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대구시교육청 김동찬 사무관·조암중학교 류종승 행정실장 2…26년째 '한 우물 더'…마음이 시키는 일이니까요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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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9   |  발행일 2021-03-19 제34면   |  수정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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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축제에서 공연하고 있는 '스쿨버스'.

첫 공연 후 김 사무관의 밴드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시교육청 주관 행사는 물론 동성로 축제, 수성못 축제 등 자치단체 행사에서 공연을 펼쳤다. 추운 겨울 언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면서 교육청 소속 다른 밴드와 '이웃돕기 성금모금 합동공연'도 했다. 실전을 거듭할수록 멤버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2010년 무렵 밴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당시 1950년대생이거나 1960년대 초반생 선배들을 다른 팀으로 옮기게 하고 젊고 실력있는 후배들을 영입했다. 김 사무관은 그제서야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세컨드기타로 파트를 옮길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연습을 했다. 혹시나 집사람이 싫어할까봐 대구 외곽에 있는 처가에 자주 들러 농사일을 거들어줬다. 연습이 없는 날이면 술자리 대신 집으로 일찍 들어갔다.


대구시교육청 김동찬 사무관
직장인 밴드 '스쿨버스' 결성
실력보다 열정이 더 넘치지만
난치병돕기·이웃돕기 등 공연
동성로·수성못축제 무대도 올라
"이웃과 소통·자기계발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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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대구시교육청 예산담당 사무관이 결성한 밴드 '스쿨버스'의 정기공연 모습(오른쪽)과 포스터.

벌써 15년이 흘렀다. 김 사무관이 거의 유일한 초기 멤버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려운 학생돕기 자선공연, 난치병학우 돕기 행사, 보육원 방문 공연 등 소외된 계층과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김 사무관은 "몇 해 전 연말에 지역의 한 보육원에서 공연을 하고 원생들과 함께 뒤풀이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직감했다"며 근무지가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고 자기계발할 수 있는 밴드 생활이 아직도 좋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몇 년 전부터는 전면에서 팀을 이끌기보다 젊은 후배들이 밴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김 사무관은 "요즘 코로나19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는 바람에 연습을 못해 아쉽다"며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감염병으로 지친 동료 직원들과 지역민에게 작지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공연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5년6개월 뒤면 김 사무관은 정년을 맞는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멤버들과 밴드생활을 할 수 없다. 직장인이 아니어서 직장인밴드에 있을 수 없기때문이다. 김 사무관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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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승 행정실장의 보물창고인 서재.

◆대구시교육청의 선비 류종승

류종승 행정실장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모으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계림문고라는 출판사에서 세계명작·위인전 등을 모아 200권을 출판했는데 이걸 사서 읽는 게 목표였을 정도다. "책 읽고 모으기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서"라고 겸손해 하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집에다 책을 많이 모아놓으셨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중학교 다닐 때다. 방학만 되면 아버지가 대구향교에서 개강하는 사서(四書)반 수업을 들어라고 권유했다. 새벽에 열리는 강의였지만 당시에도 사서나 한문이 관심이 많아 아버지 뜻에 따랐다. "저명한 유학자인 이수락 선생님이 강의를 하셨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머리카락이 하얀 어르신들이셨어요. 중학생은 저밖에 없었죠.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책을 읽으라고 하면 더듬거렸지만 곧잘 했던 것 같아요."

류 행정실장은 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했는데 이 역시 중국 고문에 관심이 많아 선택한 결과다. 하지만 전공이 지역학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이다 보니 교과과정에 자신이 원하는 고문 같은 과목이 없었다. 전공에 관심이 없어졌다. 어영부영 1학년을 마친 뒤 입대했고 복학해서는 고문에 심취했다. 졸업하기 전에는 1년 휴학을 하고 맹자를 독파하기도 했다.

1996년 졸업과 동시에 교육공무원으로 공직에 들어선 류 행정실장은 촉망받는 직원이었다. 1년여 동안 효목도서관에서 근무한 뒤 곧바로 시교육청으로 발령받았다. 그때부터 꼬박 10년 넘게 시교육청 시설과, 기획예산과, 감사과 등에서 근무했다. 직장 생활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가슴 한쪽이 늘 허전했다. 계속된 야근과 술자리는 류 행정실장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책 사모으기와 읽기에 어려움을 줬다. 2010년 초 기회가 왔다. 일찍 출근하는 대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학교 행정실로 발령이 난 것이다.


조암중학교 류종승 행정실장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던 학생
세계사·만화…틈나면 읽고 모아
출판문화協 '모범장서가' 선정돼
유럽여행기·역사에세이 등 출간
"베네치아·빈…3부작 완성하고파"


고기가 물을 만났다. 틈만 나면 온·오프라인 도서관을 찾았다. 서양사, 유럽 중세사, 세계사 등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책은 물론 민음사에서 출판한 세계문학전집도 빼놓지 않고 사 모았다. 시집도 사고 만화도 샀다. 고가의 책을 구입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최근 유홍준 교수가 출간한 '돈황 시리즈'를 읽다 돈황을 더 알고 싶어 '돈황학 대사전'이라는 책을 무려 수십 만원이나 주고 구입했다. 류 행정실장이 구입한 도서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높이 190㎝, 너비 120㎝ 크기의 책장 9개에 3천500~4천권 정도된다. 류 행정실장이 주로 책을 구입하는 알라딘 서점에서는 독자가 구매한 책의 양과 금액을 알려주는데 이에 따르면 한 서점에서만 3천권의 책을 사고 구입비로 5천만원가량 들었다. 지난해에는 한 달 평균 도서구입비가 40만원, 양으로는 1년에 300권 정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 행정실장은 "좋은 책이 나오면 몸이 가만 있지 않는다"며 "아내는 다 보지도 못한 책을 왜 자꾸 사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1년에 50권 정도는 읽는다"고 웃어보인다. 류 행정실장의 책모으기 수준은 전문기관에서도 인정해줬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매년 작가와 대학교수를 제외한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2천권 이상의 책을 소장한 사람을 대상으로 '모범장서가'를 선정한다. 류 행정실장은 2017년 응모해 모범장서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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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승 조암중 행정실장이 출간한 책들. 퇴직 전까지 도시 3부작을 펴내는 것이 류 행정실장의 꿈이다.

류 행정실장은 몇 해 전부터 책과 관련한 또 다른 취미가 생겼다. 저작이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2년 근무하다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해 4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아내·딸과 함께 유럽에 가서 자동차로 여행했다. "여행기를 책으로 만들면 딸이 나중에 커서 기억을 더듬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꼼꼼히 기록했다. 귀국해서는 덧붙일 자료까지 찾는 수고러움을 거친 뒤 탈고했다. 출간하려고 50군데나 되는 출판사에다 원고를 보냈지만 48군데에서는 답장조차 없었고 나머지는 우리 출판사와 출판방향과 맞지 않다, 죄송하다고 답해왔다. 나중에 알았다. 여행기는 왠만해서는 출판이 안되며 유명작가나 배우가 집필하거나 여행 내용이 독특해야 출판될 수 있다는 걸. 덤으로 하나 더 알았다. 정말 출간하고 싶으면 자비로 해야 된다는 걸. 당시 1천부 제작비가 580만원이었다. 내질렀다. 2013년 8월12일 '자동차로 유럽여행' 초판이 나왔다. 친지와 지인에게 선물한 것 말고 무려(?) 400여 권이나 팔렸다.

류 행정실장은 2015년 터키 이스탄불에 가서 7박9일 체류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불현듯 이스탄불 역사와 특이한 일들을 정리한 역사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관련 서적 100여 권을 읽었다. 그리고 뜻을 이뤘다. 그해 가을 무렵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우수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응모했다. 선정되면 책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졌다. 기존 작가와 원로 대학교수 등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여한 걸 몰랐다. 출판사에 의뢰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자비출판을 생각하다가 '부크크'라는 출판 지원 플랫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원고만 있으면 국제 표준에 등록된 책을 만들어 준다. 알라딘·예스24 등에서 판매도 가능했다. 한 권이라도 주문 제작해 준다. 지난해 6월12일 류 행정실장의 두 번째 저작품 '이스탄불'이 탄생했다. 지금껏 17권 팔렸다. 제작비를 제외하고 1만원 조금 넘은 인세를 받았다. 류 행정실장은 "돈보다 자기 성취감이며 기념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좋아하니까 책을 만들면서 정리도 해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취미의 영역에서 류 행정실장은 좀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을까. "퇴직하기 전까지 이스탄불, 베네치아, 빈으로 이어지는 도시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 퇴직 후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더 꼼꼼히 찾아다니고 기록한 '자동차 유럽여행 2'를 만들어 보고 싶다. 하루에 2시간 정도는 꼭 서재에 들러 책도 보고 그곳에서 놀고 싶다. 집에는 책장을 더 이상 놓을 곳이 없다. 그래서 만화방에 있는 것처럼 2중레일 책꽂이를 만들고 싶다. 집사람을 설득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류 행정실장은 "공무원이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놀러나 다니는 것 아니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 열심히 하고 놀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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