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더 짙어지는 고령화의 그늘 .3] 정보 격차로 소외받는 노인들

  • 정우태,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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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9 07:24  |  수정 2021-06-29 11:30  |  발행일 2021-06-09 제4면
디지털 세상 가속화, 자식 없으면 병원예약도 못하는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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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대구 동성로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 70대 노인이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무인결제기기)'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이 가게는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다. 기기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노인은 결국 점원이 있는 판매대로 향했다. 그는 "첫 화면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다 보니 뒤에 줄이 길어져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보격차'가 노인 소외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격차는 단순히 편리함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사회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보격차 해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 시기가 앞당겨짐에 따라 정보격차로 인한 피해가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키오스크 도입 식당·마트선 사용법 몰라 헤매고 음식주문 못해
지역노인 10명 중 1명만 홈뱅킹 이용…대다수 디지털기기에 소외

"무인시설 많아지는데 주변 도움없인 이용못해" 무기력함 호소
백신 온라인접수 등 각종 정보 놓치기 쉬워 복지차원 대책 필요

◆대구 노인 10명 중 1명만 '홈 뱅킹' 이용

고령층은 정보 취약계층으로 꼽힌다.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평균 68.6%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국민을 100% 기준으로 했을 때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정보화 접근 수준, 디지털 정보역량 수준,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 등 모든 지표에서 고령층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지표가 개선되고 있으나 종합 점수는 60%에 머물고 있다.

같은 고령층이라 해도 소득에 따른 정보격차도 큰 편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실제 정보격차는 더 클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월 가구 소득별 생활서비스 이용률을 보면, 100만 원 미만은 52%인 반면 400만 원 이상은 84.3%로 조사됐다. 또한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41.9%는 '이용요금이 부담스러워서'라고 답했으며 '이용할 기기가 없어서'라는 응답도 35.1%를 차지했다.

대구지역 고령층의 정보격차 문제도 심각하다. 대구 노인 10명 중 9명은 '홈 뱅킹'과 '전자 상거래를 통한 물품 구매'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 대구사회조사에 따르면, 대구시민의 절반 이상은 '홈뱅킹'(금융서비스 및 인터넷뱅킹·51.2%), '전자상거래를 통한 물품구매'(50.1%) 경험이 있었지만, 60세 이상의 홈뱅킹 이용은 11.7%에 그쳤다. 또 TV홈쇼핑 15.1%, 증권(주식거래) 2.4%, 물품 구매 11.6%, 예약 및 예매 5.5% 수준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없다. 60세 이상의 이메일(13.3%), 개인 홈페이지(1.6%), 블로그(1.4%), 인터넷 동호회 가입(3.7%), SNS(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31.1%) 이용률은 현저히 낮았다. 뉴스 기사, 상품평 등에 본인의 의견(댓글)을 작성하는 정보생산능력의 경우 20~29세의 33.5%가 '경험 있다'고 답한 반면, 60세 이상은 1.9%에 그쳤다. 타인의 글, 그림, 음악, 동영상 등을 지인에게 추천하거나 보내주는 비율에서도 20~29세는 50.4%였지만, 60세 이상은 6.9%였다. 스마트폰 이용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고령층을 제외한 대구시민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96.6~99.7% 수준이지만, 60세 이상 고령층은 70.4%다.

◆ 정보격차의 일상화

식당, 카페, 대형마트 등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매장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통신사대리점, 세탁소, 버스터미널, 기차역 등 생활과 밀접한 시설도 무인화가 이뤄지고 있다. 직원을 배치하지 않고 CCTV와 결제기기만 배치하는 매장도 적지 않다.

지난 7일 동성로에 위치한 한 무인매장. 이곳은 무인 대리점으로 각종 키오스크를 통해 이용자가 직접 통신기기를 구매하거나 개통을 할 수 있다. 인증·결제 등 간편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호응을 얻고 있으나 고령층은 접근이 힘들다. 실제 해당 점포 방문객 중 80%는 20~30대 젊은 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매장 한 관계자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고객들에게 혜택을 드리고 있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아 대부분 직원을 호출해서 도움을 청하고 있다. 바로 옆에 일반 매장이 있어 무인점포도 함께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고령층은 키오스크를 활용하지 못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65세 이상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키오스크 이용이 불편한 이유로 '복잡한 단계(51.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은 "고령 소비자 10명을 선정해 현장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모두 조작방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 지연 등으로 심리적 부담감도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디지털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감정이 상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대구에 사는 김정분(가명·74)씨는 "디지털기기 까막눈인지라 자식들이 지난해 재난지원금 신청을 모두 다 해줬다. 요샌 병원 외래를 다니는데, 예약하고 수납하는 데 휴대폰 없으면 안 되니 자식들이 도와준다"라면서 "이왕 해주는 것 흔쾌히 해주면 좋을 것을, 해주고 나서 '방법 좀 기억해두라'는 등의 잔소리를 하는 통에 속상할 때가 많다. 도움 없이 아무 것도 못한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코로나 시대' 고령층 정보 접근 더 어려워져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비대면 생활이 가속화됐지만 정보격차로 인한 고령층의 불편함도 덩달아 커졌다.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제때 습득하지 못해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마스크 대란 당시 공적마스크 물량을 확인하는 앱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약국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또 지난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예약접수가 시작되자 온라인 예약 방법을 모르는 어르신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예약을 받기 시작한 5월 둘째주 '120 달구벌콜센터' 민원 건수는 2천249건으로 직전 주(162건)에 비해 1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사회로 전환이 앞당겨지면서 정보격차 해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진숙 대구대 교수(사회복지과)는 "코로나로 인해 여러 관계들이 예전에 비해 단절되고 있는 양상"이라며 "비대면 체제가 강화되면서 젊은 층은 상시적 관계 형성이 가능한 반면 고령층은 인터넷 사용 등이 어렵다 보니 관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한다. 어르신들이 고립감을 덜 느끼도록 하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비대면 사회의 정보격차 해소방안'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인시스템의 확충이다. 무인·비대면 중심의 디지털 전환에 대비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시스템 마련도 고려해봐야 한다. 정보격차 해소는 '복지' 차원에서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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