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이건희 미술관 권역별 분점을 제안한다

  •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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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09   |  발행일 2021-07-09 제20면   |  수정 2021-07-09 10:54

서병철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건희 미술관'입지를 서울에 건립하여 국민문화 향유기회 확대와 문화강국 이미지 강화 등을 하겠다고 발표해 3천900만(75%)의 지역도시민들의 좌절감과 공분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발부터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약속하였지만, 중앙과 지역 간 특혜논란과 정책갈등만 가중시키고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집권 후반기에 이건희 미술관을 지역에 유치하여 국민통합과 문화분권, 문화자치 기반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라는 한 가닥의 기대를 했지만 상실감으로 되돌아왔다. 이는 기증된 컬렉션이 '이건희'라는 개인 명의로 공공 뮤지엄을 짓는 것도 문제지만, 서울에는 좋은 미술관들이 즐비한데 또다시 서울에 건립한다는 것은 지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국립현대미술관(1986년 건립, 과천)과 분관인 덕수궁 미술관(1998년)을 비롯하여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1938년, 성북동), 호암미술관(1982년, 용인), 호암갤러리(1984년, 한남동), 로댕갤러리(1999년, 태평로), 리움미술관(한남동, 2004) 등이 있다. 이 중에 삼성과 관련된 국제적 규모의 미술관만 해도 3개나 된다. 특히 삼성리움미술관은 한국의 국보급 전통미술과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 근현대미술작품 1만5천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으로 다시 이건희 미술관을 짓는다는 것은 특정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예술사업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시혜성 사업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술관은 지역의 새로운 경쟁력과 발전의 견인차이다. 선진도시들은 오래전부터 미술관을 도시 활성화의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여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관광의 필수코스인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테이트모던, 퐁피두센터, 맨해튼의 구겐하임 미술관, 아부다비 루브르 뮤지엄 유치 등을 통해 문화도시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건희 미술관을 지역에 유치함으로써 혁신과 창의의 불꽃을 지펴 쇠락하는 도시를 부흥시켜보려고 미술관 건립유치운동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현 정부는 보란 듯이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지역 도시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경쟁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이건희 컬렉션을 지역 도시에 유치하기 위해 지역협력 모델을 제시하여 지역민의 힘을 총집결시키고 국민을 설득하는 차별화된 정책활동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정치적 접근과 '문화의 불모지' 운운하는 '읍소전략'에 의존한 것은 스스로 중앙정부의 식민도시임을 자임한 결과이며, 지역민의 문화적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였다. 중앙정부가 마치 '떡고물 나눠 주듯이 '지방에 시혜 베풀 듯 사업을 주는 중앙집권시대는 끝났다. 그런데 이번 서울 유치 결정은 민주적 지방자치시대에 과거 권위주의 중앙집권시대에 벌어진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가 비록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도시민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하고 확보할 것인가이다.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 미술관은 루브르의 브랜드가치와 소장품을 활용하여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중동지역 도시에 국제적 규모의 뮤지엄을 건립하여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대외적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쇠락한 스페인 도시에 유치하여 도시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했다.

대구경북도 이처럼 이건희 컬렉션 유치운동으로 모아진 에너지와 힘을 재결집해 세계적 수준의 뮤지엄 건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구겐하임재단의 미술관 국제화 전략에서 보여준 효율적인 미술관 '분관모델'을 응용하여 중앙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에 제동을 걸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검토하는 대안적인 활동에 지역민들이 적극 나설 때다.

서병철 〈대구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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