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수성못 라이브클럽 ‘더 뷰’ 허진

  • 이춘호
  • |
  • 입력 2019-05-03   |  발행일 2019-05-03 제41면   |  수정 2019-05-03
수성못 베스트 뷰 포인트의 밥상, 술상사이 ‘라이브공연’
대학교 운동권 놀이패 활동 지명수배
생계가 압박하는 냉엄한 현실속 취업
직장생활 한계…濠·캐나다 거점 옮겨
20190503
수성못에서 가장 뷰가 좋다는 소문이 난 뮤직 레스토랑 ‘더 뷰’. 중국풍을 가미한 해물치즈파스타는 특유의 불맛 때문에 특히 ‘짬뽕족’에게 인기가 좋다. 여기 맥주는 제주 에일, 프랑스 블랑, 미국 빅 웨이브 등 모두 15종이다.
20190503
한때 대학교 운동권 놀이패 활동을 하다가 지명수배 된 허진 사장. 훗날 호주와 캐나다 현지에서 남다른 영어감각을 쌓아 국내 첫 기술영어번역원을 차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을 잃었고 거기서 벗어나 음악적 감성을 키우기 위해 수성못 옆에 기막힌 전망을 앞세운 라이브뮤직레스토랑 ‘더 뷰’를 오픈했다.

날로 표정이 수려해져가고 있는 수성못 호반. 어디에서 봐도 멋진 풍광이지만 그래도 ‘베스트 뷰 포인트’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렵게 찾아난 풍광 짱인 라이브클럽 같은 레스토랑 이 ‘더 뷰(The view)’다. 수성못 동쪽 2번 버스킹 존 맞은편 빌딩 3층에 자릴 잡고 있다. 낮에 거길 방문했을 때 통유리창 하단부에 걸린 가로수의 정수리 부분이 푸릇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맨 왼쪽은 수성관광호텔을 감싸안고 있는 법이산, 가운데는 수성못과 오리섬, 오른편 멀리 아파트촌 동일하이빌과 들안길 구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이 수채화 같다면 밤의 풍광은 추상화 같다. 사업 콘셉트는 낮엔 ‘밥상’, 밤엔 ‘술상’. 밥상과 술상 사이에 라이브공연이 걸려 있다.

두 장의 브로마이드 사진이 시선을 잡는다. 쿠바 혁명의 영웅인 체 게바라가 시가를 들고 있는 모습, 그리고 쿠바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현수막 사진으로 걸려 있다. 두 사진 사이에 무대가 있다. 정면 벽에 ‘뷰 라이브(The view live)’란 네온사인이 부착돼 있다. 드럼과 기타, 그리고 키보드…. 주인 허진씨는 매일 밤 9시, 10시, 이렇게 두 차례 통기타 연주를 한다. 연주가 없을 때는 음식에 올인한다. 여기선 음악과 음식이 조화롭게 묶여 돌아간다. 주말에는 소울 보이스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사필성의 무대가 이어진다.

최근 뷰가 좋다는 소문이 났다. KBS1 연예오락프로인 ‘이웃집찰스’ 제작진도 여길 촬영하고 갔다. 오는 14일 그 내용이 방영된다.

대학교 운동권 놀이패 활동 지명수배
생계가 압박하는 냉엄한 현실속 취업
직장생활 한계…濠·캐나다 거점 옮겨

남다른 영어 실력 기술번역회사 올인
일중독에 보낸 세월 몸도 마음도 피폐
다시 통기타 들고 음악적 감수성 깨워
꿈 향한 예술가들 공간 수성못 버스킹

세계요리·식품공학·김치 본질 공부
멕시코 정통고기요리 ‘까르니타스’
美 남부 스타일 다리살프라이드치킨
중국풍 해물볶음 우동 등 13가지 메뉴
평일 포크·주말 재즈스타일 무대 마련


◆청년기는 운동권이었다

허진 사장은 영주시에서 태어났다. 건축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경주로 이사를 갔다. 처음엔 화가의 꿈을 키운다. 아버지의 사업이 나빠져 등록금 때문에 기술을 배워 사회로 빨리 나가기 위해 직업훈련원에 들어간다.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뒤 금오공대 기계공학과에 들어간다.

학생운동이 교정을 휩쓸던 시절이었다. 화가의 꿈은 금오공대 노래패 ‘노래사랑’ 때문에 음악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 전국의 대학은 대중가요와 팝송 대신 민중가요를 앞세운 노래패의 아우라에 휘둘린다. 1970년대만 해도 이렇다 할 만한 민중가요가 없었다. 고작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늙은 군인의 노래’, 서유석의 ‘타박네’ ‘○○○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같은 단순한 멜로디의 ‘훌라송’ 등이 시위현장의 단골 데모가였다. 80년대를 화려하게 문을 연 ‘임을 위한 행진곡’, 87년 등장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민중가요를 대중가요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김민기와 김광석, 안치환, 정태춘, 박은옥 정도의 노래가 아니면 부르지 않았다.

리더 유전자가 다분해 총학생회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보수적이던 아버지가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4학년부터 그는 정상적인 대학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운동권 수배자가 된다. 경주로 피신을 했다. 그 와중에 대형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3년간 치료를 해야만 했다.

◆운동권에서 현실 속으로

운동권이 준 환상은 어느 날 냉엄한 현실로 바뀌었다. 운동보다 생계가 그를 더 강하게 압박을 한다. 94년, 세상은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에 힙합과 브레이크댄스, 그리고 이념보다 이해득실에 목을 매는 강남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신세대가 청년문화를 들쑤셔놓는다. 김영삼 정권이라서 운동권이 지하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쟁쟁한 운동권이 제도권으로 대거 몰려간다.

서울의 한 식품회사에 들어간다. 국내에선 소포장 반찬 유통으로 크게 성공한 회사다. 3개월 영업사원이 된다. 그는 그때 회사의 경영상태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겹치는 동선, 비효율적 자재관리. 그는 그걸 합리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게 새로운 재고관리기법을 제안했다. 사장은 당장 그를 공장장으로 발령을 낸다. 그때 양념게장 등 100종 이상의 사이드메뉴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냉동저장식품에 대한 안목도 함께 지닐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낸다. 그의 유전자는 일상 반복적인 회사생활에 맞지 않았다. 국내의 가치를 알기 위해 사표를 내고 해외로 나가기로 맘을 먹는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였다. 운동권 시절에는 미국을 경멸했기에 영어도 멀리했다. 하지만 운동권을 벗어나자 영어가 달리 보였다. 소중한 세계어였다.

호주 시드니 린 필드로 무작정 학생비자만 들고 간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제약회사 로슈, 레스토랑 등 5군데의 직장을 돌아다녔다. 그는 호주로 온 한국인에겐 ‘린 필드의 이장’으로 불렸다. 숙박, 식사, 취업 관련 정보를 양심적으로 챙겨줬기 때문이다. 감자탕, 육개장 등도 끓여줬다. 그런 배려심은 운동권에서 익힌 심성이 베이스가 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에 귀국하자 그의 영어실력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졸지에 영어강사가 된다. 그런 어느 날 린 필드에서 만난 이창열이란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보다 더 진화된 취업프로그램인 ‘우프(WWOOF)’를 한국에 처음 알린 사람이다.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캐나다 우프 현지 코디네이터 제안을 받는다. 우프는 유기농장에서 일을 하고 대신 숙식을 제공받도록 도움을 주는, 해외에 처음 나온 가난한 유학생 등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괜찮겠다 싶어 호주에서 캐나다로 생활 거점을 옮긴다. 2년 정도 머물면서 밴쿠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커뮤니케이션’까지 전공한다.

◆기술번역가로 변신

인간관계에 대한 경영학적 노하우, 그리고 남다른 영어실력을 갖고 귀국한다. 김천에 있는 대성기계공업 해외영업이사가 된다. 일반영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하고 어려운 기술영어의 신지평을 연다. 사흘이 멀다하고 해외로 출장을 갔다. 기계, 전자, 반도체, 선박 등에 관련된 전문용어를 모르면 제대로 된 계약이 성사될 수 없다. 일반 통역사가 힘든 번역은 그의 몫이 된다.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는 2001년 국내 첫 기술번역소랄 수 있는 ‘구미기술번역’이란 회사를 차린다. 2014년 서울로 확장되면서 회사 상호를 ‘한국기술번역’으로 바꾼다. 번역이란 피를 말리는 일이다. 낮에는 회사 일, 밤에는 산더미처럼 밀린 번역 에 올인했다. 툭하면 밤샘이었다. 극도의 피로는 커피와 담배로 막아냈다. 일중독이었다. 어느 날 심각한 심장병 판정을 받는다. 20여년 자기 몸을 보살피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병마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몸이 지나온 시절을 찬찬히 훑어봤다. 음악도 운동도 모두 바닥이 나 있었다. 운동화 끈을 매고 틈틈이 걷고 뛰었다. 그리고 피폐해진 맘을 위해 예전에 내버렸던 음악적 감수성을 깨웠다. 통기타를 다시 쳤다. 2016년 서성교, 김원기 등과 손을 잡고 두드림 음악 예술단을 중심으로 포크 트리오 활동을 했다. 거리공연도 자주 다녔다. 우연히 수성못으로 버스킹을 나왔다가 현재 장소를 찜하게 된다. 그는 이 공간이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다양한 공연 예술가를 위한 나눔의 공간이라 여긴다. 버스커들을 위해 늘 자기 화장실을 내민다. 연습할 공간이 없는 이들에게 리허설 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커피 한 잔 정도는 공짜.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면 함께 잼 공연도 해본다.

◆더 뷰의 세계음식

이 집의 메뉴라인은 정말 다국적이다. 세계음식 전문 식당 같다. 그가 이렇게 여러 나라의 음식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건 우프 캐나다 시절 다양한 외국인과 교유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식품회사 때 배운 식품공학의 기본기도 도움이 됐다. 한때는 김치박물관을 통해 김치의 본질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가장 전면에 나오는 메뉴는 멕시코 정통고기요리인 ‘까르니타스(Carnitas)’. 이밖에 파스타, 인도식 펀잡 카레, 멕시코식 타코 소스를 이용한 미국 남부 스타일의 다리살 프라이드치킨, 김치베이컨필라페, 생연어와다덮밥, 노부상스키야키, 중국풍의 해물볶음우동 등 13가지 세계메뉴를 론칭했다.

tvN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된 까르니타스. 밀쌈전병과 샌드위치, 그리고 햄버거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대구 사람의 입맛을 고려해 토마토소스를 더 진하게 넣는다.

요즘 파스타 마니아에게 인기가 좋은 건 중식용 프라이팬으로 패닝해서 불맛이 잘 들어간 ‘해물크림파스타’. 크림소스는 먹을수록 느끼하기 때문에 그걸 완화시켜주기 위해 중식용 식기 ‘웍’을 사용한다. ‘노부상스키야키’는 호주 때 사귄 친구 노부상이 해주던 일식인데 그걸 이 집 메뉴로 변주한 것이다. 맥주는 2종의 ‘제주 에일’, 프랑스 생맥주 ‘블랑’, 미국 에일 ‘빅 웨이브’ 등 15종이 있다.

음악은 평일은 포크, 주말은 재즈 스타일로 간다. 그의 꿈은 트로트와 재즈가 공존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란다. 수성구 수성못길 24. (053)768-771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