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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앞마을 전경.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
천전리(川前里)의 순우리말인 '내앞마을'은 안동시내에서 안동대를 지나 동쪽으로 15㎞ 남짓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600년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의성김씨 동성마을로 고택 문화재들이 그득하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과 연접해 있다.드라마 징비록에 등장하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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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삼 생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
의병항쟁으로 시작된 내앞마을의 독립운동은 1907년 근대식 교육기관 협동학교 설립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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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락의 집 '백하구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
학교를 일으키고 이끌어간 혁신 유림 가운데 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이 내앞마을에 태어났다.
나라를 빼앗기자, 이 마을 사람들은 만주 망명으로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김대락을 비롯해 150여 명이 나섰다. 이들은 만주에서 동포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될 경학사·한족회 등 자치기구를 조직했다.
아울러 민족 교육기관 설치와 교육 활동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 같은 주춧돌을 놓는 사이에 만주 한인사회의 최고 원로였던 김대락이 숨졌고, 김동삼의 동생 김동만은 1920년 일본군이 일으킨 간도참변으로 참살됐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김동삼은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계의 큰 별로 항일투쟁을 이끌었다.1923년에는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한국독립운동계 최고 인물이 됐다.
특히 내앞마을 사람들은 남만주 지역의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취원창을 비롯한 북만주 지역 독립군 지원기지 개척에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가족들은 처참한 삶을 이어갔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본연의 자세는 결코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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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락의 일기 '백하일기'.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제공 |
1920~1930년대 내앞마을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거나, 임하청년회와 신간회 안동지회·안동콤그룹 등에서 활동했다. 1945년 광복 직전에는 안동농림학교의 조선회복연구단에도 참가했다.
이처럼 내앞마을의 독립운동은 의병항쟁에서 광복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졌으며, '내 앞에서 취원창까지'라고 일컬을 정도로 공간이 넓고 다양했다.
정진영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은 "내앞마을의 독립투쟁사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친 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뜻과 자산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어가야 할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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