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6> 우광훈의 '전 턱없는 탈입니다'

  • 입력 2021-05-25 13:01  |  수정 2021-05-31 13:38
-안동 화회(河回) 이메탈이 들려주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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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메탈입니다.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에서 태어났죠.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전 턱이 없습니다. 턱이 없다보니 뭐 하나 씹을 수가 있나, 짧은 말 한 마디 내뱉을 수 있나, 영락없는 금수의 생(生) 그대로죠.


하지만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 비천한 신분이기에 세상사 탓해도 부질없고, 맘껏 욕지거리 내뱉어도 알아들을 놈 하나 없으니 나름 편한 생이기도 하답니다. 어쩌면 말이란 놈의 교활한 구속에서 해방된 셈, 나무가 말을 집어삼켰다고나 할까요. 말, 인간이 만든 말(言)이란 것,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사실 제 턱을 이렇게 만든 그 년, 참으로 예뻤어요. 허도령이 뻑 갈만도 했죠. 조그마한 입술과 초승달 같은 눈썹, 걸음은 학처럼 우아했고, 장의 속에 감추어진 두 뺨은 백옥처럼 빛났어요. 이름은 미선. 아름다울 미(美), 착할 선(善). 거묵실골 남쪽, 초가에서 홀로 기거하고 있었지요.
 

허도령과 여자, 사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팔월 한가위 부락잔치에서 처음 만난 둘은 휘영청 달 밝은 밤, 동사(洞祠) 처마 아래에서 서로를 품에 안았지요. 그래요. 풍문은 풍문일 뿐, 사랑은 사랑일 뿐.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마을 대장간에서 일하는 최씨가 오리나무로 가득한 허도령의 작업실을 찾았어요.
 

“허도령.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우리 마을에 이상한 역병이 돌아 어린 것들이 목숨을 잃고 있지. 아마 이 모든 게 신의 노여움 때문이 아닐까하는 게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네. 그래서 돌아오는 정월대보름에 우린 아주 성대한 별신제를 지내기로 결정했다네. 물론 별신제에 쓰일 탈이니 신경이 많이 쓰이겠지. 하지만 우리 힘없는 것들, 양반 눈치 보랴, 관리 신경쓰랴, 어찌 맨얼굴로 할 수 있겠는가. 탈조가리라도 하나 덮어써야 하지 않겠는가. 마을 어르신들도 쾌히 승낙하셨으니, 어떤가, 해줄 수 있겠는가?”
 

“몇 개면 되겠소?”
 

“양반, 총각, 각시, 초랭이, 백정, 중, 이매, 부네, 할미, 떨달이, 별채, 선비, 그리고 주지 두 개 이렇게 총 열네 개가 필요하네.”
 

“언제까지면 되겠소?”
 

“그게…… 정월 초하루가 네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적어도 세 달 안엔 끝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렵겠소.”
 

“아니 왜?”
 

“열네 개의 탈을 만들려면 반년은 족히 필요할 터 그걸 세 달 안에 만들라니 날 보고 죽으란 말이오.”
 

“탈 만드는 게 그리도 힘든 작업인가?”
 

“당신네들 탈 만드는 게 그냥 나무만 적당히 깎으면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아주 큰 오산이오. 나에게 탈은 곧 생명이오. 살아 숨쉬는 인격체란 말이오. 산모가 격한 산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새생명을 맞이하듯, 나 역시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이겨내어야만 제대로 된 새끼를 얻는단 말이오. 이렇듯 탈이란 자못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나무속에 담는 작업.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뿌리박힌 채로 살려두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소?”
 

허도령의 열변에 최서방은 결국 아무런 말도 잊지 못했지요. 사실, 허도령이 탈제작을 거절한 건 노고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세상사 모든 일에는 사익(私益)이 섞이는 법. 도덕이니, 공공이니 아무리 외쳐 봐도 사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인간에겐 열정과 집착이 생기지 않는 법이지요. 허도령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에겐 마을의 안녕과 평화보다는 한 여자와의 사랑이 더 중요했던 거죠. 단 하루라도 서로를 못 본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랑. 그만큼 여자를 향한 허도령의 사랑은 깊고도 넓었어요.
 

하지만 그 날 밤, 한 줄기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허도령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지요.
 

“네 이놈! 사사로운 정이 마을의 안녕보다 더 중요하더냐!”
 

벌떡 일어나 눈을 떠보니, 호랑이 형상을 한 산신령이 바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산신령이 다시 말을 이었지요. “마을신의 노여움을 풀기에는 별신굿이 최고일터, 네 어찌 한낱 사랑 때문에 마을 전체를 나락으로 빠트리려 하는 게냐. 네가 만약 탈 만들기를 끝까지 거부한다면 내가 네 사랑을 앗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허도령, 결국 탈 제작을 약속하고 말았지요.
 

“탈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는 절대로 작업실 밖으로 나와서도 아니 되고, 타인이 네 모습을, 네가 타인의 모습을 보아서도 아니 된다.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넌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될 것이다.”
 

다음 날, 꿈에서 깨어난 허도령은 결국 여자에게 이 모든 사연을 전한 뒤, 화산자락 따스하고 양지 바른 곳으로 쓸쓸히 숨어들었지요. 문 앞에는 외인의 출입을 막는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를 한 후, 곧장 탈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죠.
 

허도령, 그는 우리들을 아름답게 만들려고도, 과장되게 꾸미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그저 인간다움, 그 진솔한 삶의 흔적들을 나뭇결 깊이 새겨 넣길 원했었죠. 할미에게는 일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자신의 노고를, 백정에게는 피할 수 없었던 살생에 대한 죄책과 그로인한 번민을, 부네에게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선비에게는 지체 높은 신분과 학식에 대한 가식을, 초랭이에게는 양반에 대한 반감과 경망스러움을, 각시에게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양반에게는 여유와 허풍에 깃든 불안과 허세를, 그리고 저에겐 완벽에 가까운 익살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겉으로는 선비와 양반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삶 속에 감추어진 위선과 모멸을 몰래 훔쳐보고, 귀엣말로 주고받으며, 비하하고, 풍자하는 그런 속된 행위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죠. 중놈이 과부를 탐한다는 둥, 무식한 양반이 뇌물로써 관직을 샀다는 둥 높은 자들의 허물로 자신의 비루함을 자위하는 그런 이야기야말로 맛깔스런 안주였고, 야트막한 자존심이었으며, 힘든 노동을 위안하는 삶의 활력소가 된 셈이었죠. 그렇게 허도령은 인생 밑바닥에 깔려있는 저급한 삶의 기호들은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생것 그대로가 아닌) 익살과 웃음이란 양념에 한껏 버무린 다음, 우리의 얼굴 속에 차곡차곡 심어 넣어준 셈이었죠.
 

그렇게 여든 아홉 번의 낮과 밤이 꿈결처럼 흘렀어요. 나를 제외한 열세 개의 탈은 완벽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보관함 속에 들어가고, 나 혼자 만이 작업대 위에 남아 있었지요.
 

“이메야, 넌 어떤 턱을 원하느냐?”
 

새벽녘이 밝아올 때쯤, 허도령이 나에게 물었어요. 허도령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죠. 어느새 머리는 백발로 물들었고, 피부는 깊은 주름으로 얼룩져 있었어요. 전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 히죽히죽 눈웃음을 머금었지요. 그러자 허도령은 껄껄대며 소리 내어 웃더군요.
 

“어허, 이놈이 날 놀리려 드는구나. 좋다! 너에겐 이 풍진 세상 웃음으로 견뎌낼 수 있게 익살 하나 달아주마.”
 

허도령은 다시 좁고 납작한 조각칼을 집어 들더니 망설임 없이 저의 턱을 파나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턱만 완성되면, 턱만 완성되면 제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죠.
 

그때였어요.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자국 소리. 그 소리는 차츰 출입문 쪽으로 가까워지더니 문창살 바로 앞에서 멈추었어요. 물론 작업에 푹 빠진 허도령의 귀에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요.
 

잠시 뒤, 스르르하고 문이 열리더니 갸름한 얼굴 하나가 나타나더군요. 한눈에 보아도 그 여자였어요. 여자의 몰골, 가관이 아니었어요. 눈은 병자처럼 퀭하니 패여 있었고, 볼은 광대뼈가 선연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모래 같은 육체에는 물기 한 점 느껴지지 않더군요.
 

“도령님, 탈은 다 만드셨소?”
 

여자는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허도령을 불렀어요.
 

허도령, 그제서야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군요. 그렇게 여자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내 턱! 내 턱이 그만 허도령의 손에서 툭하고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마치 동백의 꽃대롱처럼 댕강하고 잘려 나가버린 내 턱. 그 찰라의 순간, 난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쳤죠.
 

“이 못난 년, 너 때문에 내가 병신이 되는구나!”
 

사실, 금기가 깨어짐으로 인해 불어 닥칠 허도령의 최후보단 턱의 부재로 인해 생겨날 내 얼굴의 기형에 더욱더 화가 치밀었죠. 제기랄, 턱없이 한평생을 살아야하다니 이런 기구한 운명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솔직히, 하늘의 형벌이란 것이 그리 빨리 찾아오는 것은 아니더군요. 풍설의 그것처럼 여자와 시선이 맞닿는 순간, 곧장 피를 토하며 죽지도 않았고요.
 

“그 곱던 얼굴 어디가고, 주름만 남았느냐.”
 

허도령은 자신을 사지로 몰고가버린 여자의 성급함을 결코 탓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자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가슴 가득히 껴안았죠. 순간, 타닥거리며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났어요.
 

“도령님은 왜 이리 백발이 되시었소? 창작이란 것이 신을 희롱하는 작업이라더니, 그것 때문에 노여움을 사신 게요?”
 

허도령의 눈망울에 차츰 눈물이 괴더군요. 그렇게 흐느끼는 여자와 흐느끼는 남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해진 얼굴하며 마치 솜털처럼 나풀대는 머리카락, 초점을 잃은 눈동자며 흐느적거리는 수족…… 어느 시대, 어느 장소 곤 기다리는 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지요. 기다림에서 오는 초조함과 긴장은 사람의 피를 말리고, 뼈를 깎아 결국 사지(死地)로 내몰지요.
 

순간, 허도령이 거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기 시작하더군요.
 

“때가 온 것 같구료.”
 

“저도 님을 따라 가오리다.”
 

여자가 재빨리 옆에 놓인 조각도를 들어 자신의 손목을 그었어요. 허도령이 말릴 틈도 없었지요. 결국 둘은 손을 꼬옥 잡은 채 제 옆에 눕더군요.
 

“행복하오?”
 

남자가 물었어요.
 

“행복해요. 당신 옆에 있어 미칠 듯이 행복해요.”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제 뻥 뚫린 턱을 타고 두 눈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제 익살은 눈물이 되고, 눈물은 꽃이 되고, 그 꽃이 쌓여 조그마한 무덤이 되더군요.
 

그래요…… 전, 턱없는 탈입니다.
비극 속에 감추어진 구슬픈 노래입니다.
사랑에 휩싸인 한 떨기 꽃입니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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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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