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신라 금관의 자리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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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8 17:40  |  발행일 2025-12-28
장성재기자〈경북부〉

장성재기자〈경북부〉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이 적지 않게 소장돼 있다. 홈페이지 소장품 검색창에서 출토지를 '경주시'로 설정하자 토기와 금속공예, 불교조각 등을 포함해 3천여 건이 검색됐다. 국보와 보물로 범위를 좁혀도 30여 건이 넘었다. 경주 출토 유물이 상당수 중앙박물관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검색 결과가 출토지 기준으로 실제 소장·전시 현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했다. 일부 유물은 중복 표기돼 있거나 출토지와 관리 출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사례도 보였다. 이에 경주시 출토 유물 전체 건수와 국보·보물 목록을 공식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출토지 기준으로 정리된 소장 현황 자료는 별도로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회신했다. '정보 부존재'이기 때문에 출토지별 통계 자료를 제공하려면 추가적인 취합과 가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면, 출토지 문화유산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명확한 자료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이 지점에서 경주시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신라 금관 6점의 경주 존치 논의가 겹쳐 보인다. 2025 APEC 정상회의 특별전을 계기로 신라 금관 6점이 104년 만에 처음으로 본향인 국립경주박물관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전시 종료 이후 다시 서울과 청주로 분산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경주시민들은 1921년 일제강점기 금관총 금관 지키기 운동 이후 두 번째 시민 행동에 나섰다. '신라 금관 경주존치 범국민운동'이라는 이름이었다.


본향 운동은 금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마인물형 토기,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로마계 유리병과 유리잔, 남산에서 출토된 대표 불상들까지 경주에서 나온 핵심 유물 상당수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서울에 남았고 그 상태가 관성처럼 굳어졌다. 출토지의 맥락은 점차 옅어지고 '중앙'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인왕동 사지에서 출토된 팔부중 조각이 경주로 돌아온 사례는 이 흐름에 대한 중요한 반례다. 일제강점기 반출 이후 서울에 머물던 유물이 지자체의 지속적인 요구 끝에 2024년 무렵 경주로 이관됐다. 한 번 중앙으로 옮겨진 유물은 되돌아오기 어렵다는 통념이 반드시 고정된 원칙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신라 금관 경주 존치 범국민운동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소장과 전시를 분리하자는 요구다. 신라 왕도의 상징인 금관은 경주에 두고, 필요하다면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대여 전시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경주가 중앙에서 빌려오는 구조였다. 이제 그 방향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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