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최북 '서설홍청(鼠囓紅菁)'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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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  발행일 2020-01-17 제39면   |  수정 2020-01-20
최선 다해 무 갉아먹고 있는 18세기 쥐…21세기 경자년에 보내는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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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담채, 19×20㎝,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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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의 아이콘이다. 반들거리는 까만 눈빛이 특징이다. 월급이 턱없이 적을 때 그 꼬리로 형용한다. 어둡고 칙칙한 곳에 살지만 '서생원'이라는 신분도 있다. 바로 쥐다. 쥐는 옛날부터 예지력을 지닌 '인간의 조력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었다.

새해라고 들썩이는 분위기다. 올해는 쥐가 주인공인 경자년(庚子年) 쥐띠의 해다. 쥐는 십이지(十二支)의 첫 번째 동물이다. 십간(十干) 중 일곱 번째인 경(庚)은 흰색으로, 경자년은 '흰색 쥐'의 해다.

쥐를 그린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의 '서설홍청'은 쥐가 홍당무를 갉아먹고 있는 그림이다. 수채화처럼 맑고 담박하여 흥겨움을 준다.

옛 그림에 쥐가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초기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그린 '수박을 먹고 있는 쥐'가 앞자리를 차지한다. 조선 후기에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서과투서'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서설홍청', 최북 등의 그림에 쥐가 나온다.

최북은 조선시대 후기 남종화풍의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잇는 직업 화가였다. 조선 후기에는 경제가 발달하고 문화를 감상하는 사회가 된다. 사대부 화가 못지않게 직업 화가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중인 신분으로 직업 화가였던 최북의 삶은 순탄하진 않았다. 호생관은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북(北)'자를 풀어서 '칠칠(七七)'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최북은 시·서·화에 능하여 당대 명사들과 교우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진택(震澤) 신광하(申光河, 1729~1796)는 1786년 '최북가'라는 시에 '체구는 작달막하고 눈은 외눈이었다네만/ 술 석잔 들어가면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네. 최북은 북으로 만주까지 들어가 흑룡강에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일본으로 건너가 적안(赤岸)까지 갔었다네. 그림 한 폭 팔고는 열흘을 굶더니/ 어느 날 크게 취해 한밤중 돌아오는 길에/ 성곽 모퉁이에 쓰러졌다네'라고 했다. 최북의 삶의 무게가 전해지는 애잔한 시다. 죽음 역시 인생만큼이나 기구하다.

문신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의 '최칠칠전(崔七七傳)'에는 '칠칠이는 하루에 5, 6되의 술을 마셨고, 눈이 하나 멀어서 한 쪽 눈에 안경알을 붙이고 붓을 들었다'고 했는데, 술을 좋아한 최북이 숱한 기행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애꾸눈이 된 사연은 '한 선비가 불손하게 그림을 부탁하자 마음이 격노한 최북이 그림을 그려주지 않고 버텼다. 선비는 다시 찾아와서 다짜고짜 그림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니 화가 난 최북은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버렸다'고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전한다.

산수화로 명성이 높았던 최북은 몇 점의 특별한 작품을 남겼다. 그 중 쥐를 주인공으로 그린 '서설홍청'이 있다. 맑고 상쾌한 기운이 감도는 정물화다. 화면에는 쥐 한 마리가 열심히 붉은 무를 갉아먹고 있다. 무에 올라탄 쥐는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덕분에 시선이 쥐한테 집중된다. 서로 반대쪽에 놓인 무의 꼬리와 쥐의 꼬리가 재미있다. 배경은 텅 비웠다. 적막한 가운데, 무 갉아 먹는 소리만 가득하다. 지금 쥐는 색다른 먹이로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서설홍청'에는 옅은 채색으로 홍당무를 그리고, 검은 쥐의 채색은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앞발로 홍당무를 잡고 앉은 포즈가 안정적이다. 화면 왼쪽 위에 '좌은재(坐隱齋)'라는 호를 쓰고, 여러 가지 낙관을 했다. 호에 보이는 글귀처럼 '무엇인가를 은밀하게 도모하는' 지금 이 순간, 쥐는 민첩하게 무를 먹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시제와 낙관이 어우러져서 화면이 경쾌하다.

최북은 일본과 중국, 금강산을 두루 다닌 박학다식한 화가였다. 1748년 통신사로 일본에 갈 때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최칠칠의 일본행에 부치는 시'라는 송별시를 지어주었을 만큼 그의 교우관계는 넓었다. 풍속화와 진경산수화가 화단의 트렌드였지만, 그는 남종화를 그리며 자신의 예술관을 지켰다.

새해에는 조선시대의 미키마우스였던, 최북의 '서설홍청'을 연하장으로 보내보면 어떨까. 그림 속에 깃든 18세기의 쥐와 시작하는 의미 있는 경자년이 될 것이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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