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약령시 상징 ‘한약재도매시장’ 37년 만에 문 닫나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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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4  |  수정 2019-09-24 07:22  |  발행일 2019-09-2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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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 경매장에 다양한 한약재들이 비치돼 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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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약재도매시장의 영업 중단 방침으로 약령시 존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영남일보 DB>

<주>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이 만성 적자 탓에 운영을 포기하고 법인을 청산키로 했다. 대구시는 공모를 통해 새로운 운영 법인을 찾을 방침이지만, 한약도매시장의 역할이 위축될 것으로 보여 대구약령시의 이미지 퇴색이 우려된다.

23일 대구한약재도매시장에 따르면 오는 26일 오후 임시총회를 열어 주주들을 대상으로 폐업 안건에 구두 합의하는 절차를 갖고, 내년 2월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폐업을 확정할 계획이다. 주주들이 폐업에 공감하는 분위기라는 게 한약재도매시장측의 설명이다.

정부가 유일 인증 한약재공판장
약재 150여종 경매로 시세 결정
유통구조 변화 겪으며 만성적자
운영법인 26일 주총서 폐업절차

영업 중단땐 약령시 이미지 퇴색
소매업 점포들 고사 위기 우려도
市 “새로운 운영주체 공모 예정”


폐업 사유는 거래금액 및 거래물량의 급감 탓이다. 한약재도매시장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35억400만원이던 거래금액은 지난해 17억8천100만원으로 반토막났다. 거래물량도 2008년 409t에서 지난해 114t으로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은 1억8천800만원에 그쳐 판매관리비 등을 감안하면 3천100만원 적자다.

한약 대체재가 늘어난 데다, 도매상의 역할이 줄어든 한약재 유통구조 변화가 매출 감소의 주요 이유다. 예전에는 도매시장에서 약업사가 구매한 뒤 포장해 한의원에 공급했지만, 지금은 대형업체가 산지농민과 직거래하는 형태로 유통구조가 바뀌었다.

이철로 대구시한약재도매시장 이사장은 “매년 4천만~5천만원 적자가 발생해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 대구시가 위탁 수수료 지원을 확대하지 않는 데다, 수입원이었던 공영주차장 운영도 올 연말 끝난다”면서 “법적인 폐업절차는 내년에 마무리되겠지만 영업은 올 연말까지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한약재도매시장은 1982년 7월 대구 중구 태평로 3가에 개장했으며, 같은해 9월 주식을 공모해 주주 77명으로 출범했다. 1992년 12월 약전골목내에 현 건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구시는 도매시장 운영법인을 5년 단위로 지정해 왔다. 올해 말이면 현 법인의 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이동건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은 “현 운영법인의 영업적자가 지속돼 운영을 포기했다. 기존 도매 거래 관련 제도를 일부 개정해 새로운 운영주체를 공모할 예정”이라면서 “기존 운영법인도 재결성을 통해 공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운영주체가 바뀌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려되는 문제점이 적잖다.

기존 운영법인이 손을 떼면서 경매 기능이 없어지면 이곳 경매가를 기준해 한약재를 판매하는 약초재배 농민들의 피해가 불보듯 뻔하다. 중간 수집상들의 농간에 제값을 못 받을 공산이 크다.

약령시 자체가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약령시 인근에 들어선 이후, 이 일대 점포의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임대로 있던 한약방, 약업사 등이 이곳을 떠났다. 이들이 떠난 점포엔 커피점이나 음식점이 들어서 약령시 이미지가 이미 많이 퇴색돼 있다.

그런 상태에서 한약재도매시장조차 흔들리면 약령시의 이미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한약재도매시장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한약재 150여 종을 경매를 통해 유통하는 곳으로, 정부가 인증한 전국 유일의 한약재 공판장이다. 한약재 유통뿐 아니라 시세를 결정하는 역할도 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게다가 한약재도매시장 운영주체 변경 등으로 국내산 한약재를 위주로 한 경매시장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 소매업을 하는 약령시 관련 점포 전체가 고사 직전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양대석 약령시 보존위원장은 “약령시 역사가 자그마치 361년이다. 한약재 시장이 사양산업이고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대구시가 이를 방치한다면 조만간 약령시 전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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