은 별천지인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바로 별천지라고 이야기한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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