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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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2   |  발행일 2018-10-02 제30면   |  수정 2018-10-02
꽃길처럼 좋은 요즘날씨엔
뚜벅뚜벅 걸으며 꽃을 보자
팝콘같은, 별을 닮은 모습들
사람보다 아름다운게 진리
대동강까지 걷기 코스 기대
[3040칼럼]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이재은 시인

나들이를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매일매일 맑은 하늘을 보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이곳이 우리나라가 맞는가 싶게 이국적이다. 푸른 바다 위에 정박해 있는 하얀 배가 머리 위에, 하늘에도 있다. 폭염과 폭풍이 사라져가니 이제부터 꽃길이다. 가을 천변에는 강물이 넘실거리고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닌다. 다시 돌아온 계절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에게 운동으로 하는 여가생활은 무척 다양할 것이다. 길에서 하는 운동을 나열하자면 자전거 타는 사람, 마라톤하는 사람, 골프나 등산을 하는 사람, 무엇보다 특별한 시간과 훈련을 거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 중의 하나는 걷기일 것이다.

자동차와 대중교통의 편리함에 의존하며 살기를 수십 년. 가까운 거리도 걷기가 싫어 택시를 타기도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는 우두커니 누워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이 유일한 여가생활이었다. 내게 세상의 모든 길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내가 걷기를 시작한 것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걷기를 하고 보니 세상에는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사람만 공존했다. 걷지 않는 우울한 사람의 문을 똑똑 두드리며 어서 나오라고 권하고 싶다. 시간과 공간과 비용마저 자유로운 걷기를 통해 삶의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아직은 동네 공원이나 천변을 걷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 작은 시작으로 인해 걸으면서 보게 되는 자연과 자신은 소중한 발견이자 선물이었다. 전설적인 사이클 경주 선수 옌스 포이크트는 “다리가 아플 때는 큰 소리로 외쳐라. ‘닥쳐, 다리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걷기가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여가생활 문화도 변화를 거듭한다. 최근 전국적으로 등산보다 걷기가 유행이다. 걷기가 국민체조보다 더 국민운동이 되어가는 것 같다. 둘레길, 올레길 같은 걷기 좋은 길이 많이 생겨나는 것도 원인일 것이다. 어느 지인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이라는 해파랑 길을 걷기 위해 동해로 내려갔다. 해파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770㎞의 트레일 거리다. 한 달 후, 큰바위는 콩알만하게 작아졌을 것이다. 글을 쓰는 고통의 뒤에는 체질적 우울도 뒤따른다. 약으로 고칠 수도 있지만 제일 좋은 치유는 운동 치유이고 두 다리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기도 한 이 가을을 그냥 우두커니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가을만이라도 ‘자동차여 안녕’을 고하자. 밖으로 나가 두 다리를 이용해 걸어가면 어디를 가도 가을 들꽃이 한창이다. 갈대를 연상하는 수크령은 벼가 여물 때를 알려주어 가을의 전령사라고도 한다.

팝콘 같은 하얀 메밀꽃을 보면 어둡던 마음은 밝아질 것이다. 노란 달맞이꽃은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연보라색 도라지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화해’라는 꽃말을 지닌 개망초, 수채화 같은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약재로 더 유명한 보랏빛 맥문동과 ‘성실과 정조’라는 꽃말을 가진 가을꽃의 대명사 국화까지 아름답고 잔잔한 가을 들꽃을 마주칠 수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은 명백한 진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요즘은 걸으면서 즐겁고 설레는 상상을 한다. 언젠가는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강을 따라 걷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걷기 코스가 만들어질 것 같다. 백두산 천지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를 문재인 대통령은 거뜬히 걸었다. 리설주 여사로부터 ‘얄미우시다’는 조크를 받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많이 걷는 사람은 어디를 가서도 건강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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