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비대면 사회와 '몸 노동'의 가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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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0   |  발행일 2020-05-20 제30면   |  수정 2020-05-20
몸 노동 가치 얼마나 귀한지
코로나 사태로 새삼 깨달아
언택트 담론 급부상 계기로
의료진·배달근로자·주부 등
몸으로 하는 노동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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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언택트(untact)!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사태의 고난 속에서 불과 몇 달 전까지 아무도 쓰지 않던 이 용어가 갑자기 한국 사회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태이니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만이 사실상 유일한 방역 대책일 수밖에 없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여전히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뉴 노멀(the new normal)'이라는 이름으로 언택트가 마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정해진 방향인 것처럼 거론되는 모습은 대단히 낯설다. 과연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비대면화,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 접촉을 최대한 회피하는 모습은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흐름에 잠자코 적응하는 것밖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일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쩌면 이 언택트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그저 불쑥 튀어나온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점이다. 언택트라는 말 자체가 콘택트, 즉 접촉이라는 단어에서 'con'을 빼고 'un'을 붙여 탄생했듯이, 이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빠르게 이토록 지배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를테면 'tact'라는 어근에 해당하는 담론적 기반이 존재했던 까닭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약간의 추리력을 가지고 코로나 사태 이전의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면, 언택트 담론의 기반이 될만한 나름의 후보들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4차산업혁명 담론의 핵심을 이루는 이른바 스마트화의 논리라든지, 그 핵심을 이루는 사물 인터넷(IoT)의 논리는 한국 사회에서 저비용·고효율화를 상징하는 혁신의 용어들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스마트화의 논리 또는 사물 인터넷의 논리에서 언택트 담론의 기반을 찾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깊은 실망과 우려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언택트 담론은 비대면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들'과 유사한 위상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언택트 담론과 정반대의 관점을 가지고 비대면 사회를 바라볼 필요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새삼스럽게 몸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노동이나,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는 배달 근로자들의 노동이나, 몇 달째 사실상 집안에 갇혀 지낸 아이들을 위해 가정의 일은 물론 학교와 국가의 일까지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주부들의 노동은 모두 '몸 노동'이라는 점에서 매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몸 노동'은 사물 또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는 누군가의 '몸 노동'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아예 시작조차 될 수 없다. 사물 인터넷 담론의 기반 위에서 언택트 담론이 급부상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 '몸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정당하게 존중해 왔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문제는 곧 닥칠 농번기에 이르러 이미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을 활용하기 어려워진 농촌 지역의 긴박한 '몸 노동' 수요의 모습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 말없이 쇄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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