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언어

  • 이은경
  • |
  • 입력 2020-03-19   |  발행일 2020-03-19 제26면   |  수정 2020-03-19
2주에 한 개씩 언어 사라져
제주도 방언도 소멸될 위기
언어 사라지면 문화도 잊혀
사용자 적어도 소중한 유산
다양성 보존의 가치 인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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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얼마 전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작년 개봉된 영화지만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는데, "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 '말모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이 말이 되냐"는 친구의 농담에 괜히 머쓱하여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다.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으로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었던 시대에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우리의 언어를 지키려 한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친구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말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때 우리말을 지키려고 한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의 언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많은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전 세계 7천여 개의 언어 중 2주에 한 개꼴로 언어가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100년 안에 현존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언어의 소멸은 인류 문화유산의 소실이기에 유네스코는 2월21일을 '세계 모어의 날(International Mother Language Day)'로 지정하여 언어 다양성 보존과 모어 기반 다언어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세계 모어의 날'의 제정 배경을 보면, 방글라데시에서 벵골의 학생들이 1952년 2월21일 당시 파키스탄 자치령 정부가 우르두어를 강요한 것에 시위를 벌이다 여러 목숨이 희생된 것을 기리고자 이날을 언어 순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1999년에 유네스코가 2월21일을 세계 모어의 날로 선포하고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언어의 소멸이 남의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제주 방언은 2010년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되었다. 언어의 소멸 위기 정도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는 '언어의 세대 간 전달'인데, 4단계는 노령인구만이 언어를 부분적이고 드물게 사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제주도의 젊은 세대는 일상생활에서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대로 제주어를 사용하는 노령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제주어가 젊은 세대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제주어는 5단계인 '소멸한 언어(extinct language)'가 될지도 모른다.

제주어는 몇몇 사람들만 사용하는 언어이므로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언어 사용자의 수가 적고 세력이 크지 않은 언어는 무가치한 것일까?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체성, 역사, 삶의 지혜, 문화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담고 있는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어의 경우를 보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제정하고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제주어의 위상 강화를 위한 문화 환경 조성, 제주어 보전을 위한 교육과 연구체계 수립, 제주어의 정보화와 대중화를 위한 기반 강화를 위해 여러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언어 다양성 보존의 가치를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언어를 지켜내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김수정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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