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말 한마디의 힘

  • 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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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9   |  발행일 2019-12-09 제18면   |  수정 2019-12-09
“작은 친절 베풀어‘큰 신뢰’얻는 지혜 가져야”
거절하는 태도에 따라 기분 달라져
딱딱한 말투와 찡그리는 표정보다는
상대방 배려해 말하는 습관 길러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말 한마디의 힘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신랑의 생일날이었다. 아침 식사를 겸해서 집에서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소 먼 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케이크를 미리 사뒀는데 초를 챙겨오지 못한 거였다. 생일의 하이라이트가 촛불 끄기인데 난감했다. 머리를 굴리다 집 앞에 있는 빵집이 떠올랐다. 새벽부터 케이크를 사지도 않고 초를 부탁하기가 미안했다. 빵집에 있는 빵을 서너 개 구입하면서 초를 얻기로 마음먹었다.

“죄송한데요, 케이크는 있는데 초가 없어서 초 44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렇게 많이는 안 되는데요.” 계산대 앞에 서 있던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10살짜리 4개랑 1살짜리 4개니까 8개만 있으면 되는데 안 될까요?” 개수가 많다는 대답에 44개로 착각했나 싶어서 자세히 개수를 짚으며 되물었다.

“5개까지만 줄 수 있어요.”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저희 회사에서 5개까지는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구입해야 한답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다소 심각해 보였던지 옆에 있던 점장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 대화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자상한 설명이 곁들여진 대답을 듣고서야 제대로 이해가 됐다. 초를 구입해도 몇 백원 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는 다음에 빵을 사겠다는 말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동네에 유명 브랜드의 빵집은 아니었지만 다른 빵집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다른 빵집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도 안 된다고 하면 초를 사야지 라고 생각하며 똑같은 질문을 건넸다.

“네, 당연히 드릴 수 있어요. 초는 몇 개 필요하시죠?” 너무나 다른 대답이었다. 심지어 나는 아직 빵을 구입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44개가 필요해요. 그냥 주시면 죄송하니까 빵을 살게요.”

“필요하지 않으면 일부러 사지 않으셔도 돼요. 혹시 커팅칼도 필요하세요?” 너무나 친절한 대답에 당황한 나는 커팅칼이 필요했는데 얼떨결에 괜찮다고 대답해버렸다.

“이번에는 케이크가 있어서 구입하지 못하지만 크리스마스 때 꼭 케이크 사러 올게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진심을 다해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여학생이 탁자 아래에서 뭔가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거 어제 팔고 남은 빵인데 아직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여학생은 제법 큰 빵을 조심스레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여학생의 나이가 첫 번째 방문했던 빵집 여학생의 나이와 얼추 비슷하게 보였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빵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두 여학생의 얼굴이 교차됐다. 초를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빵집에서 거절하는 말을 하는 여학생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딱딱했다. 오히려 옆에 있던 점장의 자세하고 부드러운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두 번째 빵집에 있던 여학생은 너무나 친절했다. 만약 두 번째 빵집에 있던 여학생이 거절하는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친절한 여학생은 거절하는 말도 상대를 배려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 매주 가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친구에게 그 일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 춘천마라톤 대회 나갔을 때 있잖아. 완주하고 들어오면 메달이랑 기념품을 주고 나서 가슴 앞에 단 배 번호에 체크를 하잖아. 보통은 빨리 체크한다고 매직으로 한 줄 쭉 긋는 거 알지? 그런데 대회 끝나고 집에 가서 배 번호를 보고는 깜짝 놀랐잖아. 배 번호에 하트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거야.”

친구는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와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3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춘천마라톤 대회이기에 여학생 혼자서 체크하는 인원수를 예상해 보면 얼추 몇 백 명은 넘기 때문이다. 얼굴도 못 본 여학생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배 번호에 웃으며 하트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작은 친절이 가져오는 큰 신뢰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욱더 작은 친절을 습관처럼 들여서 신뢰라는 큰 이자를 얻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수진<대구욱수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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