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이/가'와 '은/는'의 쓰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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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8   |  발행일 2020-05-28 제26면   |  수정 2020-05-28
주어가 '이/가'형식 문장은
새로운 사건 전개때 사용
주어가 '은/는'형식 문장은
그 앞의 부분과 같은 사건
하위 상황 서술할 때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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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한국어의 주어는 '이/가'가 결합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은/는'이 결합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은/는'이 아닌 '도, 만' 등의 다른 보조사가 결합한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조사 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흔히 생략되기도 한다.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이라면 경우에 따라 이러한 다양한 주어의 형식 중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나,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때에 따라 자연스러운 주어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만만찮을 것이다.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도 어떠한 경우에 '이/가'를 쓰고 '은/는'을 쓰는지, 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어에서 주어의 실현 양상은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임의적인 현상일까?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형식들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거나 생략하는 것도 가능하나, 다른 형식으로 바꾸면 의미의 연결이 달라지거나 어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텍스트든 주어에 쓰인 조사를 바꾸어 보거나 생략해 봄으로써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러한 형식들이 특정 위치에 나타나는 것이 임의적인 현상이 아님을 말해 준다.

한국어 주어의 이러한 실현 양상을 밝히기 위해 박완서의 소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의 일부분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주어의 실현 양상은 주어가 가리키는 지시체가 텍스트의 앞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경우, 즉 처음 출현한 경우인가 아니면 앞에 언급된 적이 있는 경우인가에 따라서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어가 가리키는 지시체가 텍스트에서 처음 출현하는 경우에는 주어가 생략되지 않고 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이/가' 결합 형식과 '은/는' 결합 형식으로 실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어의 지시체가 텍스트의 앞에서 이미 언급된 적이 있는 경우는 단락 내에서 앞에 언급되었는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주어가 가리키는 지시체가 텍스트의 앞에 출현한 적이 있더라도, 단락 내에서 앞에 언급되지 않은 경우에는 생략되지 않고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다. 이때의 주어는 '은/는' 결합 형식이 현저하게 많다는 점에서 텍스트에 처음 출현할 때의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주어가 '은/는' 결합 형식인 문장은 그 앞에 나오는 부분과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하위 상황들에 대한 서술일 때 쓰이며, 주어가 '이/가' 결합 형식인 문장은 새로운 사건의 전개일 때 쓰인다. 한편 주어가 가리키는 지시체가 단락 내에서 앞에 언급된 경우는 앞서 살핀 두 경우에 비해 생략되는 빈도가 월등히 높다.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사용해 왔던 주어의 실현 양상에 이러한 경향이 있다니 새삼 놀랍지 않은가. 물론 문어 자료, 그중에서도 특정 텍스트만을 살펴본 결과이므로 다른 텍스트 또는 구어에서의 주어의 실현 양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를 소개한 이유는 주어의 실현 양상과 같이 문장 차원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음을 보이기 위함이다. 주어의 실현 양상을 문장 내에서만 살폈다면 텍스트의 앞에 언급되었는지에 따라 주어의 실현 양상이 달라짐을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장 내의 현상에 국한된 연구가 국어 연구의 주류를 이루어 온 측면이 있다. 국어의 사용 양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정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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