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창작생태계를 만들자] <중> 청년 사라지고, 중견 무너지고…대구 예술인의 대(代)가 끊어진다

  • 정수민
  • |
  • 입력 2026-02-22 19:46  |  발행일 2026-02-22
[지속 가능한 창작생태계를 만들자]
<중> 대구 창작자들 딜레마, 직접 들어보니
다수의 대구 지역 예술인들은 단순히 창작 환경이 아닌, 창작을 지속 가능하게 할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다수의 대구 지역 예술인들은 단순히 창작 환경이 아닌, 창작을 '지속 가능하게 할'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대구는 오랜 시간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을 지켜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예산이 급격히 삭감되며 지역 문화계가 크게 흔들렸으나, 문화기관을 비롯한 예술인들은 탁월한 창작 역량으로 정부 예산을 확보하며 그 저력을 증명해내고 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만난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화려한 실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창작을 지탱할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탄식했다.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창작을 '지속 가능하게 할'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일회성' 지원에 '일회용' 신작…전문 홍보·기획 절실


대부분 지원 사업 신작 초연에만 몰려

창작 작품 유통·홍보 기획에 어려움

지역 예술인들이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대구 창작 생태계의 딜레마는 신작 초연에만 몰린 지원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해 진흥원의 명작산실공연지원작으로 선정돼 초연을 올린 지오뮤직의 창작 쇼뮤지컬 카니발 - 더 마스크 공연 모습. <지오뮤직 제공>

지역 예술인들이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대구 창작 생태계의 딜레마는 '신작 초연'에만 몰린 지원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해 진흥원의 '명작산실공연지원작'으로 선정돼 초연을 올린 지오뮤직의 창작 쇼뮤지컬 '카니발 - 더 마스크' 공연 모습. <지오뮤직 제공>

"지원을 받으려면 매년 '신작'을 내야 합니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다듬어 지속적인 레퍼토리로 만들고 싶어도, 새로 만들어진 작품의 재연을 지원받는 건 어렵죠."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대구 창작 생태계의 딜레마는 '신작 초연'에만 몰린 지원 정책이다. 대구 지역에서 12년째 활동 중인 박지수 극단 에테르의꿈 대표는 현장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느껴왔다.


이러한 '단발성 지원'의 한계는 유통의 부재로 이어진다. 10여 년 지역에서 활동 중인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는 기획 및 홍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 특성상 티켓 수익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 역시 지속 가능하고 성장하는 작품 지원에 초점을 두고 관련 사업을 운영하려 하지만, 실제 창작자들이 체감하는 지원의 실효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전했다.


지오뮤직은 지난해 진흥원의 '명작산실공연지원' 사업을 통해 작품을 무대를 올렸으나, 일정 및 대관 등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경험했다. 구 대표는 "진흥원의 대표격으로 가장 큰 규모의 지원사업임에도 단년 지원 형태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며 "초연은 리딩이나 쇼케이스 형태로 지원하고, 가능성 있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키워내는 단계적 성장이 반영된 지원 사업이 시행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대구보다 타 지역에서 더 인정받아요"


무용 분야, 젊은 무용가들 창작 힘들어

지역 축제 일회성 아닌 축적 기반 되길

장르 불문 지원금 규모 한계 지적

지역 현대무용단체 유나이티드핑거스 멤버로 활동 중인 청년 무용수 서정빈은 대구 출신 무용수들은 대구보다 타 지역에서 더 자주 활동하고 인정받는 추세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해 백양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유나이티드 핑거스(United Fingers)의  6Nights 공연 모습. <부산국제춤마켓 제공>

지역 현대무용단체 유나이티드핑거스 멤버로 활동 중인 청년 무용수 서정빈은 대구 출신 무용수들은 대구보다 타 지역에서 더 자주 활동하고 인정받는 추세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해 백양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유나이티드 핑거스(United Fingers)'의 '6Nights' 공연 모습. <부산국제춤마켓 제공>

무용 분야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역 현대무용단체 유나이티드핑거스 멤버로 활동 중인 청년 무용수 서정빈은 지역 무용계의 구조적 문제를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는 "학교나 기존 단체 중심의 구조가 자리잡은 지역 특성상,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무용가들이 창작을 지속하기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구 출신 무용수들은 대구보다 타 지역에서 더 자주 활동하고 인정받는 추세다. 그는 "지역 무용 축제 역시 작품이 일회성으로 소진되는 것이 아닌, 재발전되고 무용수 간 교류가 지속되는 하나의 창작 축적 기반으로 기능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수의 창작진들은 '지원금 규모의 한계'를 생태계 위협 요소로 꼽았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극장 대관료와 무대 기술 인건비 등 무대를 위한 기본금에서 소진된다는 것. 이에 제작자나 창작자들의 인건비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서 무용수는 "이로 인해 예술인들은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창작의 밀도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예술인들 사이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전문적인 홍보 및 기획 인력의 부재도 언급됐다. 관객 모객은 순수예술 분야의 오랜 숙제지만, 이를 창작자들이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이에 많은 예술인은 "기획 및 홍보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 예술인에겐 '도전의 땅', 중견들에게는 '사각지대'


타 지역 청년들에게 열려 있는 창작 공간

지역 중견 예술인 생존에는 취약한 환경

"다시 창작을 도전한다면 망설임 없이 대구에 문을 두드릴 거예요."


그럼에도 대구는 타 지역 청년 창작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도전의 장이다.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 노용원 배우 겸 작가는 딤프(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를 통해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제3회 DIMF 뮤지컬스타 수상 이후 뮤지컬아카데미 배우 과정까지 수료하면서 창작자로도 외연을 넓혔다.


그는 "서울은 진입 장벽이 높고 극장이 과밀화돼 기회조차 찾기 어렵지만, 대구는 창작자들 간의 연대가 끈끈해 경험을 쌓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특히 대구에서는 타 지역과는 달리 구·군 문화기관 또한 양질의 로컬 콘텐츠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새로운 창작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분위기가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


청년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 반면, 생태계의 허리를 지탱해야 할 중견 예술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였다. 10년 넘게 활동하며 이제 중견에 들어선 창작자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박지수 대표는 "예술인이 40대에 들어서면 선배 예술인들에겐 어린 사람, 후배들한테는 한참 선배 취급을 받는 애매한 위치"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중견 예술인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그는 예술가로서 자생의 한계를 느끼고 극단 사무실 이전 및 휴식기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공연 비수기인 1~3월에는 마땅한 수입이 없어 밤낮으로 배달서비스로 생계를 잇고 있다"며 "대구 연극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지만, 이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털어놨다.


◆무너지는 차세대 양성소…창작자들 태도 변화도 숙제


인재 키우는 지역 예술대학 소멸 위기

"팬데믹 이후 달라진 문화 소비 형태

지역 창작자들 태도 변화도 필요해"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대구음악창작소, 대구예술발전소 등 다양한 예술 공간들이 성과를 냈으나, 학교가 제 기능을 잃어가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사진은 대구 남구 대명공연거리에 위치한 대구음악창작소 모습. <사진=정수민기자>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대구음악창작소, 대구예술발전소 등 다양한 예술 공간들이 성과를 냈으나, 학교가 제 기능을 잃어가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사진은 대구 남구 대명공연거리에 위치한 대구음악창작소 모습. <사진=정수민기자>

"청년 유출 문제는 예술계도 빗겨가질 않습니다."


지역의 독립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이창원 <사>인디053 대표는 지역 예술대학의 소멸을 생태계의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꼽았다. 그는 "장르를 막론하고 대구 예술인들의 역량은 훌륭하지만, 이대로 예술 교육 현장이 무너지면 당장 10년 뒤 대구 창작의 대는 끊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신입생 충원율 저하에 따른 예술대학 학과의 통폐합이 이뤄지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는 2023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고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았다. 또한 세부 전공들을 하나의 학부로 통합하거나, 개별 학과를 학부 내 전공으로 편입시키는 등의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대명공연거리를 비롯해 대구음악창작소, 대구예술발전소 등 다양한 예술 공간들이 성과를 냈지만, 이처럼 훌륭한 예술인들을 길러내는 인재 양성소인 학교가 제 기능을 잃어가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시대 변화에 따른 창작자들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팬데믹 이후 문화 소비 형태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들의 생활 방식을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것. 그는 "창작자들도 변화하는 문화·예술 소비 시장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단순히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우리 도시에서 공연이 왜 필요한지 시민들을 설득하는 철학적 기조를 예술인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자 이미지

정수민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