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으로 산화한 안동의 전통마을 '내앞마을'을 아시나요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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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2 19:22  |  수정 2021-08-14 12:11  |  발행일 2021-08-12
독립운동 위해 150명이 만주로...'애국이 일상' 안동 내앞마을

김성일 김대락 김동상 등의 고향...15일 광복 76주년 맞아 재조명

반세기 의병 항일투쟁 주춧돌...협동학교 세워 민족동량 양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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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앞마을 전경.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오는 15일은 광복 76 주년이다.그날을 위해 우리 민족은 1894년 안동에서 시작된 갑오의병부터 1945년까지 51년 동안 독립운동을 펼쳤다. 수많은 안동 사람들이 나라를 살리고 되찾는 데 앞장섰고, 그 바탕에는 전통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들은 식민지배라는 현실 앞에서도 광복의 희망을 놓지 않고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주춧돌이 됐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한 안동 전통마을 중 대표적인 곳이 '내앞마을'이다.

 

천전리(川前里)의 순우리말인 '내앞마을'은 안동시내에서 안동대를 지나 동쪽으로 15㎞ 남짓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600년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의성김씨 동성마을로 고택 문화재들이 그득하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과 연접해 있다.드라마 징비록에 등장하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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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 생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내앞마을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두 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온 나라를 통틀어 전통성이 가장 강한 안동문화권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발원지다.1907년 문을 연 협동학교(協東學校)가 그 핵심이다.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의병항쟁으로 시작된 내앞마을의 독립운동은 1907년 근대식 교육기관 협동학교 설립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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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락의 집 '백하구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나라의 지향(志向)은 동국(東國)이요, 향토의 지향은 안동(安東)이며, 면의 지향은 임동(臨東)이므로 '東'을 택하고, '協'은 안동군의 동쪽에 위치한 7개 면이 힘을 합쳐 설립한다는 뜻'을 지닌 협동학교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문을 연 최초이자 하나뿐인 중등학교였다.

 

학교를 일으키고 이끌어간 혁신 유림 가운데 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이 내앞마을에 태어났다.


나라를 빼앗기자, 이 마을 사람들은 만주 망명으로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김대락을 비롯해 150여 명이 나섰다. 이들은 만주에서 동포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될 경학사·한족회 등 자치기구를 조직했다.


아울러 민족 교육기관 설치와 교육 활동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 같은 주춧돌을 놓는 사이에 만주 한인사회의 최고 원로였던 김대락이 숨졌고, 김동삼의 동생 김동만은 1920년 일본군이 일으킨 간도참변으로 참살됐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김동삼은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계의 큰 별로 항일투쟁을 이끌었다.1923년에는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한국독립운동계 최고 인물이 됐다.


특히 내앞마을 사람들은 남만주 지역의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취원창을 비롯한 북만주 지역 독립군 지원기지 개척에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가족들은 처참한 삶을 이어갔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본연의 자세는 결코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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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락의 일기 '백하일기'.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고향에 남은 내앞마을 사람들도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다. 청계종택 종손 김병식(金秉植)은 1919년 3·1운동 당시 파리장서에 서명했고, 김대락의 막내 여동생 김락(金洛)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군 수비대에게 끌려가 두 눈을 잃었다. 


1920~1930년대 내앞마을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거나, 임하청년회와 신간회 안동지회·안동콤그룹 등에서 활동했다. 1945년 광복 직전에는 안동농림학교의 조선회복연구단에도 참가했다.


이처럼 내앞마을의 독립운동은 의병항쟁에서 광복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졌으며, '내 앞에서 취원창까지'라고 일컬을 정도로 공간이 넓고 다양했다.


정진영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은 "내앞마을의 독립투쟁사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친 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뜻과 자산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어가야 할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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