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사전이 말해주지 않는 의미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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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0   |  발행일 2020-02-20 제30면   |  수정 2020-02-20
기존 단어의 새로운 의미가
사전에 기술안된 경우 많아
현실언어 제대로 담으려면
국민적 인식이 성숙되어야
사전의 편찬 속도 빨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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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사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매우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텔레비전에서 '사전' 뜻풀이 그대로를 판단 기준으로 삼거나 공인된 주요 시험에서 사전의 등재 여부나 사전 기술의 내용만으로 정답 여부를 판별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전의 권위는 다소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사전을 대할 때 사전 역시 사전학자들의 주관적인 편찬 철학이 들어가 있고, 편찬자에 따라 일관성이 없거나 부족한 기술도 상당히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 공인된 사전의 경우, 신어의 등재와 뜻풀이의 수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현실 언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며칠 전 외국인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논문 상담을 하던 중 "선행연구를 답습하려고 찾아봤는데, 찾지를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때 '답습'의 표현은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전혀 문제는 없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때 '답습'이 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는 '답습'을 "예로부터 해 오던 방식이나 수법을 좇아 그대로 행함"이라고 중립적으로 뜻풀이하고 있지만, 실제 '답습'은 주로 "'관행'이나 '실수'를 답습하거나 '적폐'를 답습"하는 등의 부정적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답습'한다는 것은 이전의 낡고 극복되어야 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되므로 우리는 현실에서 되도록 '답습'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외에도 '공공연히'는 사전에서 아주 중립적인 의미로 뜻풀이되어 있지만, 상당 부분 "음란물을 공공연히 배포하거나, 공공연히 공무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거나, 공공연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등" 매우 부정적인 맥락에서만 사용된다. 따라서 '공공연히'를 "공공연히 우리를 칭찬하는 것을 알고 기뻤다"와 같이 긍정적 의미로 쓴 문장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색한 문장이다.

한편 최근 정치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선거 프레임, 적폐 프레임' 등의 '프레임'은 다른 이유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침대 프레임, 자동차 프레임'과 같이 구체적인 '틀'을 의미하는 프레임이 2001년 어느 신문에서 '군사 보복주의 프레임'으로 최초로 쓰인 바 있으나, 본격적으로 정치적 의도나 관점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프레임은 주로 2007년, 2012년, 2017년에 높은 빈도로 나타났는데 모두 대선이 있었던 해와 일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이때의 '프레임' 역시 "프레임에 갇히거나 말려들거나" 또는 "프레임을 씌우는" 등으로 쓰여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나타내는데, 이러한 함축적인 의미도 현재의 사전에서는 기술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 외에도 '인생 사진, 인생 바지'에서의 '인생' '뒤끝 작렬' '허세 작렬'에서의 '작렬' 등도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의미로 사전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어떤 표현이나 특정 표현의 의미가 사전에 없다고 현실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규범적으로 바른 언어를 쓰고 규범을 바로 담는 사전도 중요하지만, 현실 언어를 효과적으로 잘 담는 사전의 편찬도 중요하다. 사전과 언어 자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성숙해야 그러한 사전의 편찬이 더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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