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아트센터 자체 제작 뮤지컬 '월곡'은 임진왜란 당시 달서구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킨 월곡(月谷) 우배선 장군의 일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2021년 초연 이후 지속적인 디벨롭을 거쳐 매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2025 뮤지컬 '월곡' 공연 장면. <달서아트센터 제공>
"일회성 공연으로 끝나는 게 너무 허망합니다." "지원이 단발성에 그쳐 작품 디벨롭이 어려워요."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문화예술 포럼 현장에서 꾸준히 터져 나온 목소리들이다. 2022년 7월 민선 8기 출범 이후 대구시가 문화예술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지역 예술계를 크게 위축시켰다. 지난해 대구시의 지역 문화예술지원사업 예산은 18억4천100만 원으로 2023년(29억7천400만 원)에 비해 2년 만에 약 38%나 급감했다. 이에 공격적으로 문화예술 정책을 추진 중인 부산에 '문화도시' 주도권을 내어준 지 오래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대구 공연계는 지속 가능한 창작생태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자생 가능한 창작 역량'의 확보다. 영남일보는 대구 지역 창작 생태계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비수도권 공연시장 견인…남은 과제는 자생력
최근 3년간 공연시장 티켓판매 데이터(매년 3분기 기준) . <자료=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공연전산망 2025년 12월호>
'대구 공연시장의 최근 흐름과 전망'을 다룬 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2025년 12월호에 따르면, 대구의 공연시장은 표면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거의 회복된 상태다.
최근 3년간 같은 기간 공연예술 티켓 통계(2023~2025년 7월1일~9월30일 공연일자 기준)를 비교해 보면, 대구 지역의 공연건수와 회차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티켓 판매액은 2023년 약 179억 원에서 점차 줄어 2025년에는 35% 감소한 약 118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예산 삭감에 따른 지역 문화예술계의 위축이 불러온 결과로 분석된다.
2022~2024 지역별 공연 시장(수도권, 그 외 지역) 표. <자료=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공연전산망 11월호>
예산 삭감의 파고 속에서도 대구는 여전히 부산과 함께 비수도권 공연시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공연예술통합전산망 11월호 보고서에 따르면, 2022~2024년 대구는 부산과 함께 공연건수·공연회차·티켓판매수에서 비수도권 전체의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티켓 판매액 부문에서 대구는 단독으로 비수도권 시장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2022~2024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 공연 실적 표와 그래프. <자료=예술경영지원센터 월간공연전산망 11월호>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 것은 2022년 시작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이다. 서울에 편중된 공연예술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이 사업은 지역 예술단체의 참여 기회를 넓히며 지역 예술 생태계를 강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실제로 이 사업으로 지역 공연의 관객층이 늘고 수익 또한 급등했다. 2022~2024년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 공연 실적' 데이터에 따르면, 이 사업을 통한 공연회차와 티켓판매수가 모두 증가했으며 티켓판매액은 2022년 약 5천554억 원에서 지난해 약 3조2천769억 원으로 2년간 약 5.9배 늘었다. 특히 대구의 경우 티켓 판매액이 2022년 약 90.8억 원→2024년 약 2천233억 원으로 2년 새 무려 24배 가까이 폭등했다.
2025 뮤지컬 '월곡' 공연 장면. <달서아트센터 제공>
하지만 화려한 지표 이면에 뼈아픈 한계도 숨어 있다. 관객층과 수익이 늘었으나, 실상은 대부분 서울 및 수도권 제작 공연이 지역으로 전파되는 '수직적 하향 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유통 모델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공연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순회 공연이 아닌 '지역 창작 생태계 활성화'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 레퍼토리를 소비하는 '터미널' 역할에서 벗어나, 지역의 창작 작품이 늘어나고 대구만의 '자체 브랜드'를 갖춘 작품이 생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뮤지컬 '뚜들뚜들 선사시대' 는 2024년 초연 후 매 시즌 서사를 보완하며 독자적인 콘텐츠의 힘을 키우고 있다. <달서아트센터 제공>
◆지역 서사·협업…'대구産 창작' 다양한 시도
대구시립극단과 DIMF가 2024년 첫 공동 제작한 창작뮤지컬 '미싱링크'. 현재 본격적인 상업적 유통을 위한 수정 및 보완 과정에 있다.<대구시립예술단 제공>
대구는 민간을 제외하고도 공공 공연장만 1천석 이상의 대형공연장 6개, 중극장 6개를 보유하는 등 하드웨어적 인프라가 꽤나 견고하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에서는 지속 가능한 레퍼토리화를 위한 다양한 대구산(産) 창작품 만들기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제작 역량을 강화해온 달서아트센터는 지역 서사를 다룬 작품들을 레퍼토리화해 매년 선보이고 있다. 흔히 지역 작품은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창작물들은 대부분 일회성 공연으로 끝나지만, 달서아트센터는 두 작품을 지속적으로 디벨롭해 보여주고 있다.
세계 4대 오페라 '투란도트'를 재해석한 웰메이드 창작뮤지컬 '투란도트'는 2011년 초연 후 유럽 6개국에 수출된 수작이다. <DIMF 제공>
임진왜란 당시 달서구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킨 월곡(月谷) 우배선 장군이라는 지역적 서사를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월곡'이 그 중 하나다. 지역 창작진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2021년 초연 후 매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내년에는 무대 세트를 추가로 제작하는 등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달서구의 선사유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넌버벌 퍼포먼스 '뚜들뚜들 선사시대' 역시 2024년 초연 후 매 시즌 서사를 보완하며 독자적인 콘텐츠의 힘을 키우고 있다.
제12회 DIMF 뮤지컬 '투란도트' 공연 장면. <DIMF 제공>
지역에서 벗어난 서사를 다룬 창작 사례도 있다. 대구시립극단과 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딤프)가 2024년 첫 공동 제작한 창작뮤지컬 '미싱링크'가 대표작이다. 1912년 영국 가짜 화석 발견으로 불거진 실화 '필트다운 인(人)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로, 국내외 유통을 염두에 두고 기획·제작됐다.
국내 우수 창작진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제18회 DIMF에서 3관왕을 거머쥐며 호평을 받았고, '대구산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현재는 본격적인 상업 유통을 위한 수정 및 보완 작업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협업 모델은 지난해 대구문화예술회관이 합류해 제작한 '설공찬'으로 이어졌으며, 올해 역시 그 노력을 이어간다. 오는 7월 대구시립극단의 정기공연인 대극장 창작뮤지컬 '피아노의 숲'을 선보이는 데 이어 12월에 무대에 올릴 신작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동유럽 라이선스 버전 뮤지컬 '투란도트' 공연 장면. <DIMF 제공>
창작 지원 및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도 자체 제작으로 남다른 저력을 과시했다. 세계 4대 오페라 '투란도트'를 재해석한 웰메이드 창작뮤지컬 '투란도트'는 2011년 초연 후 유럽 6개국에 수출된 수작이다. 2020년에는 슬로바키아에서 라이선스 버전으로 공연되며 국내 최초의 동유럽권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바 있다. 딤프가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LED 기반의 업그레이드된 무대 기술을 도입해 한층 수준 높아진 대형 뮤지컬 '투란도트'로 관객들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최종 목적은 레퍼토리화…서사화 작업 병행돼야"
대구 동구에 있는 '대구글로벌웹툰센터' 예정지. <영남일보 DB>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문화예술 생태계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 창작 시스템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지역 인프라와 결합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콘텐츠 재창출과 산업화 과정까지 고려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3월 개최되는 예술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턴(SXSW)'은 벤치마킹하기 좋은 사례다. 작은 음악 축제에 불과했던 SXSW는 음악·영화·전시 등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융·복합 축제로 거듭났다. 이는 단순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유통·발표·학습의 장을 확대하고 창작 생태계를 핵심 정책 의제로 설정해 적극 지원한 결과다.
결국 자체 제작 콘텐츠의 최종 목적지는 지속 가능한 '레퍼토리화'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체 제작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며 "작품이 단편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서사화(스토리텔링)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순간의 예술인 공연 특성상 콘텐츠를 널리 알리기 어려운 만큼 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서사화 작업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대구의 강점인 웹툰과의 협업을 제안했다. 오 위원은 "대구글로벌웹툰센터 조성이 예정된 만큼 이와 연계하거나, 숏폼과 같은 미디어 형태로 스토리텔링을 거친다면 공연 콘텐츠가 가진 한계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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