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보고싶다 노무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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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2   |  발행일 2019-05-22 제30면   |  수정 2019-05-22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적폐청산은 여전히 진행형
반목·갈등 청산할 기회 없이
보수·진보간 갈등만 되풀이
One Korea는 요원할 뿐
[동대구로에서] 보고싶다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은 쓰기 싫다. 어머니와 동년배이지만 1987년 6월 부산역 앞 시위현장서 스쳐 지나간 인연 때문인지 지금도 ‘큰형’ 같다.”

첫 딸이 다니던 유치원의 바자회가 열린 2009년 5월의 어느 토요일 오전, 갑자기 날아든 비보는 내 귀를 의심케 했다. 뉴스속보를 듣자마자 친구들에게 확인전화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한 마디로 멍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캔맥주 하나를 단숨에 들이켠 후에야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믿기지도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다. 어느새 유치원생이던 첫 딸도 중3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아직도 당시 상황은 진행형인 듯하다. ‘적폐청산’ ‘검찰개혁’ 그리고 ‘5·18 논쟁’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통령이기 때문일까.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의 말이 떠오른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심판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과 측근에 대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를 수밖에 없어, 대한민국은 적어도 20년 이상 보수와 진보가 서로가 서로에게 ‘적폐’라며 정권 창출에 목숨을 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간담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옹호 세력과는 함께 가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는 적폐수사 그만하고 좀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 그런 말씀도 많이 듣는다.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힌 문 대통령은 아직도 적폐청산이 진행형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과 선거제 개편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밀어붙인 여당과 문재인정부에 대해 오히려 ‘독재’ 또는 ‘적폐’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KBS와의 방송 대담에서 ‘적반하장’이라며 국정농단, 사법농단 세력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다.

적폐는 반드시 청산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하지만 국정의 모든 역량을 과거 정부의 적폐 청산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리한 적폐 청산은 또 다른 적폐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방송 출연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자주 볼 수 없었던 김제동·문성근·명계남씨 등이 전면에 나선 모습이다. 방송 프로그램 출연진조차 정권과 직결되는 세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스포츠 스타도 마찬가지다. 김연아 선수와 손연재 선수를 보면서 우린 이미 학습을 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방송인 유재석씨는 어떤 정부 행사 초청도 정중하게 거절한다고 한다.

지금의 진보 진영이 영원히 정권을 잡지 못하는 이상, 진보·보수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적폐 평가’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서로에 대한 반목과 갈등을 청산할 기회는 정녕 없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대한민국은 반목과 갈등의 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친구 문재인 대통령에게 과연 어떤 조언을 해 주었을까.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러 봉하마을을 찾을까 한다.

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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