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의 공감대 3개 로드, 이 거리 실버들의 애환·즐거움 읊은 詩와 노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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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2   |  발행일 2019-07-12 제34면   |  수정 2019-07-12
■ ‘북향로드’를 걷다(하) 향촌동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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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둘째 화요일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과 김수상·이향 시인(왼쪽부터)은 대구 중구 향촌동 골목의 카페 ‘고’ 2층에 모여 대구문학 100년을 생각하는 향촌문학살롱 토크쇼를 벌인다. 남쪽 통유리창 밖으로 경상감영공원 실버들의 일상이 훤히 보인다.

3~4층을 관통한 12마디의 죽순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같았다. 거기에 한국문학 여명기를 밝힌 지역의 주요 문인과 문예지 등을 각인시켜 놓았다. 과거와 미래의 대구문학을 관통하는 듯한 역동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에게 이 조형물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이 문학관의 상징물이 된 죽순은 광복 후 우리나라 최초의 시(詩) 전문지였다. 1946년 5월1일 창간된 ‘죽순’은 3년2개월간 시인 60여명의 작품 235편을 싣는다. 특히 이윤수, 김소운 등 죽순 관계자들은 1948년 국내 첫 시비인 이상화 시비를 대구 달성공원에 세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거화를 찾습니다’란 기획전시도 오는 8월18일까지 열린다. 지역의 젊은 작가들에겐 생소한 단어인 ‘거화(炬火·횃불)’, 나도 그 의미를 이번 취재 때 새로 챙겨볼 수 있었다. 그건 1917년 대구고보(경북고 전신) 재학 중인 백기만 시인(대구시민의 노래 작사자)과 민족시인 이상화, 그리고 손기정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 사진 수록 때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역임한 소설가 현진건, 이상화의 동생으로 국내 첫 IOC 위원이며 훗날 서울대 사회학과를 만든 사학자 이상백이 함께 펴낸 ‘항일적 프린트판 동인지’였다. 이 동인지는 대다수 국민이 문학이 뭔지 모르던 시절에 태동한 것이라 더 귀할 수밖에 없다. 채 스물도 안된 거화의 주인공들은 3·1운동 이전에 저항의 불씨를 피워 물었다. 22세에 문예지 ‘금성’을 통해 발표한 백기만의 ‘거화’란 시의 한 구절에 밑줄을 그어 주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짓밟고 걸어나가자/ 우리의 가슴에 타오르는 화톳불과도 같은/ 생명 짧은 불꽃이 영겁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문구는 4·19의 도화선이 된 대구 2·28학생의거에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문학관 측은 원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또한 거화 전시실에 오면 거화의 주인공들이 20세기초 국내 정상급 문인·지식인·명사들과 어떤 식의 관계망을 엮고 있는지를 족보처럼 그려 놓았다. 20세기초 지역 문인과 지식인들의 저항성의 족보를 알아볼 수 있는 근·현대기 100여명의 유명 문화예술인의 교류도였다.

광복후 지역서 만든 국내 첫 詩 전문지
대구문학관 ‘죽순탑’ 문인·문예지 각인
1900∼40년대 대구근대문학의 태동길
영남일보 옛 사옥터도 만나는 교류길
화가 이중섭 머물렀던 경복여관 공감길

국내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 ‘녹향’
SP음반 500여장이 내는 해저무는 소리

이하석시인의 향촌동 랩소디‘골목들’
2천원짜리 잔치국수·대폿집·다방…
골목 드리워진 스토리 詩想으로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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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문을 열어 아직도 음악을 틀어주고 있는 대구문학관 지하 ‘녹향 음악감상실’. 이창수 초대 사장의 셋째 아들 정춘씨가 실버를 위한 인기 DJ로 가업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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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 동쪽 초입에 있는 ‘대구문학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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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온 일본인들의 문화관광안내소 구실을 하는 ‘대구하루’가 공유하고 있는 여러 저작물. 대구 근대사 자료 및 일본책 등 6천500여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대구문학로드 이야기

대구문학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 공간은 문인들의 공간이 아니다. 시민과 문인이 함께 밀고가는 문학관이다.” 이런 공감대 형성을 위해 ‘대구문학로드’를 만들었다. 모두 3개 코스가 있다. 1900~40년대 대구근대문학의 태동을 체험하는 ‘태동길’, 1920~60년대 전쟁기 문학과 예술의 교류 현장을 가보는 ‘교류길’, 1930~80년대 대구문학 공감대 형성과 확산을 다루는 ‘공감길’이 있다.

태동길을 걸으면 전매청 별관 창고였던 대구예술발전소, 이설주·신동집·이인성 등 근대 문인 및 예술가들이 많이 졸업한 수창초등, 이상화 시인이 숨진 그의 고택,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된 소설가 김원일이 54년 여름 1년쯤 살았던 중구 장관동의 한옥 등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3월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은 ‘문학체험관’으로 개관됐다.

교류길을 걸으면 풍류 가득했던 50년대 향토시인들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했던 추억의 다방을 만날 수 있다. 꽃자리다방, 청포도다방, 백조다방, 모나미다방, 백록다방, 호수다방…. 또한 죽순의 산파역이었던 이윤수 시인이 경영한 명금방 시계방, 영남일보 옛 사옥터 등을 만날 수 있다.

공감길에서는 화가 이중섭과 소설가 최태응이 머물렀던 경복여관, 후배들이 백기만 시인에게 대구시민문화상을 수여하고 음악가 권태호가 메기의 추억을 불렀던 동성로 은다방, 화가 이은성이 경영했던 아루스 다방터 등을 둘러본다.

홈페이지(www.modl.or.kr)를 통해 신청하면 되고, 최소 5~15명 단위로 끊어 해설사가 가이드를 하게 된다. 코스별 평균 소요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또한 지역 연극인들이 꾸며가는 ‘낭독공연’도 새로운 낭송문화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김동리의 ‘귀환장정’, 곧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반응이 좋아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올가을에는 20세기 초를 주름잡은 47인의 작고문인 캐리커처전도 열린다.

이 건물 지하엔 문학관과 상응하는 공간이 있다. 누군 그 공간에서 울리는 음악소리가 바로 지금 젊은 세대는 결코 알 수 없는 세월의 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 ‘녹향’. 1946년 오픈한 이래 녹향은 숱한 폐업의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 녹향은 임차 공간을 10번 이상 전전해야만 했다. 1986년 화전동 대구극장 맞은편으로 옮겨와 2014년 6월까지 버텼다. 2011년 초대 사장 이창수옹이 작고했다. 그 여름에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녹향 살리기 운동’을 벌인다. 시민들의 맘도 보태진다. 이에 감동한 이옹의 셋째 아들인 이정춘씨가 아버지의 손때와 애정이 묻어 있는 음향기기와 음반을 기증할 뜻을 밝혔다. 그런 연유를 안고 녹향이 대구문학관 지하에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그 시절로 갈 수는 없지만 치직거리는 SP음반 500여장이 전하는, 그 해 저무는 소리를 통해 우린 잠시 지난 시절 단골들의 심정에 가닿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입장료는 1천원. 1천원으로 듣는 가장 웅숭깊은 사운드가 아닐까 싶다. 매일 뮤직박스로 출근하는 이정춘 대표가 기자에게 손을 흔든다. 실버를 위한 DJ는 매일 이곳에 앉을 수 있는 게 더 없이 행복하단다.

◆이하석의 향촌동 랩소디

지난해 초대 관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이하석 시인.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그는 한국 산하가 토해내는 금속성 신음을 첫 시집 ‘투명한 속’으로 잘 포착해 문단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에는 이념 갈등 때문에 학살된 무고한 망혼을 위한 시집 ‘천둥의 뿌리’를 냈다. 대구문학관에 오면서 그는 ‘향촌동의 강태공’처럼 시상의 촉수를 낚싯바늘처럼 이 골목 저 골목에 드리워놓고 있다. 성인텍을 들락거리는 실버들, 그리고 한 그릇 2천원짜리 잔치국수에 깃든 서민의 애환, 한 시절 잘 나갔지만 지금은 경상감영공원을 지키는 실버들의 시선, 잠시 반짝했다가 사라진 264작은문학관, 화가 이중섭, 그리고 자신이 대학시절 스쳐지나갔던 대폿집, 지금은 사라진 르네상스 음악감상실, 여기에 빛바랜 식당과 카페, 다방들…. 그는 관찰자가 돼 현미경처럼 그 내밀한 느낌을 메모해 나갔다. 이 거리 실버만이 가진 우수와 즐거움, 이 골목에서만 유통되는 음화(陰畵) 같은 실버들의 러브스토리까지 시상으로 포착해 나갔다. 모두 20수로 된 연작시 ‘향촌동 랩소디’의 첫 수 ‘골목들’은 그렇게 해서 완성된다.

‘뜯어내는 집이 황혼 같네/ 기둥과 대들보의 근육들이/ 뒤틀렸다네 추억처럼/ 돌이킬 수 없어 보이네// 전쟁 통에 밀려와 쓸리던/ 화가와 시인들이 떠난 다방도/ 엇나간 풍경으로 기울다가/ 리모델링 되어 카페들로 거듭나네/ 거기 무슨 색과 말들이 더 남았을까/ 나는 기웃거리며 뒤적이며/ 무너진 추억의 퍼즐조각들을 줍게 될까/ 바랜 향촌동 골목들이여/ 오래 속 끓이고 전전긍긍하던/ 우리 추억의 실핏줄들이여/ 황혼같이, 리모델링을 거듭하여 되새기는/ 이상한 것들의 껍질들이여/ 추억만 덕지덕지한 근대의 현대여.’

시 전문지 ‘시와 반시’ 여름호에 발표된 향촌동 랩소디는 조만간 시집으로 묶일 예정이다. 그는 연작시 말미에 ‘이 낡은 향촌동 골목들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돌아보게 만드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 향촌동 랩소디는 그런 기웃거림으로 메모한 시 들’이라고 했다.

나는 이 문학관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공간쪽으로 다가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앙증맞은 크기의 오픈 서가쪽으로 갔다. 북쪽 도심지가 통유리창을 통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좌석에 앉아 잠시 팔공산 쪽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비가 조금 내렸으면 싶었다. 그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란 구절이 있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가 이 자리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필편지가 사라져 버린 이 시절, 누군가는 누구가의 편지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런 편지를 쓸 수 있게 우체통을 비치해 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알고 매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내려 출근하듯 이 자리로 오는 열람객이 늘고 있다. 최근 정년퇴직한 분이 있다면 이 자리에 한 번 앉아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평소 바빠서 정독하기 힘들었던 대문호의 장편소설류, 시문학에 관심있는 자는 대시인의 시집을 정독해 보라. 자기 삶의 궤적이 점점 더 또렷해질 것이다. 좀 무료해지면 지하 1층 녹향음악감상실에 가서 대(大) 음악가들의 교향곡을 고개를 지그시 뒤로 젖힌 채 감상해도 좋을 듯 싶다. 점심 때 뭘 먹을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초저가 국밥과 국수 등 실비스타일의 식당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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