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더 짙어지는 고령화의 그늘 .2] 범죄 노출된 노인들

  • 서민지,정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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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3 07:27  |  수정 2021-06-29 11:30  |  발행일 2021-06-03 제6면
노인타깃 피해자도 늘고…'욱' 하는 폭력 가해자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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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에 따른 영향이 '범죄'에까지 뻗치고 있다. 노인을 타깃으로 한 '피해자'가 늘어나는 한편 노인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해가 갈수록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북지방통계청은 2035년 대구와 경북지역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각각 31.2%(69만 1천명), 36.1%(92만2천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기준 대구는 16%(38만 8천명), 경북은 20.7%(54만 9천명)였다.

고령층 대상 재산범죄 '최다'
올해 대구서 보이스피싱 77명
대부분 자녀·손자 사칭 사기

범죄 주체 비율도 매년 증가
전국적으로 10년간 126% ↑
생활고 인한 '생계형' 많아
"무시한다" 우발적 폭력 27%

범죄예방위한 정책 마련 등
일자리 창출 제도화도 시급


◆고령층 노리는 '기획부동산' '보이스피싱'

경북 영천에 거주하는 A(71)씨는 2014년 청소 일을 하면서 B씨를 만났다. B씨의 친절한 태도에 금방 친분을 쌓고 지냈지만, B씨가 이사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A씨는 2년쯤 지난 시점에 B씨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대구의 모 투자 회사에 취업한 B씨는 A씨에게 자금이 있으면 투자를 해보라고 제의를 했다. 가족 없이 혼자서 지내던 A씨는 평생 어렵게 모은 돈 8천만원과 대출받은 1천만 원으로 땅을 샀다. 1~2년 내 해당 토지의 가격이 3배 오른다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5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A씨는 현재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A씨와 같은 피해 사례는 숱하게 많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 피해자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7만6천624명이었던 60세 초과 범죄 피해자는 2016년 14만9천283명이나 됐다. 2019년엔 17만5천199명을 기록했다.

대검찰청의 '2020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9년 재산범죄(절도·장물·사기·횡령·배임·손괴)에 당한 고령자(60세 초과)는 총 7만8천568명이다. 형법 관련 고령 범죄 피해자 총 12만3천454명 중 63.6%가 재산 범죄에 당한 것이다. 전체 피해자 중 '사기'를 당한 수법은 '매매 가장'(24.2%)이 가장 많았고, '가짜 속임'(20.6%), '차용 사기'(7.4%), '부동산 사기'(1.5%), '모집 사기'(1.4%), '알선 사기'(1.0%) 등이 잇따랐다.

'보이스피싱'에도 많이 당한다. 대구지역에서 올들어 4월까지 60대 이상 피해자만 77명 발생했다. 대구경찰청은 보이스피싱 1건당 평균 2천48만 원의 피해액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령의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올해 들어서만 15억7천696만 원의 사기를 당했다는 의미다. 검찰청 등 각종 기관이나 은행 대출 상담사 등을 사칭한 전화 한 통에도 노인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특히 자녀나 손주와 관련한 전화를 받게 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난해 12월 경북 영천에선 딸이 보증을 잘못 서 법정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는 전화를 받은 70대 어르신이 정기예금 3천만 원을 중도 해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은행 직원이 신고,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른바 '기획 부동산' 피해자들 대다수도 고령층이다. 퇴직금이나 노후자금을 투자했다가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들 역시 70대 이상 고령층이었고 잘못된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엔 '가상화폐 투자 사기 주의보'도 내렸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의 사기 범죄는 연령, 사회적 지위 등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이 당하고 있지만, 노인의 경우 특별히 경찰 등에서 노인 맞춤형 '찾아가는 교육' 및 계몽 활동을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고령 범죄자 비율 매년 증가

고령자들이 언제나 '범죄에 노출된 약자'인 것은 아니다. '범죄 주체'가 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대구지검에 따르면, 최근 3년 기소된 65세 이상 피의자는 2018년 1천692명(6.12%), 2019년 1천836명(6.71%), 2020년 1천715명(7.21%)이었다.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유상범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7만4천348명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고령 범죄자는 2019년 16만8천528명으로 늘었다. 10년 간 126.7% 증가한 것이다.

고령 범죄가 늘어나는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우선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범죄로 내몰려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2019년 형법을 어긴 유형의 고령(60세 초과) 범죄 중 '재산범죄'(절도·장물·사기·횡령·배임·손괴)를 저지른 비중은 47.4%(6만6천384명)로 절반에 가까웠다.

노인의 사회적 유대가 약화하면서 범죄 특성이 '우발적'이기도 하다. 2019년 폭력(폭행·상해·협박·공갈 등)을 저지른 고령 범죄자는 27%(3만7천790명)였다. 대구지역의 한 지구대장은 "경찰이 일선 현장에서 마주하는 노인 범죄 대다수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다툼·폭행 등이다. 일이 없고 시간은 많은 어르신이 동네 공원, 공공시설 등에 모이기 마련인데, 날마다 마주하는 사이에서 갈등이 쌓이게 되고 결국 우발적인 범행으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했다. 박동균 교수는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노인 일자리는 없는 실정이고, 외로운 노인들이 무시당하는 기분까지 들면 감정적으로 '욱'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사회적 약자'로 생각됐던 노인이 오히려 범죄 주체가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가정 문제도 원인 중 하나다. 천주현 변호사는 "2019년 일본에서 전직 차관 출신 70대 아버지가 폭력 성향이 있던 '은둔형 외톨이' 40대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초고령화 시대를 맞은 일본의 전철을 우리도 뒤따라 밟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주목할 만한 사례"라며 "오랜 기간 노인의 몸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경우 우발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경찰청이 조사한 2019년 고령 범죄자의 범죄 동기로는 △우발적(2만2천315명)△생활비(2천327명) △가정불화(1천553명) 등이 꼽혔다.

◆ 노인 범죄 해결은 '사회적 예방'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고령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상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영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에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주며, 이들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공공에서든 민간에서든 노인 일자리 창출을 제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일자리연구실장은 "노인 일자리를 공공에서 돈을 들여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인과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정책이 시급하다"며 "퇴직한 분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면, '50만원 받고 집에서 노는 것'보다 '80만원 받고 밖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이유 없이 분노가 올라오고, 무기력해진다고 말했다"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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